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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부산 인사이트] - 왜 에릭 호퍼는 지식인을 싫어하는가?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leaders2400@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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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7  18: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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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전 부산발전연구원장)
체계적인 교육 받지 않은 사람들
현장·경험 통해 뛰어난 통찰 가능
지식인이 가진 자격에 관한 의문
지식인은 자신 역할 인정받길 갈망
일반 대중과 달리 명예보상 등 원해
창의적 성취감 얻는 지식인도 존재
현실에 애착 갖는 개혁 정신 발휘


노벨상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20대에 쓴 박사학위 논문의 독창성과 그 이후 저자의 활발한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통해 인류의 지적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순수하게 지적 활동을 일찍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학자나 사상가들은 젊었을 때 탁월한 책을 쓰지는 않았다. 타고난 신분이나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일에 참여하면서 많은 업적을 이루다가, 시대변화나 혹은 주위의 질시와 모함으로 낙향한 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책들이 후대에 크게 영향을 미쳐 위대한 학자라고 칭송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서두에 이런 언급을 하는가 하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학자들은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법들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충분히 자질을 갈고 닦았다. 그런데 가끔 체계적인 제도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유명한 지식인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를 예언했다고 하여 유명해진 미네르바 사건은 한때 모 대학교수가 언론을 통해 자신은 미네르바를 존경한다고 칭송했는데, 인터넷에 글쓴이가 전문대 출신의 30대 무직 남성이라 알려지면서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에 대한 한국사회의 지나친 존중은 중국과는 달리 조선중기부터 과거제도의 타락과 함께 권력화 시켜줌으로써 과연 지식인의 역할을 제도권에 한정시켜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비제도권, 즉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지식인 사례를 찾게 되면서 만난 사람이 20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떠돌이 철학자, 부두노동자이면서 사회사상가' 에릭 호퍼였다.

사실 에릭 호퍼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회철학자이다. 1951년 49살의 나이에 자신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모든 사회운동의 공통점으로 주동자, 지식인 그리고 추종자들의 맹신(true belief)의 원인과 확산과정을 사회심리적으로 정확히 분석하였다고 널리 인정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떠돌이 노동자로서, 부두노동자로서의 그의 삶에 대해 언론이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의 저서와 에세이는 미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4년에 버클리대학에서 일종의 방문교수로 학생들과 일주일에 한번 몇 시간씩 강의가 아닌 토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21년간 떠돌이 노동자로, 25년간 부두노동자로 인생을 살아온 에릭 호퍼에 대한 관심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철학자나 사상가로 존경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1902에 태어나 1983년에 사망한 그는 5살 때 계단에서 넘어진 것이 원인이 되어 7세에 실명하지만, 15세에 기적으로 시력이 회복되어 엄청난 독서광으로 살아왔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으니 생활수단은 육체밖에 없었고, 돈이 생기면 도서관이나 중고책방에서 책을 빌리거나 구입하여 읽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노동을 하는 방식으로 46년간 노동 하고, 사색하며 지내왔다. 그가 읽은 책은 화학, 물리학, 광물학, 수학, 지리학, 역사학, 문학 등 상당히 폭넓은 분야의 책들을 정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책과 노동을 통해 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독자적 시각을 형성해 나갔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서로 중첩되는 부분들도 많지만, 유난히 지식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글이 많음을 발견하고, 왜 그가 지식인을 경멸하는지 그의 저작을 통해 살펴보게 된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기원전 3000년경 중동에서 문자를 발명한 것이 인간의 직업사에 신기원을 이룩했다고 인용하면서 문자를 해독하는 사람들은 당시에는 지식인이라 불리지 않고 서기라고 칭했다고 한다.   문자는 발명 후 여러 세기 동안 금고와 창고를 드나드는 물품을 기록하는 데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책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산을 관리하려고 문자를 발명 했다는 이야기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초기의 기록은 송장과 물품목록이다. 
고대사회에서 집단을 키우고자하는 지배자의 욕망과 전쟁수단의 확보, 이를 위한 각종 물자의 관리가 결합하여 지속적인 전쟁과 약탈이 있었고, 수많은 부족 집단들이 명멸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집단에서 일했던 서기들은 일자리를 잃고 졸지에 생계를 걱정하는 신분으로 전락했으며, 이들이 장부정리가 아닌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평가하고, 문제를 적고, 나아가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문자역할의 획기적 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지식인의 탄생과 함께 지식인은 항상 자신의 역할을 인정해 달라는 본래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에릭 호퍼는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많은 나라의 관료 조직이 붕괴되면서 서기는 지위와 정체성을 잃게 되었다. 아모스, 헤시오도스, 공자, 조로아스터도 관직을 잃은 서기였다고 인용하고 있다.  이분들이 서기였다고 칭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공자가 위(衛)로부터 노(魯)에 돌아와 시(詩)·서(書)를 산정(刪正)하고 예(禮)·악(樂)을 바로잡은 것은 당시 세상 형편으로는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공자가 춘추를 편찬한 것은 세 번이나 방문한 위나라에서 결국 벼슬을 얻지 못하자 할 수 없이 노나라로 돌아온 시기와 같기 때문에 에릭 호퍼의 주장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에 종사할 만한 권리도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마음대로 지어낸 사실무근의 한담들을 책 속에 써넣고 자기들이 조작한 거짓 정보들도 삽입시켰다. 뒤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전철을 밟으며 자기가 들은 대로 그러한 정보를 다시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들은 사건과 상황의 원인을 탐구하거나 주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제거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진실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으며, 비판적인 안목도 날카롭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역사적인 정보들 가운데 오류와 근거 없는 추정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흔히 발견되는 요소이다.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인간이 생태적으로 물려받은 속성이다. 정말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학문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일이 너무나 흔해졌다." 

이는 이븐 할둔의 뛰어난 저작 '역사서설'에서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는 1332년 무슬림의 지역에서 태어났다. 정치적 야망이 있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으나 불확실성과 혼란으로 가득 찬 정치세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45세에 이르러 자신의 체험과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책을 저술하기 시작한 것은 역사상 뛰어난 지식인들의 경우와 비슷하다 하겠다.

1959년에 쓴 1년간의 일기를 '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낸 에릭 호퍼는 다음과 같은 일기내용을 통해 지식인과 보통 사람들을 예리하게 구분하고 있다. 

"칠레 선박 알마르고 호에서 8시간 작업. 아주 수월하고 유쾌한 날이었다. 전에도 알았지만 칠레 선박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선원보다는 지식인에 가깝다. 같이 모여 있으면 어떤 대학생 모임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작업반장 말에 따르면, 이등 선원이 옥스퍼드 영어를 구사하고 모든 선실에는 선원의 등급을 막론하고 선반에 책이 가득하다고 한다. 하기야 칠레 지식인들은 자기들의 지위에 맞는 직업을 구하기 힘들다. 지식인들이 제대로 직업을 찾기 어려우니 언제라도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2500년 전 중국의 철학자 묵자는 제국이 몰락하는 이유는 제왕이 학자를 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었다.

에릭 호퍼는 모든 지식인을 문제 삼은 것은 아니다. 그는 지식인을 두 부류로 구분하고 있다. 즉, 지식인 계층을 나누는 가장 중대한 기준은 창조적인 작업에서 성취감을 얻는 지식인과 그렇지 못한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창조적인 지식인은 현 체제를 아무리 통렬하게 비판하고 비웃건 간에 실상은 현재에 애착을 갖고 있다. 그의 열정은 개혁이지 파괴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유형이 되었든 거의 모든 지식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뿌리 깊은 갈망이 있는데, 그것은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 사회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높은, 두드러진 지위에 대한 갈망이다. 이 부분에서 그의 통찰력이 돋보이는데, 왜냐하면 지식인과 보통사람들에 대한 구분이 바로 이 점이라고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의 활동, 즉 적극적으로 일하고 노력하려는 태도는 개개인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일반대중은 간섭받지 않고 홀로 남겨졌을 때 자신의 가치와 유용성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일을 택하게 된다. 이와 달리 지식인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한 이상적인 조건은 자신이 한 일의 진가를 인정해주고 그에 맞는 지위와 명예를 보상해주는 귀족적인 사회질서이다. 지식인은 혼자 남기 싫어한다. 다른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지 모른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에릭 호퍼는 떠돌이 노동자시절과 부두노동자 시절을 통해서 수많은 노동자들과 일하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내적 역량이 결코 무시될 수 없음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최초로 쓴 책 '맹신자'가 미국사회에 큰 호평을 받았음에도 부두노동자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다. 부두노동자들은 노력만 하면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그는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호주선원 출신으로 미국 노조운동에 뛰어든 노동운동가 해리 브리지는 제퍼슨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제퍼슨처럼 그도 리더 없이 움직이는 조직을 창안하였는데, 미국사회의 강점을 에릭 호퍼는 지식인에 휘둘리지 않는 일반 대중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독학이 사금을 채취할 때 눈에 띄게 진전되었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쓰기를 읽힐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 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나가는 인간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2차 세계대전의 독일과 소련의 전체주의 경향을 목도한 후, 지식인 엘리트층은 다른 부류의 엘리트보다 인류나 나라에 봉사하겠다고 굳게 맹세한 사람들이었지만  인간을 해체해서 조립할 수 있는 물건으로 보고 개인과 사회의 혁신을 제조 공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말로만 먹고사는' 지식인에게서 분노를 느꼈다.

원래 제목은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성찰'이었으나 이 제목으로는 베스트셀러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 출판사 편집장이 제목을 '맹신자'로 바꾸어서 출판하자는 제안을 받고 에릭 호퍼는 오직 한번 참된 행복의 순간을 맛보았다고 회상하였다. 즉 그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사고에 대한 자신감은 자신의 주장이나 제언에 대해서 "나는 그저 생각을 주고받으며 논의해보자는 것일 뿐이니, 어떤 소리도 충고로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누구라도 내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큰소리치지는 못했으리라" 라는 몽테뉴의 말로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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