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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부산 인사이트] - 바람이 인다. 살아야겠다.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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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6  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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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전 부산발전연구원 원장)
 한국사회 위력 의한 성폭력 문제
'묻지마 가치체계'로 침묵한 과거 
 현시대 전문가·어른 의존하던
 낡은 사회에서의 변화의 바람
 성찰 없이 사회 변화 알 수 없어
 깨달은 사람들로부터 변화 시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 그의 작품에 많은 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로 번역된 영화에 대해서는 일장기 사용, 일본 군국주의 부활 등의 이유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영화를 제작한 후, 하야오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다. 최근에 다시 영화를 만든다는 기사가 난 것을 보면 심경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아마도 하야오 감독의 마음속에 다시 바람이 인 모양이다. 분다와 인다는 명백히 차이가 있다. 어떤 여러 복잡한 요인에 의해 생성되어 올라오는 것이 '인다'이며, 반면에 생성된 것이 움직이면 이것은 '분다'이다.

영문으로 된 영화명이 'The wind rises' 인 것을 보면 '바람이 인다'가 맞다. 이 구절은 지중 해를 바라보고 자랐으며, 지중해를 바라보는 묘지에 묻힌 남부 프랑스출신으로 다방면에 걸친 천재라고 칭할 수 있는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에서 따왔다. 대체로 천재들은 20대에 진가를 발휘하는데, 폴 발레리 역시 20대에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21세에 시 작업에 회의를 느끼고,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긴 침묵의 시대를 거친 후, 1920년 50세에 그를 정말로 유명하게 만든 시 '해변의 묘지'를 발표했다. 이 시 속에 '바람이 인다.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의 심중에 뭔가 변화가 크게 일어난 것은 틀림없었다. 대부분의 문학평론가들은 이 구절을  삶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왜 하야오 감독이 이 구절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작 중인 마지막 장편 애니메이션 제목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알려진 것을 보면 '바람이 분다'를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일본전투기 제로 센을 만든 지로의 일대기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독일의 융커는 비행기는 전쟁용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명백한 입장을 가지고 히틀러 정권에 저항했으며, 이탈리아의 카프로니백작은 전쟁 후 비행기는 여객수송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반면 지로는 고등어 뼈와 같은 아름다운 곡선의 비행기 설계가 인생의 목적이었으나, 그 비행기가 전쟁용으로 사용됨에 대해서는 절망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나타난다. 일본군국주의, 가부장제도, 위계사회 등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상대적으로 서구문화와 차이점을 잘 나타낸 영화이다.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결과는 알 수 없다. 21세기 변화의 바람을 알지 못하고, 수구반동으로 돌아가면 일본은 희망이 없을 수 있다는 노년의 하야오 감독 나름대로의 사회철학이 있다고 여겨진다. 손자를 위해 단편영화를 제작했다는 것도 그의 내면에 일본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람은 항상 일어나지만 확실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바람에 날려갈 뿐이다. 발레리의 말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할 뿐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불기 시작한 남녀불평등에 대한 고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심각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항상 있어온 한국사회의 문화의 한 부분이지만 과연 이것도 문화현상인가에 대해서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문화란 고고한 것이며, 더 이상 질문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해석에 있어서, 그리고 고발한 사람들의 당당함에 있어서 결코 과거와는 동일시할 수 없다는 주장은 새로운 현상이다. 더 이상 부끄러움도, 혼자만의 괴로움도 아니고, 당해서는 안 될 일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음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명백히 보여줌으로써 한국의 "묻지마 가치체계"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위' 어른이나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임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고, 지식인이 지식인답지 못하면 결코 그들은 어른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라는 것이다. 주어진 것을 아무런 의식 없이 외워서 만들어지는 게 전문가라면 그것은 인터넷 속의 지식이지 인간의 성찰을 통해 만들어진 지식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의 지식이 행동할 수 없듯이 박제된 지식인은 결코 행동할 수 없음을 21세기의 한국사회는 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바람은 지금까지 보수든 진보든 불문하고 자명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들이 과연 자명한가에 대해 이제 한국은 스스로 질문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왜 그것이 필요한가? 진정으로 본질적인 질문을 해오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어떤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한국사회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가치들에 대해서, 그것이 보수의 주장이든, 진보의 주장이든 상관없이 과연 그것이 왜 자명하다고 주장하는가에 대해서 지식인이나 정치인의 논리가 아닌 일반사람들의 경험에 의해서 스스로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유, 남녀평등, 부의 생산과 분배, 권력, 예의염치 등 어쩌면 그 누구도 한 번도 깊은 성찰을 하지 않은 채 고고하게 존재해왔고, 그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기만 하면 뭔가 있는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전문가인 것처럼 살아온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삶 전반에 대해서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맞는가? 정말로 서구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고 말하는 것인가? 옳고 그름의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인가 남이 강제로 주입한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나는 헌법이 보장한 주권자인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우리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 직접민주주의가 군주 1인이나 소수의 권력자가 권력을 담당하는 정치체제보다는 더 낫다는 것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시민이 직접 참여한 다수결에 의한 통치에 중점을 두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와 타인의 견해를 비교판단하면서 내린 결단이 민주주의의 근간임을 결코 알지 못한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이, 정치인들이 그것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짓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이제 한국사회는 보수든 진보든 주어진 것을 자명한 것이라고 믿고 추종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다. 이 땅에 잡초가 아닌 진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이 바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바람이 제대로 불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우리는 살아야겠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데이빗 소로는 월든 호수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2일간 생활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과 같다.' 즉, 아침을 아침답게 만드는 치열한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한 아침과 밤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데이빗 소로의 내적 삶의 고민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이 글은 그의 사후 널리 알려진 '월든(Walden)'의 마지막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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