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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주력 신발 산업 다 어디로 갔나
원동화 기자  |  dhwon@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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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4  1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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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M에 집착하면서 국내 브랜드 못 키워
남북 경협이 부산 신발의 재도약 기회
 
   
▲ 국내 5대 신발업체를 설명해 놓은 한국신발관. (사진 원동화 기자)

국내 신발 1호 기업 ‘화승’이 결국 지난 13일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가 결정되면서 나이키, 아디다스와 대적하던 국내 토종 신발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서 힘을 못 쓰는 현실이 부각됐다.
 
우리나라 신발은 산업은 해방되는 해인 1945년 서울, 인천, 평양, 군산, 부산 등에서 고무신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특히 부산은 일본과 가까운 거리를 통해서 당시 일본 신발 중심지인 고베로부터 기술과 원자재 수입에 유리해 신발 산업이 성장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요 군수품이 군화를 생산하면서 우수한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습득해 1980년대 신발 호황을 누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말표(태화고무공업사), 기차표(동양고무공업사), 범표(삼화고무공업사) 등이 모두 부산 브랜드다. 르까프는 1980년대 ‘프로스펙스’와 함께 세계적인 브랜드인 나이키에 대적할 정도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보여줬었다.
 
   
▲ 부산에 위치했었던 신발산업 업체 (사진 신발산업진흥센터 제공)

▲부산 신발 산업의 성장
국내 신발은 1962년부터 수출길에 올랐다. 1971년 5000만 달러, 1973년 1억 달러, 1975년 1억 9000만 달러를 수출하면서 국내 수출산업과 국내 경제에 효자로 자리매김 했다. 1970년 한 해에 7000만 켤레를 생산하고 1975년에는 1억 5000만 켤레를 생산하는 등 부산 신발은 승승장구 했다.
 
나이키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1970년대다. 일본 닛폰고무와 기술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던 삼화가 1970년 나이키 제품을 독점생산하게 됐다. 이를 지켜본 국내 신발 업체들은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기 보다는 나이키 제품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된다.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이 증가하면서 수출실적은 1985년 21억 달러, 1990년 43억 달러로 그야말로 폭풍적으로 성장한다. OEM으로 인해서 국내 신발기업이 큰 이익을 얻었지만 국내 브랜드 시장 점유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OEM의 역풍과 신발 산업의 쇠퇴
1982년 리복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국내 신발업체들은 OEM에 더욱 내몰리게 된다. 1986년 한국 나이키가 설립되고 리복이 화승과 함께 1986년 합작형태로 국내 시장 강화에 힘쓰게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 업체들은 생산비가 저렴한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생산시설 이전을 요구했다.
 
1985년 프로스펙스를 생산하던 국제상사가 정치적인 이유로 기업이 해체되면서 국내 신발산업은 위축됐다.
 
해외로 신발 생산 시설 이전이 시작되면서 1998년 수출 실적은 8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국내 업체들은 소재 수출에 주력하게 됐다. 이 시기 국내 브랜드는 ‘저가’라는 인식을 받아 외면 받기 시작했다.
 
▲뒤늦은 신발산업 부흥 전략
리복과 합작한 화승은 같은 해인 1986년 ‘르까프’라는 자체 브랜드도 생산하게 된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으로 신발 브랜드를 키웠던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르까프와 프로스펙스가 글로벌 시장에 도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실패를 맛봐야만 했다.
 
이후 부산 업체인 트렉스타와 비트로가 등산화와 스포츠화로 특화전략을 내세워 세계시장에 출사표를 냈다. 부산시도 1997년 금융기관과 신발 및 의류업체와 함께 부산 공동브랜드 테즈락을 설립했지만 실패를 하게된다.
 
국내 업체 중에는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하기도 했다. 최근 잘나가고 있는 휠라코리아가 2007년 본사를 인수한 것이다.
 
   
▲ 부산 신발산업을 전시해 놓은 한국신발관. (사진 원동화 기자)

▲남북경협은 신발 사업의 최후의 보루
남북경협이 국내 신발 산업을 되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인건비가 싸고 기술 인력이 풍부한데다 원부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삼덕통상은 2005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국내 신발산업의 부활 가능성을 보여준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는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까지 부산에 있는 원부자재업체 50여 곳에서 납품을 받아 개성공단에서 완제품을 생산했다. 개성공단의 노동력과 부산 신발산업의 기술력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은 “개성공단이 완성품 제조설비를 재가동하면 가까운 부산에서 원자재와 부분품을 실어나를 수 있다”며 “부산지역 협력업체의 고용이 개성공단보다 더 많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또 “물류 배송이 1주일 이상 걸리는 베트남 공장보다 지리적인 강점도 크다”고 설명했다.
 
원동화 기자 dhwon@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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