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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부산 인사이트] - 집단망각의 위험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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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8  11: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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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정상회의 기념 불꽃축제 15년,잊혀진 ‘부산선언’
IMF 이후 ‘각자도생’ 풍조 발생
   
▲ 김영삼(전 부산발전연구원 원장)

성장 동력 실종·경제양극화 심화
‘집단망각’에 빠진 한국사회
생활방식·전통문화 등 실종
불꽃축제 왜 하는지 의미 깨달아야
많은 예산 투입 필요한지 고민할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무능한 정치인-공무원-기업인이 만든 죄악을 다룬 영화이다. 흔히들 말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에도 없는 단어가 IMF 이후에 만들어졌다. ‘각자도생’. 이 단어는 국가의 존재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무서운 단어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국가를 버리고 각자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국정농단과 적폐청산이란 선거구호 때문에 2012년 대선의 핵심 쟁점인 경제민주화 논쟁의 결과를 따질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다. 1998년 시작된 IMF 금융위기는 사회위기로 확산되었다. IMF에게 빌린 돈을 갚았다는 것으로 한국의 금융위기는 끝났다는 사고는 IMF 국가부도로 인해 국민 개개인이 입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IMF 때 재벌 중심의 구조조정으로 이루어진 일부 업종에 의한 성장 동력은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1998년 이후 한국사회의 활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의 재산과 의욕을 담보로 진행한 IMF 구조조정 결과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7년 자살자수는 6068명이었다. IMF 사태로 자살자는 8622명으로 급증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9년에는 7056명이 자살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국가가 1만5678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의 자살율은 계속 증가하였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3년 연속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를 달렸다. 대한민국이 국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IMF 이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은 어느 나라 소속의 대통령이고 국회의원인가?

2012년 대선 당시의 경제민주화 논쟁의 촉발은 한국정부가 빚은 갚았지만 국민 상당수가 폐인이 되고,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는 절망감에서 살고 있음을 직시하자는 것이 요지였지만, 기껏해야 헌법조항 해석문제로 다투거나, 경제양극화 문제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제로 소위 전문가들이 나서서 이야기한 것을 살펴보면 가관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IMF 극복방안이 실효성이 없었거나, 아예 정책 자체가 없었다. 다시 말하면 IMF 는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진행 중인 IMF 사태에 대해서 시민의 입장에서 그들의 언어로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택시를 탈 경우, 기사분이 나이 드신 경우, 실례를 무릅쓰고 전직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름대로 잘 나가는 국민이었지만, IMF 부도사태로 모든 것을 잃고 더 이상 회복이 되지 않아 호구지책으로 택시운전대를 잡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IMF 20년이 지난 지금 영화에서 보여주는 결론은 각자도생하자! 누구를 믿고, 기대할 것인가? 어쩌면 대부분의 정치인과 공무원 그리고 전문가들에게는 IMF 사태가 한국에 있었는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한국사회는 IMF 이후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병폐는 전 국민이 집단망각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누구도 답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단망각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며, 아마도 무시무시한, 중세의 암흑시대를 연상시키는 것과 같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찬란한 로마문화는 갑자기 사라졌다. 당시 게르만 침입으로 인해 로마문화와 갑자기 단절되고, 그들 문화에 로마인들이 스스로 동화되어버린 현상의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한다. 현재 이야기하는 고대 그리스문명이나 로마문명은 원형은 완전히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은 외형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몰락한 혹은 정복당한 나라들의 문화는 더 이상 살아있는 존재양식으로 결코 남아있지 않으며,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집단망각이 일어나는 사회에서는 대부분 가지고 있던 문화전통이 잊혀질 뿐만 아니라, 남아 있다 하더라도 원형은 사라지고 세련되지 못한 흉내만 남아있게 마련이다.

집단망각은 급격한 외부충격에 의해서 오며, 동시에 충격에 대한 내부대응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소위 전통· 생활방식· 전통문화 등이 급격히 붕괴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기억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인류역사를 통 털어 보면 수많은 민족과 문화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겨우 몇몇 민족들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나 그림 혹은 저술 등을 통해서 과거를 회상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후손들이나 인류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가벼운 예로 미국의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인디언 후손들은 그들 조상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다.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인들은 인디언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 심지어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자신들의 종교와 생활방식을 강요하거나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기 때문에 남은 후손들은 더 이상 과거를 답습하기가 불가능해졌다.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의 경우, 외부침략이라기 보다는 인구증가에 따른 자연환경의 급격한 파괴, 물 부족, 식량 부족, 건축자재 부족으로 쇠퇴하게 되자, 인접 국가들의 침략을 받고 이주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이주는 자연히 전통과 단절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으며, 오늘날 한때 가장 찬란한 지역문명을 가진 나라인가 의심할 정도로 가장 문제가 많은 지역으로 전락하였다.

정치제도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은 아테네 시민 중 남자에게만 적용되는 제도였다. 누가나 추첨에 의해 공직을 맡아야만 했고,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참가해야 했으며, 민회에 참가하여 긴 시간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나 남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별다른 생산 활동을 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테네 시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예 노동과 외국인들의 수입을 일부 강제로 거둬 시민들을 먹여 살리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 다수를 위한 방법은 당연히 독재나 전제로 갈 수밖에 없으며, 고대 그리스는 그렇게 망해갔다. 젊었을 때, 정치적 야망이 있었던 플라톤이 민주정을 싫어한 이유는 시민들의 역량에 대해서 크게 불신했기 때문이다. 제도 역시 갑자기 붕괴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질을 상실하기가 쉽다. 일단 상실되면 다시는 본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중국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의 노나라 옆에 있었던 제나라는 굉장히 힘 있는 나라였다. 농업, 공업, 어업, 상업이 활발했기 때문에 문화가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로 한국에 잘 알려진 관중((管仲)이 재상이 되면서 제나라는 춘추시대의 패자가 되기고 했다. 그리고 전국시대에는 전국의 재사들을 모아 극진히 대접해주고, 많은 연구와 제자교육, 그리고 저술활동을 통한 정책제안을 적극 권유하였다. 이를 위해 수도 임치 부근에 많은 저택을 짓고, 충분한 대우를 해주면서 소위 ‘직하학궁( 稷下學宮)’을 만들었다. 이 시기를 우리는 중국이 자랑하는 ‘백가쟁명’시대라고 배웠다. 최근 중국학자 바이시가 ‘직하학 연구’라는 책에서 중국에서 유일무이하게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시기였다고 평가한다. 그 이후 잠시 도가사상에서 유가사상으로 독존체제가 형성되어 더 이상 중국사에서 학문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의 중국시스템으로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될 리가 없다. 어쩌면 그의 생각에는 미국을 이기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때 좋은 시절은 어느 나라나, 어느 시기나 존재했다. 문제는 왜 그것이 사라졌는가에 대해서 아무도 모른다. 집단망각 때문이다. 무엇이 좋은 것을 파괴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제혁명’을 쓴 베니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 죽는다는 것이다.

정부나 부산시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것들이 내세우는 기본전제는 항상 당연한 것으로 더 이상 시빗거리가 되지 않음을 강조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좋은 명분만 내세우고, 그 명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실리만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그동안 증명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던 기본가정의 일부에 오류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해 오던 전통방식이 그로 인해 방향을 바꾸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문화나 전통방식이 모두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언제나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붕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교묘히 방향을 바꾸려는 경우, 붕괴하는 시간이 더욱 가속되기 때문이며, 교정할 시간을 놓쳐 되돌리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2005년 부산은 APEC을 개최한 도시였으며,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불꽃축제가 있었다. APEC 회의가 개최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과연 부산시민은 부산이 APEC 개최도시인지, 부산선언이 과연 지켜지고 있는 지를 염두에 두면서 불꽃축제를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2005년 현 오거돈 시장이 안상영시장의 유고로 시장권한대행이 되었을 때, APEC 개최도시로 선정되었다.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21개 정상 및 대표들은 회의 마지막 날인 2005년 11월 19일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부산선언’을 채택했다. 이 부산선언(2005.11.18-19, 대한민국 부산)에 담긴 부산로드맵에 「부산 기업 아젠다」도 포함되어 있다. APEC이 존재하는 한 부산선언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부산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불꽃축제를 했었다. 당시로서는 부산에 그렇게 많은 국빈들이 온 경우는 처음이었으며, 부산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이제 APEC 개최 15년이 된다. 올해도 광안리바다를 오염시키는,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행사에 많은 예산을 사용할 것인가? APEC이 부산에서 개최되었는지, 부산선언은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이 몇 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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