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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턱에서] 메리 크리스마스김향은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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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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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향은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의 삶은 수많은 만남의 연속이다. 어떤 만남은 기억조차 되지 않고 까맣게 잊히는 한편 어떤 만남은 오랜 동안 마음에 파동과 파문을 남기고 우리 삶에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한다. 발달심리학에서도 개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미 있는 타자(significant others)와의 인격적인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의미 있는 사이를 이루는 데는 시간적 거리나 물리적 제약도 뛰어넘는 관계의 정서적 깊이가 관건으로 작용한다.

오래 전 출장지에서 알게 된 분들이 있었다. 대부분 초면이었는데 힘든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도 서로 위하고 아끼는 마음을 주고받았던 사이였다. 이후 연락이 두절됐지만 그때 맺었던 각별한 관계가 지금껏 내 삶의 일부로 각인돼 있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이란 노랫말이 현실이 됐다. 십여 년의 간격을 뛰어넘은 재회가 며칠 전 성사됐고, 함께 본 영화 “Merry Christmas”가 만남을 더 뜻 깊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알사스 로렌 지역에 대치했던 독일, 프랑스, 영국군의 이야기였다. 영국 부대에는 형제가 한 부대에 배속돼 있었는데 전투 중 형을 잃은 아우가 슬픔을 참아내며 임무를 수행하고 고국의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편지를 쓴다. 형제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도 위생병으로 참전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을 돌보는 일에 뛰어들어 상관의 눈총을 받는다. 반면 이 부대에 파견된 사제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살생을 독려하는 강론을 병사들에게 설파한다.

독일 부대에는 오페라 가수 출신의 병사가 있었다. 아내 역시 오페라 가수였는데 남편을 만나기 위해 성탄 무렵 야전 음악회를 추진한다. 병사들을 위로하는 현장 공연을 통해 재회의 기쁨을 맛본 부부는 예고된 이별을 피하고자 프랑스 진영으로 넘어가 포로 수감을 자청한다. 이 부부가 부른 “당신과 함께라면 죽음도 안식도 기쁜 마음으로 가리”란 가사처럼, 사랑은 전쟁도 추위도 포로 신세가 되는 것도 남편 몸속에 기어 다니는 이도 아랑곳 하지 않게 했다.

프랑스 부대에서는 살벌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일상을 지켜내고자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궁색한 형편에도 이발을 하는 모습, 웃을 일이 없을 때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 고양이를 예뻐하는 모습이 그렇다. 이 부대에는 아들이 상관과 부하로 있었는데 전투에 관해서는 격론을 벌이다가도 손자 탄생의 소식에는 평범한 부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극단적인 위기 속에서도 자아정체성을 유지하고 균형과 통합을 잃지 않으려는 건강한 심리의 발로였다.

1914년 12월 24일 세 진영이 하루 휴전을 결의한다. 사격 소리 대신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야전 불빛 대신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반짝인다. 적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고 가족사진을 보인다. 서로 미소 짓고 상대방의 언어로 감사 인사를 하며 전쟁이 속개됐을 때 적을 보호해준다. 영화 속의 시각적·대조적 이미지가 심상적·비유적 메시지로 다가왔다.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신뢰와 불신, 분열과 화합, 소통과 불통, 이해와 오해. 만남과 이별.

이와 같은 양극적·양가적 대립의 직조가 우리 인생이기도 하다. 한데 사랑, 평화, 화합 보다 증오, 다툼, 분열이 만연하기도 한다. 때로는 화평을 가로막는 사회적 현실 앞에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타 파멸의 길을 택하지 않고 상호 존중과 공생을 향한 협력과 화목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생명체 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일은 결코 포기해선 안 될 지상 과제다.

이 사명을 수행하기 어려운 전장에서도 화평을 위해 마음을 모을 때 국적, 언어, 이념, 종교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국가 간, 병사 간, 가족 간의 이해, 화합, 회복을 가능케 한 것은 사랑의 만남이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숙제를 안고 영화관을 나올 때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과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시간을 공유하게 된 것이 감사했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격적 만남이 무르익고 만남을 통해 사랑이 실천되는 뜻 깊은 세밑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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