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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욕의 어리석음
장종원 선생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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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0  15: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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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애욕은 뿌리가 깊고 단단하며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지혜롭고 어진 사람은 이것을 미리 알아차리고 욕심을 끊고 두루 초월해서 항상 편하게 지낸다. 물망초는 잊지 말라고 하여도 잊혀지고, 꽃은 아무리 예쁘게 피더라도 곧 지고 만다. 지나가면 잊혀지는 모든 것에 사람들은 집착을 하며 산다. 애욕의 즐거움으로 제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 고치를 지어 그 속에서 스러지는 누에와 같다. 지혜롭고 어진 사람은 이것을 인식하여 욕을 끊고 두루 굴레에서 벗어나 괴로움이 없다. 우리들의 자유는 언제나 이중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정욕과 유혹의 관문이고, 둘째는 인생무상의 굴레라는 관문이다. 과거를 과감하게 버리고 미래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내 몸 생각도 버려야 한다. 마음에 걸리는 모든 것을 버리면 생사의 괴로움을 받지 않고 살게 된다.

누구나 젊었을 때 인생은 양양한 바다였을 것이다. 수평선은 미래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희망을 가지고 잡힐듯이 펼쳐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때로는 그 희망의 바다가 균열되어 조각나고, 터지고 찢겨져 황야로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는가? 그것은 이성의 아름다운 매력에 오랫동안 빠져 어긋난 생활을 되풀이하고 무의미한 숙고만 하면서 지낸 탓일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즐거움만 찾으면 음욕을 보고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욕정은 날로 자라 스스로 제 몸의 울타리를 만들어 옭아매게 된다. 연애를 하는 데는 천재적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음을 다하여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과 양심을 가지고 연애를 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항상 깨어있어 깊이 생각하고, 음욕의 깨끗하지 못함을 알면 악마의 감옥을 빨리 벗어나 생사의 번뇌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성의 신비를 추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냄새나는 살덩이에 집착하는 것에 불과하다.

애욕을 떠나 두려움 없고 마음속에 걱정이나 근심 없으며, 번뇌의 속박을 풀어 버리면 생사의 고난을 영원히 떠나게 된다. 생의 밑바닥을 깊이 파고들어 그 참모습을 이해하고 파악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삶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결국 비극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깊은 뜻을 깨닫고 애욕을 떠나 집착이 없으면 생사를 초월하여 그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밤 벚꽃이 아름다운 산길의 불빛 아래서 바다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많은 연인들의 웃음을 바라보다가 문득 젊은 날 카페에 마주 앉아 못내 사랑스럽다고 하던 애인의 눈동자를 떠올려 본 적은 없었는가?

모든 것을 이겨내고 깨달아 집착이 없고 애욕을 극복하여 해탈한 사람은 벌써 성인의 반열에 든 사람이다. 만일 이러한 애욕의 대상이 한둘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바람직한 도리를 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보시에서 불경의 보시가 제일이고, 모든 맛에서 도의 맛이 최고이며, 모든 즐거움에서 법의 즐거움이 최상이고, 애욕의 사라짐은 모든 괴로움을 극복하게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집착이나 애착에서 벗어난 실상의 긍정적인 모습이고, 그 사물의 생명과 동화된 자태이다. 사랑은 끊임없는 창조적 활동이지만 애착은 모든 사물의 생명을 순환시키지 아니하고 막히거나 걸리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제 몸을 스스로 묶어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애욕의 즐거움을 그대로 붙들고 있어서 남을 헤치고 또 자신을 죽인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치정의 범죄적 본능처럼 나타난다. 그렇지 않으면 필요이상의 겉치레로 하찮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려 마음이 상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밭은 잡초의 해침을 받고 사람은 탐심의 헤침을 받으니 탐심 없는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면 대가로 받는 그 복은 한없이 많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빨간 선악의 과실을 바라보고 무한한 식욕을 느꼈을 때 인간에게는 영광과 희망이 가득 찬 새로운 삶의 동이 텄다. 그리하여 맛있는 과즙이 아담의 목구멍으로 넘어갔을 때부터 인간은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여겼다. 신의 인간에서 탐욕의 인간으로 변하여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나락으로 들어선 인간은 성냄의 해침을 받게 되었다. 자비나 재물을 베풀더라도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보다 성냄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면 이로 인해 거두는 복은 더 없이 많을 것이다. 어떤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어린이에게 베푸는 마음은 거룩하고 귀하며 건강하고 유쾌하다. 이것은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본능이 드러나는 현상이며 특징이다. 받는 자는 기쁨의 어긋남이 없으며 주는 자는 야심 없고 순수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리석기 때문에 난관에 부딪치게 되어 있지만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면 받게 되는 복은 끝이 없을 것이다. 사람은 마땅히 겸손해야 하지만 모래알처럼 하찮은 일에도 모래알 같이 미미한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사람은 욕심의 해침을 받으므로 욕심 없는 사람에게 자비를 많이 베풀면 그에 따른 복은 한이 없다. 항상 사람은 자기의 것을 남의 것보다 크고 아름답게 내보이며 만족하고 기쁨을 느끼는 오만한 존재인 것이다. 또한 사람은 항상 남의 것을 자기의 것보다 크고 아름답게 느껴 모자란다고 생각하며 부족함에 허덕이는 존재인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 사람들은 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보는 눈이 어둡고 생각이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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