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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예가 만든 형식주의
장종원 선생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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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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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적재적소 인재등용·신상필벌은 바른 정치를 펴나가는데 있어서 필수 조건이다. 그러므로 순자는 무능한 왕족들이 바른 정치를 문란화 시키는 것을 배격하고 인재 본위의 등용을 주창하였다. 이는 계급 타파를 말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직위·신분 제도를 고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주장은 모순이 아니라 제도와 형식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순자는 문식(文飾)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문식이란 실속 없이 겉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순자는 사용하는 데 따라 뉘앙스를 달리하고 있다. 그 원뜻은 문화성 또는 외형미란 뜻이다. 이것은 만민의 정서를 통일하자는데 그 의의가 있었다. 먹고 입고 생활하며 삶을 영위하는 데는 신분 등차에 따라 일정한 제한을 가했다. 행동과 생활 방식, 사회적 행사도 어느 정도 규범이 서 있어야 통제되어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하나의 문화적 시설, 생활의 미적 장식, 정서의 쾌락을 더해 줌으로써 용기를 북돋아주고, 인화를 도모하며, 순수한 감정을 길러 주고, 경건한 기풍을 길러 주되 빗나가지 않도록 선도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회의 질서를 더욱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또 상하 혼연 일체가 되면서도 각자 다른 분야의 경계를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높고 귀한 자리에 있는 사람의 고귀한 모습을 더욱 빛내 보자는 뜻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의 중요성과 음악의 교화적 가치를 중요시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예론을 위시해서 악론·부국·군도·왕제도 등 각 분야에 한 줄기로 일관되게 내포된 사상이고, 또 분야에 맞게 산재해 있는 이론들인 것이다. 예에 대한 사상이 바른 정치의 사상이 되고, 이것이 현실 정치로 실현되어 국가 제도가 완비될 때, 그리고 적재적소·신상필벌, 사회적 각 분야의 경계 확립 등 구체적인 실현단계에 이르면 법가의 사상인 법치주의와 합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왕도와 패도 같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순자는 유가에서 출발하여 법가로 귀결되어지는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다.

실례로 장례에 대한 그의 설명은 아주 상세하다. 그 절차와 의식·범절이 세밀한 데까지 미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의 생활정치, 바른 정치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절차의 원리로 설명한 방법은 ‘변이식(變而飾) 동이원(動而遠) 구이평(久而平)’이란 것이다. 이는 곧 ‘변한다는 것은 수정한다는 것이고, 움직임은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니 영원히 잘 보완하여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의 진행에 따라 시신을 장사 지내기 전에 관에 넣어 일정한 곳에 안치하고, 거두어들이고, 시대나 상황이 변할 때마다 의식을 가꾸어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꿈이 없으면 보기 흉하고, 흉하면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성의 없는 가식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신을 거두어 머리·팔다리를 바로 잡아 모시는 장소에서 빈소로, 빈소에서 묘지로 시체를 옮길 때마다 현실과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늘 가까이 있으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시들해서 잊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경건한 마음을 잃는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제례의 절차가 있는 것은 차차 시일이 가면 평시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산 사람에게 대하듯 예를 표하고, 다음에는 형식만 있고 실용성이 없는 물건을 사용하고, 나중에는 다 매장하고 오는 과정은 처음에 살아있는 것처럼, 이후에는 죽은 사람에게 대하는 예의 과정을 거쳐서 죽음을 마무리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구·격식·공물·의식 하나하나가 다 움직일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중에 있어서 절차와 과정을 주기로 정한 것은 주기가 되면 모든 만물이 다시 제 계절로 돌아오는 순환 때문에 상을 끝내고 죽은 사람과 함께 지내다가 삶의 현실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부모의 상은 특별히 애통하고 슬픔이 크기 때문에 간단하게 끝날 수 없어 일 년을 넘기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끝날 수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일상생활로 돌아오지 아니할 수도 없다. 그런 까닭에 성현들이 그 절차에서 삼년을 허락하고 그 이상은 금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표준으로 친소의 등급에 따라 상례에서 정한 오복의 제도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당시로는 이것이 극히 합리적이어서 털끝만큼도 가감 할 수 없는 규범이고 절차였던 것이다. 단 한 가지 절차라도 흐트러뜨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때부터 누가 만들어낸 법도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시대적인 변천에 따라 변화하면서 규범화했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왕이 지켜 온 만세의 법칙이기고 하다. 순자가 예에 대한 형식과 제도를 완성했다는 것도 이만하면 최선을 다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과 절차, 그리고 제도는 예절 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이어서 어떠한 종교보다도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유교의 예를 받아들인 후 몇 백년간을 생명처럼 여기고 지켜 왔었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그 영향력은 실로 놀랄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당시에는 예가 하나의 규범이고 국가의 제도로서 통치자의 관리 하에서 그 실천이 요구될 때 그것은 법치주의가 되고 학술·사상의 엄격한 통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를 지탱하고 다스리는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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