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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성악설과 예론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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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6  10: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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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순자 하면 성악설을 생각하게 되고, 순자 철학의 근원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모든 사상과 이론이 여기서 출발한 것처럼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순자 유학의 근원은 예론에서 출발했고 성악설은 그 결과에서 나온 일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순자의 모든 말이나 글들은 이 예론으로 일관되고 통일되어 있다. 더욱이 유학의 종조로서 그의 위치도 예론이 공고히 하여준 것이다. 공자는 주로 인을 강조했고, 맹자는 의를 말하였으며, 순자는 예를 주장했다. 인이란 유도의 대원리다. 의란 유도의 대행정이다. 예란 유도의 대형식이다. 사람의 윤리, 이것이 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항상 서로서로 인간애가 흐르게 마련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근원으로 하나의 질서는 유지되고 발전된다. 이 질서가 곧 윤리다. 그런 까닭에 인은 유도의 대원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모든 현상은 선과 악의 대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직과 부정, 권력과 기만을 바로 잡아 가기 위해서는 오직 인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에 사회 정의가 있고 정의와 투쟁이 있는 것이다. 의에 죽고 의에 산다. 이것만이 가장 정당한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의란 대행정인 것이다. 한유가 ‘널리 사랑하는 것이 인이고, 가서 마땅한 길이 의다’고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적당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문화와 생산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는 하나의 제도가 필요하며, 제도란 일정한 격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사회적 형식이다. 이것이 곧 예다. 예는 선대가 마련해 놓은 규범이다. 그런 까닭에 예란 대형식이다. 인을 위해서 불인을 물리치고 승화된 것이 의라고 할 수 있고, 그 출발은 선에 있으며 그것은 주관적이고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맹자의 성선설은 당연한 논리다.

성인은 우리 인류 생활에 가장 옳고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었다. 이 제도에 따라 사회 질서를 지켜 나간다면 그것은 행복이고, 평화며, 인이고 선이다. 현실사회에서는 제도와 질서에 어긋나는 방종한 행동을 하기 쉽다. 따라서 사회의 모든 질서를 통제해 나가려면 방종이나 기준 없는 변론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는 규범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 하는 판별의 기준이 먼저 서 있어야 한다. 이 기준의 척도가 곧 예다. 예는 함부로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고 또 익혀서 몸에 스며들어야 한다. 예를 갖추어 선을 이루지만 멋대로 내버려 두면 하나도 예에 맞지 않는다. 예에 맞지 아니하면 사회는 혼란하고 인류는 불행하다. 그렇게 생각할 때 예에 대한 관찰은 객관적이고, 분석적이어야 그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인간은 예를 배우고 익혀 그것을 가르치고 훈련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선이 될 수는 없다. 배우고 익히지 않은 처음 상태를 비추어 볼 때 순자의 성악설은 당연한 논리다. 그런 까닭에 맹자의 성선설이나 순자의 성악설은 후세의 학자들이 인성을 명제로 과학적으로 연구된 결과 논리적이고 균형 잡힌 이론이란 평가를 받기 보다는 정신적인 면과 형식적인 면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것이 유학의 종조로서의 그들의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은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선대의 제도를 절대시하던 그들의 이상이 현실의 변모해 가는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형태의 변화였을 것이라 본다.

유학자로서의 순자에 대한 평가는 유가 전래의 학문과 예절에 가장 정통했고 또 실천적 삶의 과정에서 습득했으며 이론과 행위를 고수했다는 점에 있다. 그의 정치관은 매우 현실적이고, 상세하고 정밀했다. 그 이론의 방식은 현실적으로는 매우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극히 전제적이고 형식주의적이며, 공리주의를 낳을 수 있는 소지를 지니고 있었다.

순자의 사상을 예교 사상 혹은 예치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예라고 하는 말을 빼면 순자의 사상에서 남는 것은 거의 없고 예란 말만 충분히 설명하면 순자의 사상에 대한 설명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예에 대한 사상은 순자 전편에 걸쳐 나타나 있다. 그의 예치란 것은 사람은 나면서부터 집단생활을 하고 사회조직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므로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사람은 가장 귀한 존재이므로 예치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집단생활·사회생활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맹수와 대적하여 살아남을 힘도 없고, 생산 능력도 없는 가장 약한 동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집단생활을 하고, 사회생활도 할 줄 알기에 능히 모든 것을 이용하고, 생산 제작하며, 모든 것을 지배할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이 힘을 집약하면 평안과 발전이 있고, 이 힘이 분산되면 불행과 고통만 남는다. 능력을 끌어 모아 만든 것이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규범이다.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유능한 지도자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유능한 지도자는 규범을 지키고 시행해 나가기 위해 규범을 잘 알고 그 규범이 인격화된 위대한 인물을 찾아서 정치를 함께 하여야 한다. 규범이란 곧 예다. 그 위대한 인물이 바로 예를 숭상하고 실천하는 대유들이다. 그들은 성인의 도를 알고 체득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순자가 말하는 예치사상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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