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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의 전략
장종원 선생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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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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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군대를 이끌고 적지에 깊이 들어가서 적병과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게 되었는데, 적군은 군수품과 식량이 풍족하고 아군은 빈약하며, 적군은 군대의 인원수도 많은데 아군은 수가 적다. 물을 건너가서 적을 공격하려고 하나 전진할 수가 없고 오랜 기일에 걸쳐 지구전을 벌이려고 하나 식량이 적다. 아군은 염분이 많은 메마른 땅에 자리 잡고 있어서 사방에 고을이 없으며, 또 풀과 나무조차 없어서 삼군은 약탈해올 양곡도 없고, 소와 말에게 먹일 마초를 구할 곳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련할 수 있는 전략을 태공은 밝힌 바 있다.

삼군은 준비가 없고, 소와 말은 먹이가 없으며, 병사들의 양식이 없으면 공격할 수도 없고 수비할 수도 없는 것이니 편리한 방법을 찾아서 적을 속이고 급히 그 곳을 빠져나가야 하며, 뒤에는 복병을 숨겨 두어야 한다. 적을 속일 수 없으며, 아군의 병사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동요하는 사이에 적병이 건너와서 아군의 앞뒤에서 공격하니 우리의 삼군이 무너져 달아난다. 이런 경우에 탈출할 길을 찾는 방법은 금과 옥으로 매수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반드시 적의 사자에게 뇌물을 주고 그에게 탈출의 단서를 얻어야 한다. 그러한 계략은 정밀하고 미묘하게 진행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적이 우리에게 복병이 있는 것을 알고 대부대의 군사들은 물을 건너오지 않고 소규모의 부대를 지휘하는 장수가 물을 건너오니 우리의 삼군은 크게 두려워한다. 이러한 경우는 아군을 나누어서 충진을 만들고 각 부대는 유리한 지점을 점거하게 한다. 적병이 다 나오기를 기다려서 우리의 복병을 내놓아 그들의 후미를 갑자기 공격하게 하고, 강력한 쇠뇌로 양쪽의 측면에서 적군의 좌우를 사격하게 하며, 전차 부대와 기마 부대는 나누어서 오운의 진을 만들어 능숙한 기동 작전으로 그들의 앞뒤에 대비하게 하고, 삼군이 신속한 전투를 벌이면 물 건너편에 있는 적이 우리 군대가 전투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그 주력 부대가 반드시 물을 건너올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복병이 갑자기 일어나서 그들의 후미를 빨리 습격하고 전차 부대와 기마 부대가 그들의 좌우를 들이치면 적병이 아무리 많더라고 그 장수는 반드시 패주할 것이다.

대개 용병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적과 대치하여 싸우기 위해 펼친 진영을 포진시킬 경우에는 반드시 전차를 주축으로 하는 진법을 두며 군대를 유리한 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뒤에는 전차 부대와 기마 부대를 나누어서 오운의 진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작전상의 기계라고 한다. 오운이라고 한 것은 까마귀처럼 흩어지고 구름처럼 합하여 변화무궁하다는 뜻이다. 오운처럼 상황과 형편에 따라 군사를 모으기도 하고 분산하기도 하며, 이동하기도 하여, 나타났는가 하면 사라지고, 사라졌는가 하면 나타난다. 동에 있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서에 있고, 동을 치는 체하고는 서를 습격하는 자유자재한 용병술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런 용병을 기병이라고 한다. 어떤 전쟁에서도 전쟁을 승리하게 만드는 전술은 이 기병에 있는 것이다. 손자도 전쟁을 “기계로써 이긴다”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용병을 잘한다는 말은 결국 기병을 잘 운용한다는 말이 된다. 산에서는 산에 적용한 오운진법을 쓰고, 늪과 연못지대에 있으면 그 지대에 맞는 오운진법을 써야 한다. 그래서 태공이 오운산병을 논하고 오운택병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기병만이 능사가 아니다. 전쟁에 있어서는 정규 부대나 본진의 태세가 근본인 것이다. 먼저 본진의 수비 태세와 공격 자세를 완전히 한 뒤에라야 비로소 기병의 활약이 전개되는 것이 순서이다. 본진은 근본이고, 기병은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공도 용병의 큰 모략은 적과 대치하고 전진에 임하게 되면 반드시 먼저 본진 자체의 수비와 공격 태세를 위하여, 본진의 전면에 전투 부대를 배치하여 군사들이 안심하고 편하게 있게 만든 뒤에 전차 부대와 기병을 나누어 오운진을 만들라고 한 것이다. 적의 대부대가 물을 건너올 때에 아군의 복병이 갑자기 일어나서 습격하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전법은 전사에 많은 사례들이 있다. 고구려의 살수대첩도 이 전술의 하나였다.

고구려 영양왕 23년(612년)에 중국 수나라의 양제는 113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그 때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적병을 국내에 깊숙이 유인해 들였다. 적병이 계략에 빠진 것을 깨닫고 허둥지둥 후퇴하는 것을 살수(지금의 청천강)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쯤 건넜을 때에 갑자기 공격을 퍼부어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살아서 돌아간 수나라의 군사는 2천 7백 명에 불과하였다는 전사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 전쟁에서 수나라는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겨우 고구려의 요하 서쪽 전진기지인 무려라(武?邏 : 지금의 新民 동북 遼濱塔)를 장악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수나라는 613년과 614년에 거듭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오히려 이로 말미암아 내부의 동요가 일어나 종말을 재촉하고 말았다. 한편, 고구려도 거듭되는 수나라의 침공을 격퇴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를 신장시켰으나, 많은 국력의 소모로 뒷날 멸망에 이르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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