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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턱에서] 금고기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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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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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환 수필가
 
내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다가 50여 년이 지난 요즘, 먼지 가득한 내 기억의 다락골방 문을 열고 나타난 이솝우화 ‘금고기’다.

늙은 어부가 하루 종일 공치다가 해질 무렵 겨우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았다. 누렇게 황금빛이 나는 금고기였다. 금고기는 자기는 용왕의 아들이라 놓아달라고 사정했다. 마음 착한 어부는 금고기를 놓아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할멈은 버럭 화를 냈다. 당장 저녁때거리가 없는데, 금고기를 거저 놓아주었다며 영감을 윽박질렀다.

집에서 쫓겨난 어부가 바닷가에서 신세타령을 하자, 금고기가 나타났고 바로 헛간에 쌀을 가득 채워주었다. 얼마 후에 할멈은 밥만 먹고 사냐며 불평했고, 금고기는 뚝딱 다시 대궐 같은 집을 안겨주었다. 나중엔 할멈은 넘치는 욕심대로 여왕까지 되었다. 그러나 할멈의 욕심은 끝이 없어 닦달에 견디다 못한 어부는 할멈이 금고기까지 부하로 삼고 싶어 한다고 말하자 금고기는 말없이 사라졌다. 늙은 어부가 집에 돌아오니, 쓸어져가는 오막살이에 깨진 쌀바가지를 들고 할멈이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고 절제하지 못하면 결국 패망하고 만다는 교훈은 잘 알겠는데, 어린 맘에도 할멈에게 끽소리 한번 못하고 절절매는 늙은 어부가 ‘왜 이렇게 무력할까’ 안타까웠다. 이건 착한 것이 아니라 ‘바보등신’이라 분개했다. 바보가 아니라면 무언가 할멈에게 약점을 단단히 잡힌 모양이다.

내 선배 선생님 A는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이다. 학생 앞에서는 물론 동료교사들에게도 위세가 당당하다. 그는 집에서 아내나 자식 앞에 왕으로 군림하고 대접받는다고 수시로 자랑했다. 모두들 당연히 그러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 친한 교사 일곱은 부부동반으로 캄보디아 앙크로와트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패키지여행의 필수 코스로 악세사리 보석가게에 들렀다. 이 가게에서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A선생은 사모님에게 사정없이 당하고 있었다. 우리 눈치를 보아가며 남편 윽박지르기가 꼭 어부 할멈 꼴이다. 이건 처음이 아니라 일상이란 느낌이 팍 왔다.

수년 전 A선생은 등산을 다니다가 젊은 여자를 만났다. 수시로 함께 손잡고 다니는 다정한 모습을 아내 친구에게 들켰다. 아내와 시집간 딸은 한 달을 미행 끝에 현장을 잡았고, 마누라보다 딸년이 더 길길이 뛰었다. 그나마 아들 녀석이 ‘뭐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심각한 수준도 아닌데’ 하며 두둔해 주더라나. 어쨌든 그 후로 A선생의 신세가 이렇게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요즘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이솝이야기 속의 어부가 젊을 때 바람을 피웠다든지 노름을 해서 패가망신을 했다는 그런류의 약점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법 없어도 살 착하고 착한 사람일 뿐이다.

물론 어릴 때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 내 주변의 친구들을 둘러보며 이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몇 달 전에 크리스천 문인협회에서 여름수양회로 유익한 시간을 가졌고, 지리산 청학동에서 일박했다. 누군가 산장 주인의 장인이 굉장한 재력가라 귀띔한다. 계곡을 낀 수 만평이 처갓집 소유라고 한다. 나는 단박 공씨 성을 가진 친구를 가리키며

“우리 공 장로님 처갓집도 굉장합니다.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어요.”

모두들 눈이 둥그레지며 나를 쳐다본다.

“공·처·가!”

우리 친구들 처갓집은 성씨 불문하고, 왜 하나같이 모두 ‘공처가’인가. 내가 알기로는 젊을 때 남부끄러운 실수를 저지른 친구는 없다. 모두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성실하게 일해서 가정을 일군 모범 가장들이다. 그러나 서로 말은 안 해도 어느 순간부터 집안에서 호랑이 같은 마누라에게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신세라는 것을 우리끼리는 다 안다.

왜? 무엇 때문에, 우리 신세가 이렇게 하나같이 젖은 낙엽처럼 되었나?

언제부터 일까. 거시기가 힘을 쓰지 못하는 즈음일까. 직장을 퇴직하고 삼식이라 낙인찍힐 때부터인가. 팔난봉 꾼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우리 나이에 이르면 풀이 죽고 마는 것을 보면 수컷의 숙명인가.

2600년 전 그리스에서 노예로 살았다는 ‘이솝’은 대단한 천재였음에 틀림없다. 먼 훗날 동방의 한국 땅, 이 시대를 사는 칠순 영감님들의 신세를 ‘금고기’를 통해 고스라니 예지해준 것을 보면….

그러나 이 천재에게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금고기가 사라지면서 늙은 어부도 함께 데려갔다면, 할멈은 자기 과욕의 후회만 했을까. 그렇게 쓰레기 취급했던 영감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지 않았을까.
이 땅의 호랑이 아내들이여, 숨만 쉬어도 곁에 있을 때가 좋았다는 뒤늦은 탄식을 새겨들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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