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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턱에서] 고려장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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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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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환 수필가
 
며칠째 치통을 앓던 아내에게 대학병원에서는 결국 어금니 하나를 뽑아야겠다고 한다. 그나마 몇 년 동안 잘 버텨 왔다며, 당뇨치료 의사의 동의서를 받아 오라고 한다. 무슨 뽑으면 뽑는 거지 다른 의사의 소견서까지 첨부하란 말인지. 더욱이 발치拔齒 예정일이 석 달 후로 잡혔다. 그나마 환자가 밀려 가장 빠른 날짜라며, 석 달분 약을 처방해 준다.
한동안 예민해진 아내 신경질의 불똥이 결국 나에게로 튀었다. 새벽 잠자리에서 눈 뜨자마자 '이빨 닦았냐?' 아침, 점심, 저녁식사까지 하루 네 차례 챙기다 못해 닦달이다. 아니, 칠십 평생 하루 한 번만 이빨을 닦던 나에게 네 번씩 닦으라니 여간 고역이 아니다.
자기 당뇨약 먹기는 종종 빠뜨리면서 내가 깜빡 하면, 영감 이빨 닦는 것까지 챙겨야 하냐며 한탄이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데, 정작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바로 나다. 한 번만 닦아도 내 이빨은 아직까지 멀쩡한데, 알뜰하게 열심히 닦던 자기 이빨은 곧 뽑아야 하지 않는가.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일어나자마자 시위하듯 이빨부터 닦아보이리라. 화장실 세면대로 가는데 아내가 부엌에서 날 불러 세운다. 이른 시간 벌써 부엌에 있는 걸 보니, 내 생일 상 차리려 서둘렀나보다. 시키는 대로 마늘을 까고 있는데, 아내가 볼멘소리를 한다. '얘들이 아직까지 전화도 없다'고.
바로 그때 내 휴대폰이 울린다. 며느리 전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할아버지 생일 축하합니다.~♪♬"
며느리가 손자더러 이리저리 시키는 말소리와 함께 초등학교 1학년 손자 녀석의 생일축하 노래 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전화기를 바꿔든 며느리에게 내가 불쑥 간 큰 말을 했다.
"나도 아무개 친구처럼 며느리가 차려주는 생일밥상을 받고 싶은데…"
"아이고, 어쩌나. 호호호, 아버님, 이담에 열 그릇을 한꺼번에 해 드릴께요. 우선 조금 송금해 드렸어요. 친구 분들께 한턱 쏘세요."
아니 열 그릇을 한꺼번에 해 드린다니, 그러면 10년 동안 '땡'하다가 팔순 때 보자는 말이 아닌가. 2학기 개학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학교 결근하고 시애비 생일상 차리려 서울서 부산까지 오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당연히 농으로 한 말이지만 살짝 섭섭한 맘이 든다.
잠시 후 먼저 출근한 아들에게서도 전화가 오자 아내가 잽싸게 전화기를 낚아챈다.
"은성이 어미에게 송금하지 말라 해라. 작년에 칠순잔치 그만큼 성대하게 했으면 됐지, 이제 그만 해라."
"아버지 칠순잔치는 잔치고, 어째 생신을 모른 체 하란 말이요?"
"이봐라, 영훈아. 옛날 사람들이 칠순을 크게 한 것은, 잔치 후에 고려장하려고 한 거다. 우리는 자꾸 자식 짐 되기 싫으니, 고려장했거니 하거라."
그래도 아들이 뭐라고 머뭇거리자
"영훈아, 네 할머니 금년에 구십 사세지. 엄마가 사십오 년째 며느리 노릇 아주 지겹거든. 너는 아들이지만 며느리는 딸이 아니거든."
이게 무슨 뚱딴지 이론인가. 100세 시대에 벌써 고려장 친 셈 하라니. 어제쯤 미리 전화가 없어 아무리 삐졌다 해도 이건 좀 심하다. 놀라 아내를 보니 아내는 날 보고 눈까지 껌뻑이며, 웃는다. 원 참, 무슨 꿍꿍이 속셈인지.
"애들 맘 불편하게 무슨 전화를 그리 하노?"
아내는 단박 모르는 소리 말란다. 침은 확실히 제때 놓아야 하고,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용돈도 준다고 덥석덥석 받으면 싫어지는 법이란다. 적당히 퇴자도 놓을 줄 알아야 한단다.
그건 그렇고 이빨은 닦았냐고 정색을 한다.
"아참, 닦으려 가는데 마늘 까라고 불러 세웠잖소."
"마늘 깐 게 언젠데 핑계는."
"허참, 환장하겠네. 그러면 한번 물어 봅시다. 개가 이빨 닦는 거 봤소? 개 충치 앓는다는 소리 들어 봤소? 평생 여문 뼈다귀만 잘 깨물어 씹더만."
의기양양한 나에게 아내는 결정타를 먹인다.
"아이고, 이 양반아, 개는 기껏 살아야 십 오년이라, 우리도 고려장 하고나면 더 이상 병원 갈 일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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