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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와 근심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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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3  17: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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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옛날 걸과 주는 명예로는 천자가 되었고, 재물로는 천하를 가졌었다. 그러나 오늘날 작은 도둑을 보고 행실이 걸·주와 같다고 하면 곧 부끄러워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걸·주를 천하게 여기는 까닭은 마음으로 수긍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와 묵자는 궁한 필부였다. 그런데 한 나라의 정승을 보고 행실이 공자와 묵자 같다고 하면 곧 얼굴색이 변하고 낯빛을 고치면서 나는 아직 멀었다고 겸손해 하는 것은 그들을 선비로서 참으로 존경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권세가 천자라고 해서 반드시 귀한 것이 아니고, 궁한 필부라 해서 반드시 천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와 천의 분별은 오직 행실이 좋고 나쁜데 있는 것이다.

장자의 제자 만구득은 “좀도둑은 도둑으로 남지만 큰 도둑은 제후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제후의 문전에는 인의의 선비인 의사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옛날 환공 소백은 형을 죽이고 그 형수를 첩으로 삼았지만 제나라의 현인인 관중은 그의 신하가 되었고, 또 제나라 대부인 전성자는 그 임금 관공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았지만 공자는 들어가 선물을 받았다. 관중이나 공자는 환공이나 전성자의 사실을 이야기하고 천하게 여기면서 실제로 그들이 행한 것을 보고도 신하가 되었으니 이것은 곧 말하고 행동하는 것과 느끼는 감정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세상의 모순이다. 그러므로 옛글에도 어느 것이 악이고 어느 것이 선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하였다. 성공하면 머리가 되고 실패하면 꼬리가 된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선악이 결국 성패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덕행을 닦지 않으면 장차 천하고 치밀하지 않아 차례를 인식할 수 없을 것이고, 귀하고 천함의 차별이 없을 것이며, 어른과 아이의 순서가 없을 것이다. 이는 오륜과 육기를 구별할 기준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요임금은 맏아들 단주를 미워하여 죽이고, 순임금은 어머니의 아우 상을 쫓아내었으나 그래도 엉성하고 천하다 하지 않고 좋은 임금으로 숭앙받고 있는 것이다. 탕은 걸을 몰아내고 무왕은 주를 죽여 나쁜 군주로 회자되니 귀와 천의 구별이 모호한 것이다.

주나라 고공의 서자 계력은 적자가 되었고, 주공은 형을 죽였으나 추앙되었으니 어른과 아이의 순서를 말하기 어렵다. 유자는 여러 가지 그럴듯한 말을 지어 내고, 묵자는 평등한 사랑을 주장했으나 이들의 말과 행동이 서로 모순되니 오륜, 육기의 기준이 없어진 것이다. 또 명예를 위해서 힘쓰고 이익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명예나 이익은 모두 그들이 내세운 이치에도 맞지 않는 것이고, 또 도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소인은 재물을 따르고 군자는 이름을 따르는 것이다.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마음이 변하고 본성을 바꾸어 지켜야할 도리를 따르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인 외물을 따르는 것은 한결같은 현상이다.

그러므로 옛말에 소인이 되더라도 이익을 말하는 소인이 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본성으로 돌아가 자연을 따르라고 한 것이다. 일이 옳거나 그르거나 상관 말고 자연의 대도에 비춰보아야 한다. 그래서 눈앞의 사방을 두루 살펴보고 사계절과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그래서 뜻을 온전히 이루어 도와 더불어 즐겁게 지내야 한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에 따른 행동을 좇지 말아야 한다. 이는 장차 참된 본성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와 귀를 따르지 말고 공을 이루기를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은나라의 충신 비간은 주임금에게 간언하다가 심장이 쪼개어져 죽었고, 오나라의 충신 자서는 눈알을 도려내는 참화를 당했으니 이것은 충신의 재앙이다. 비궁은 그의 아버지가 염소를 훔쳤다는 증거를 댔다가 죽었고, 미생은 물에 빠져 죽었으니 이것은 신의의 우환이었다. 포자는 선 채로 말라 죽었고, 신자는 스스로 죄 없음을 변명하지 않다가 죽었으니 이것은 청렴의 해로움이었다. 공자는 도를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어머니의 임종을 못했고, 광자는 아버지의 임종을 못했으니 이것은 의의 손실이다. 이런 일은 옛 세상의 옳음에 대한 상처로서 뒷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 된 사람은 그 말을 바르게 하고, 그 행동을 기어이 참되게 하기 때문에 재앙을 입을 수 있고 근심에 고통 받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명예를 위해서 일어나고, 이익을 좇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부귀하면 세상 사람들이 몰려와 아첨하고 스스로 낮추며 부귀한 자는 스스로 높아지는 것이다. 대개 남이 스스로 낮추어 높임을 받는 사람은 품격이 오래 유지되고 편안하며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혜가 모자라거나 알고도 행할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높아지려고만 한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한 고을에 함께 살아 빼어난 위인이라 인정받는 선비도 고금의 사람들이 볼 때는 그들의 주장에 대한 시비를 명확하게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세상과 더불어 동화되어 지극히 중하고 높은 본성을 버리고 뭇사람들이 추구하는 부귀를 좇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삶을 오래 편안히 하며, 뜻을 즐겁게 하는 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귀만 구하고 하늘의 이치인 비애와 환락이 일어나는 까닭을 모른다. 그러므로 귀로는 천자가 되고 부로는 천하를 가진다고 해도 그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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