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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지혜로 바꾸는 삶의 자세
장종원 선생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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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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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공자의 제자 원헌이 노나라에 있을 때 그가 지내는 방은 사방 여덟 자였으며, 마르지도 않은 풀로써 지붕을 이었고, 쑥대로 만든 사립은 완전하지 못하며, 게다가 뽕나무 가지로써 지도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부서진 물동이로 창을 만들고, 그 창은 헝겊으로 막았다. 위에는 비가 새고 밑은 축축했다. 그러나 원헌은 그 안에 편안히 앉아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의 또 다른 제자인 자공이 큰 말을 타고, 안은 초록빛, 겉은 흰 일산을 들고 찾아 왔지만 작은 집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자공은 말에서 내려 나아가 원헌을 뵈었다. 원헌은 화산관을 쓰고 헤어진 검은 신을 끌면서 비름대지팡이를 짚고 나와 자공을 맞았다. 화산은 위아래가 균형 잡히고 평평하다. 그것으로 갓을 만들어 쓴 것은 그 마음의 균형과 평평함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자공은 원헌을 보고 물었다. “선생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병이 들었습니까?” 원헌은 대답했다.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배우고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 합니다. 나는 가난이지 병이 아닙니다.” 자공은 머뭇거리면서 이를 무안하게 생각했다. 원헌은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의 명예를 구해서 행하고 당파를 만들어 사귀며, 남을 위해 공부하고 자기를 위해서 가르치며 인의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고 수레와 말을 꾸미는 것을 나는 차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공자의 제자 증자가 위나라에 있을 때 누더기 옷을 입고 얼굴은 부었고 손발에는 못이 박혀 있었다. 사흘을 굶는 수도 있고 십년 동안에 옷 한 벌 지닐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갓을 바르게 고치면 갓 끈이 끊어지고 옷소매를 잡으면 팔꿈치가 드러나며 신을 신으면 뒤축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헤어진 신을 신으며 성덕을 기리고 그것을 신명에 고하는 시를 읊으며 그 소리는 천지에 가득 차서 마치 금석에서 나는 아름다운 음악 같았다. 천자도 그를 신하로 둘 수 없고 제후도 그를 친구로 할 수 없었다. 그 뜻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심성을 기르는 사람은 몸뚱이를 잊고, 생명을 기르는 사람은 물질의 이익을 잊으며, 도를 얻은 사람은 지혜의 활동인 마음을 잊는 것이다.

공자는 제자 안회를 보고 물었다. “회야 가까이 오너라. 너는 집도 가난하고 지위도 없는데 왜 벼슬을 하지 않느냐?” 회는 “나는 벼슬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성 밖에 밭을 오십 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으로써 죽은 끊여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성 안에는 집터를 오십 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으로써 삼베옷은 입을 수 있습니다. 거문고를 타면 스스로 즐거워할 수 있고 스승의 도를 배워서 스스로 즐길 수 있습니다. 나는 벼슬을 원하지 않습니다.” 공자는 감명을 받은 듯 얼굴빛을 고치면서 말했다. “좋구나! 너의 뜻을 들으니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이익을 위해 스스로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얻은 것이 있는 사람은 부귀를 잃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행실을 잘 닦은 사람은 지위가 없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익힌 지 오래전이었는데, 이제 회를 보고서 비로소 깨달았구나. 이것은 나의 큰 복이다.”

중산지방에 있었던 위나라의 모가 현인인 첨자에게 물었다. “당신의 몸은 세속을 떠나 강과 바다 위에 있으면서 내 마음은 위나라의 궁중에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첨자는“생을 중하게 여기면 곧 영화와 이익은 가벼워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모는 “나도 그런 줄은 알았지만 아직 영화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첨은 “그 욕심을 버릴 수가 없거든 스스로 그 욕심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정신을 해침은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 버릴 수 없으면서 억지로 그것을 따르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중상으로 병이 두 겹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이기지 못하는 것이 하나의 병이오, 또 억지로 따르지 않으려는 것이 하나의 병으로, 중상을 입은 사람으로서 오래 사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모는 천자 만승의 아들이다. 그가 바위굴에 산다는 것은 지위 없는 사람보다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가 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철저한 신념은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의 국경에서 곤궁했을 때 이레 동안이나 더운 음식을 먹지 못하여 얼굴이 몹시 여위었었다. 그러나 방에 앉아서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불렀다. 이때 자로와 자공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선생은 두 번이나 노나라에서 쫓겨났고, 위나라에서는 업적이 깎이었다. 송나라에서는 나무 밑에서 예를 강의하고 있을 때 환추라는 사람이 나무를 베어 넘겨 공자를 죽이려고 한 적도 있으며, 상주(정식 나라이름은 없고 이야기 속의 나라이름)라는 나라에서는 궁했고, 진나라와 채나라에서는 포위를 당했다. 선생을 죽이려는 사람도 죄가 없다 하고 선생에게 난폭한 사람도 금지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선생은 거문고나 타고 노래나 부르면서 소리를 끓을 줄을 모르니 군자로서 부끄러움이 없이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대단하지 않는가?”

군자는 도에 통한 것을 통이라 하고, 도에 궁한 것을 궁이라 한다. 인의의 도를 안고서 어지러운 세상의 근심을 만난 것뿐이다. 그 정도를 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도에 궁하지 않고 어려움에 다달아도 그 덕을 잃지 않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추위가 닥쳐서 서리와 눈이 내렸을 때 비로소 소나무 잣나무의 무성함이 변하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후손들은 군자가 어려움을 오히려 지혜로 삼는 자세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에서 본보기를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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