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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부산의 지명 부자 富가 먼저냐 가마 釜가 먼저냐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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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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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시 관광협회 부회장,
    대륙항공여행사 대표
 

부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02년(태종 2년) 1월 28일『태종실록』에 富山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며,『경상도지리지(1425)』『세종실록지리지(1454)』『경상도속찬지리지(1469)』등에 "동래부산포(東萊富山浦)"라 하였고, 1471년 편찬된 신숙주의『해동제국기』에도 "동래지부산포(東萊之富山浦)"라 하고, 같은 책「삼포왜관도(三浦倭館圖)」에도 "동래현부산포(東萊縣富山浦)"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이때의 부산포는 "부자 富"를 사용하였다. 1470년(성종 1년) 12월 15일자의『성종실록』에 釜山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데, 1474년 4월 남제(南悌)가 그린「부산포지도」에는 여전히 富山이라 쓰고 있어 이 시기는 富山과 釜山을 혼용하여 쓰여졌다. 그러나 이후의 기록은 부산포(釜山浦)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부산의 지명변천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동국여지승람(1481)』이 완성된 15세기 말엽부터는 釜山이라는 지명이 일반화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학설을 뒤집을 만한 자료는 역대제왕혼일강리도(歷代帝王混一疆理圖) 또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 불리우는 지도다.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 지도 중에서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다. 아프리카 대륙의 알렉산드리아 파로스등대, 나일강의 수원지 달의 산도 표시되어 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었던 김사형, 이무, 이희 등이 중국, 일본, 조선 지도를 결합하고 편집하여 만들었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사본을 일본 류코쿠(龍谷: 용곡)대학이 보관하고 있다. 조선 지도를 들여다보면 해안을 따라 둥근 원들이 그려져 있다. 둥근 원 속에는 동해안과 남해안의 포구 이름이 적혀있다. 포이포(包伊浦), 감포(甘浦), 유포(柳浦), 염포(鹽浦), 개운포(開雲浦), 서생포(西生浦), 두모포(豆毛浦), 해운포(海雲浦), 부산포(釜山浦), 안골포(安骨浦), 내이포(乃而浦), 지세포(知世浦), 영등포(永登浦), 당포(唐浦) 등이다. 이 지도는 1402년 제작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富山浦라는 지명을 썼는데 이 지도에는 釜山浦로 표시되어 있다. 지명 가운데 고쳐진 부분이 나타나 1455년(세조 1년)에서부터 1459년(세조 5년) 사이에 모사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신설된 군현들의 이름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모사할 때 富山浦를 釜山浦로 고치지 않았다면 釜山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때도 쓰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하단에는 당대 석학으로 이름을 떨쳤던 권근의 발문(跋文)이 남아있다.

“천하는 지극히 넓다. 내중국에서 외사해까지 몇 천, 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를 줄여서 폭 몇 자의 지도로 만들자면 그게 상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지도로 만들면 모두 소략해져버린다. 다만 오문(吳門)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는 매우 상세하고, 역대 제왕의 연혁은 천태승(天台僧)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에 실려 있다. 건문(建文: 명 2대 황제 건문제) 4년 여름에 좌정승 상락(上洛) 김공(김사형)과 우정승 단양 이공(이무)이 섭리(燮理)의 여가에 이 지도를 참조하여 연구하고, 검상 이회에게 명하여 자세히 교정하도록 하여 한 장의 지도를 만들게 하였다. 요수 동쪽과 본국의 강역은 이택민의 지도에도 많이 생략되어 있다. 지금 특별히 우리나라의 지도를 중광하고 일본을 첨부해 새로운 지도를 만들었다. 정연하고 보기에도 좋아 집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지도를 보고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은 다스림에도 하나의 보탬이 되는 법. 두 공(公)께서 이 지도를 존중하는 까닭은 그 규모와 국량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근은 재주 없는 몸으로 참찬을 맡아 두 공의 뒤를 따랐는데, 이 지도의 완성을 기쁘게 바라보게 되니 몹시 다행스럽다. 내가 평소에 방책을 강구해보고자 했는데 뜻을 맛보게 되었고, 또한 훗날 자택에 거주하면서 와유(臥遊)하게 될 뜻을 이루게 됨을 기뻐한다. 따라서 이 지도의 밑에 써서 말한다. 시년(是年) 가을 8월에 양촌 권근이 기록하노라.”

권근은 조선을 개국하고 요동을 정벌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던 삼봉 정도전과 함께 동문수학했다. 정도전의 요동 정벌 계획이 거슬렸던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조선에서 보낸 표전(表箋: 국왕이 황제에게 올리는 외교 문서)을 문제 삼아 작성에 관여한 정도전을 명나라로 들여보내라고 독촉했다. 정도전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자 권근이 자원해 명나라로 들어가 용서를 구했다. 명나라와 주원장의 덕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올렸는데 감탄한 주원장은 권근에게 직접 시 3수를 지어 하사하고 융숭하게 대우했다. 권근의 문학적 역량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의 즉위를 알리기 위해 왔던 사신 유사길(兪士吉)은 권근이 술을 한 잔 권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술잔을 받으며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했던 김사형과 이무는 조선 태조 5년(1396년) 왜구의 소굴인 일본의 이키(壹岐: 일지)섬과 대마도를 정벌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희는 우리나라 지도 발달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팔도도(八道圖)를 제작했다. 팔도도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가 만든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조선팔도 부분에서 팔도도를 추정할 수 있다. 독특한 산맥 표시 방법과 조선의 윤곽을 비교적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국보 248호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는 조선 세조 9년(1463년) 제작되었다. 지도에는 만주 일부분과 대마도를 우리의 영토로 명기했다. 흑룡강과 송화강을 상징적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제주도와 대마도를 나란히 그리고 지도 제작에 관련된 사람들의 관등(官等)과 성명을 기록해 놓았다. 관각(館閣: 문신들이 있는 관청)에 속한 학문과 명망이 있는 인물들이 만든 역사 자료도 釜山이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길 없는 수수께끼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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