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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깨달아 얻는 행복
장종원 선생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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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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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옛날 인도에 ‘보안’이라는 임금이 있었다. 임금은 이웃 네 나라의 임금과 친하게 지냈다. 한 번은 네 왕을 청해 큰 잔치를 베풀고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다가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즐거운 것인가?” 각각 말하기를 “유희에 있다.”, “친척들이 모여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것이다.”, “재물이 많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애욕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보안’왕은 “그대들의 말하는 것은 이 모두 고뇌의 근본이고, 근심과 두려움의 원인으로서 먼저는 즐겁지만 뒤에는 괴로운 것이다. 고요해서 더 이상 구할 것이 없고, 마음이 깨끗해서 하나를 올바로 지켜 도를 깨닫는 즐거움이 제일 이니라”라고 말하였다.

사람은 도를 어기면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행동하게 되고, 도를 따르면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게 된다. 도를 벗어나 마음대로 행하면 애욕을 따르게 된다. 참생활이 아닌 생활, 참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 바른 생활이 아닌 생활은 모두 털어내고, 깎고, 추려서 정돈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최후에 남는 것, 즉 바른 삶의 맛을 즐기는 바른 생활이어야 한다. 바른 생활은 누누이 헤아려 보지 않아도 간단명료하게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고, 미운 사람도 가질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게 된다. 때로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괴로움이 있고,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하고 싶다’는 것과 ‘하기 싫다’는 것은 모두 ‘나’를 버리지 못한 고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자비를 실천하는 삶에 나타난 모든 괴로움은 진정한 즐거움이고, 빛나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인연을 맺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으니, 현명한 사람은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다. 더구나 사랑하게 되더라도 믿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지만 믿으려고 한다면 오직 자기 자신 뿐인 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으로부터 걱정이 생기고 사랑으로부터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이 없으면 걱정이 없으니, 또 어디에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사랑은 결점을 묻어둔다. 그 결점에서 오는 고통을 두려워하여 일부러 묻어두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걱정이 생기고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은 가까이 가서 겪어보면 멀리서 바라보고 생각하던 이상적인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하고 즐기는 것으로부터 걱정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것은 언제나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다. 사랑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아 스스로 이상해하지 않는다. 마침내 큐피트의 면사를 벗겨놓았을 때는 가을바람에 뒹구는 마르고 이지러진 낙엽만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어두운 굴레가 된다. 사랑에 목매이면 걱정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에 목매임이 없는 곳에 걱정이 없으니, 어디에 두려움이 또 있겠는가? 우리들은 사실 사랑의 실상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사랑이라는 정욕에 빠져 자기 기만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소견과 착한 계를 갖추고 정성된 뜻을 가지고 말은 참되며, 스스로 하는 일이 이치에 맞으면 그는 많은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받는다. 바른 소견과 착한 계를 갖추기 위한 수행이란 처음은 있으나 끝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상의 도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도, 무한의 도를 체득한 사람은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무한의 도를 체득한다는 것은 법적인 굴레의 수순이 아니고, 창조적 진화가 있어야 한다. 오직 하나, 열반을 바라보고 즐겁게 힘써 게을리 하지 않으며, 마음에 욕심의 걸림이 없으면, 생사의 물욕을 끊고 이를 초월하게 된다. 인식은 의지의 추적에서 생기고, 이것에서 생긴 것을 따르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상대를 무심하게 언뜻 보는 것에도 사랑의 행복을 느끼나 또 다른 시점에서는 본다면 같은 대상에도 실망과 비애를 느낄 수도 있다.

사람이 고향을 떠나 오랜 동안의 나그네 여정을 마치고 멀리서 안전하게 돌아온 때에 친척이나 벗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어 곡식을 거두는 것은 밭을 간 자의 소득만이 아니다. 행복한 나그네를 맞이하는 친구와 친척도 더불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즐겁게 복을 짓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사람은 마치 나그네가 친척들의 즐거운 마중을 받듯 자신이 지은 복업으로 저승의 행복한 마중을 받는다. 도를 벗어나 마음대로 행하며 애욕을 따르다 죽게 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서 저승으로 가는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결국 자신이 바른 태도와 도를 갖추어 정성스럽게 살아 왔다면 죽음도 행복하고 반가운 저승의 마중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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