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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턱에서] 보은(報恩) 강정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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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2  16: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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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환
     
수필가
“장로님 강정, 정말 맛있어요.”
 
요즘 아내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소리다. ‘백화점 명인이 만든 강정보다 더 낫다’란 말까지 들을 때면, “아이고, 무슨 소쿠리 비행기까지나” 손까지 저으며 부정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흐뭇하다. 빈말이라도 명인의 강정에 견주어 주다니 고마운 일 아닌가. 내가 강정 만들기 한 달 만에 소위 명인의 반열(?)에 올라선 비법은 알고 보면 간단하다.
 
명인의 견과강정에는 견과류가 대여섯 종류 밖에는 없는데, 내가 만든 강정에는 적어도 열 가지 이상 들어간다. 호두, 땅콩, 아몬드, 잣, 캐슈넛, 호박씨, 해바라기씨, 건바나나, 크린베리, 건대추, 건포도, 현미튀밥 등, 강정 두 개만 먹으면 견과류 하루 권장량을 채우도록 나름대로 계산했다. 거기다가 서로 들어붙지 않도록 계피가루를 살살 뿌려 마감해놓았으니, 어찌 맛나지 않을까.
 
판매해도 되겠다고 부추기는 분도 있지만, 그 방면에는 내가 완전 좀팽이라 ‘사 주실려우’ 하고 웃어넘기고 만다. 슬그머니 따져도 봤지만 아무래도 타산이 맞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좀 덜 달면서 식감은 과자처럼 바삭거려야 좋은데, 그게 잘 안 된다. 물엿에 설탕을 적게 넣으면 강정이 물러지고, 많이 넣으면 식감은 괜찮은데 너무 달게 된다.

아내는 척추협착증으로 수술까지 하며 투병하느라 지난 한 해를 온통 보냈다. 그동안 집안 살림은 온전히 내가 맡았다. 청소, 빨래, 장보기, 밥하기 등등.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힘든 것은 반찬 만들기였다.
 
나는 타자가 공인하는 무딘 곰탱이라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다.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투정이 없다. 그러나 아내는 다르다. 솜씨 좋기로 소문났던 장모님의 외동딸로 반찬 까탈이 보통이 넘는다. 무뎌빠진 나로서는 도저히 아내의 예민한 입맛을 맞출 수 없다.
 
아내는 아내대로 힘들다. 나의 수고에 미안해하면서도 내가 만든 반찬을 먹어내지 못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니, 식사 때만 되면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요리학원이라도 다녀 볼까?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구원의 손길이 왔다. 아내의 교회 친구며 동창 친구들이 나선 것이다. 때맞춰 나물을 무쳐준다든지, 마른 반찬이며 장아찌에,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국을 끓여 냄비 채로 보내 주었다.
 
지난 김장철에는 김치를 여러 집에서 보내주었는데, 특히 아내가 근무했던 여수의 학부형에게서 갓김치를 비롯하여 종류별로 보내오는 바람에 김치가 남아돌게 되었다. 덕분에 미처 김장 못한 주변 동병상련의 동포(?)에게 인심까지 다 쓰고. 나름 손맛에 자신이 있는 분들의 반찬이니 이 무슨 호강일꼬.
 
반찬 걱정이 해결되니 살 것만 같은데, 곧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얻어만 먹고 입 싹 닦는 얌체는 못 되니, 어떻게 반찬 그릇을 빈 그릇으로 돌려주랴. 무언가 채워서 돌려주려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반찬 받을 때는 좋더니만, 때 맞춰 과일이나 생선, 김과 같은 해산물 등 답례물을 준비하기도 힘들다. 매번 똑 같은 품목을 보낼 수도 없고, 품격을 갖추려니 비용도 만만찮다.
 
간절하면 길이 보인다더니, 그날따라 쌀강정을 먹으며 TV 프로 ‘건강 백세’를 보고 있었다. 견과류의 효능과 노인에게 필요한 하루 권장량 등이었다. 익히 아는 내용이라 우리 집에도 좋다는 견과류가 여럿 있지만, 매일 거르지 않고 잘 먹어지지가 않았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도 ‘견과류로 강정’을 만들면 챙겨 먹기 쉽지 않을까. 갑자기 이런 기찬 생각이 떠올랐고, 나의 ‘보은(報恩) 강정’은 이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품앗이 강정’이라 이름 할까 했지만 곧 건방진 이름이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은(報恩) 강정’이라 명명했다.
 
우리 나이에 모두들 건강에 민감한데, 몸에 좋다는 견과강정에다 제법 품격까지 갖췄다. ‘보은(報恩) 강정, 맛보기 위해 반찬을 보낸다’라면 너무 자화자찬 같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는 여사님이 계실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영감에게 반색하는 할멈들을 대하며 ‘보은 강정’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반찬 그릇이 크면 그만큼 강정의 양도 많아지니 얼마나 합리적인가. 값비싼 반찬을 보내주신 분에게는 특별히 ‘브라질너트’와 같은 고급 견과류를 듬뿍 넣은 최상품을 드릴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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