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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턱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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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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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향은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연말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했다. 부산에 내려와 살면서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점점 드문 일이 되었는데 초등학교 친구들은 더더욱 그렇다. 어릴 적 친구들과는 부산으로 이주하기 전, 서울에 살 때도 연락이 두절되다시피 했으니까. 그러다 1년 전 우연한 기회에 6학년 친구들과 다시 연결됐고 우리 반 친구가 동창회 회장으로 수고해 온 것도 알게 됐다. 연말에 있었던 송년회는 이 친구의 마지막 임무라는 소식을 듣고 그동안 애썼을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의 표시를 행사 참석으로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학기말 처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을 뒤로 하고 상경하는 마음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강남의 한 식당에 들어서니 행사장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엔 상상하기 어려운, 14반까지 있었던 콩나물 교실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등록을 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빈자리가 없다시피 했고 낯선 얼굴만 가득한 뒤편에 자리 하나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별로 착석한 듯했다. 맨 앞쪽에 우리 반이 보였는데 이미 친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 반으로 가서 친구들에게 인사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반 친구들과 통성명을 마치고 음식을 담으러 일어섰다. 길목에서 마주친 한 친구가 "어... 향숙이?" 하며 다가왔다. 기억력 좋기로 자타 공인하는 내게 도무지 낯선 얼굴이었다. "아닌데..." 하고 비껴갔다. 자리에 앉아 식사하려는데 방금 말을 건 친구가 옆 테이블 대각선 쪽에 보였다. 나를 아는 게 맞다 싶었는지 내 쪽으로 오더니 "너랑 같은 반이었는데, 1학년 때 몇 반이었어? 2학년 때는?" 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친구들과의 기억 경쟁에서 져보긴 처음이다. 이 친구가 맞았다. 3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그래서 내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한 것이다.
 
"너 향숙이 아니야?" 하는 친구에게 "향은이"라고 했더니, "맞다 향은이, 나 너 기억해" 하는 게 아닌가? 이때만 해도 이 친구의 기억력을 반신반의했고 좀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인가 보다 생각했다. 다시 음식을 가지러 일어섰고 이 친구와도 또다시 마주쳤다. 이 친구가 또 내게 와서는 "그게 3학년 때였구나. 난 가정환경 조사 때 집에 식탁 있는 사람 손들라고 했을 때 네가 번쩍 손든 게 기억나. 너 기억해?" 하고 물었다. 담임선생님께서 TV, 라디오, 세탁기, 전화기 같은 가전제품을 호명하실 때 손을 들었던 기억은 나지만 식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식탁이 있었던 건 맞다. 안방이나 마루에서 좌식 밥상을 놓고 밥 먹던 시절에 우리 집에는 early adaptor 아버지의 영향으로 입식 부엌과 식탁과 의자가 놓인 식당이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든 손이었지만 그것이 이 친구에게는 오래토록 잊히지 않는 내 정체로 각인된 것이다. 정확한 기억 조각을 갖고 있었던 친구의 재인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나를 기억해준 친구가 고맙기도 했다. 잊었던 내 과거를 되살려준 것도 고마웠다. "나도 기억력 좋은데 식탁은 전혀 생각 안나. 너 참 대단하다!" 하고 칭찬했다.
 
이 친구에게 고마운 것이 또 하나 있다. 친구가 나를 "식탁 있는 집 아이"로 기억한 것이 생각의 단초가 되어 내 머릿속을 맴도는 화두로 탄생했다. 세월이 지나 이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때도 식탁 있는 집 아이로 기억될까?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그렇게 기억되길 바란다면 현재 나의 삶과 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식탁 있는 집 아이에게 이처럼 심오한 형이상학적 질문을 품게 해준 친구와 그의 기억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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