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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엄지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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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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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향은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벌써 몇 달째 내 엄지손톱은 검붉은 멍으로 뒤덮여 있다. 몸도 맘도 분주했던 2학기의 첫 날 뜻하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지인 두 분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나는 학과 개강 행사를 마치고 바쁜 걸음으로 두 분이 대기 중인 후문으로 달려갔다. 두 분이 타고 있는 차가 보였다. 한 분은 운전석에 다른 한 분은 그 옆에 앉아 있었고 뒷문은 열려 있었다. 열린 뒷문은 나를 향한 환영으로 느껴졌다. 내 일정으로 인해 좀 늦은 시각에 점심 약속을 한 것이었는데 여기에 학과 행사가 지체되는 바람에 몇 분 더 늦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열린 뒷문이 더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문 여는 데 걸릴 단 몇 초라도 단축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헐레벌떡 차에 타서 앞자리에 앉은 두 분께 인사를 했다. 한데 곧바로 원인 모를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순식간의 일이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운전석에 계신 분은 휴대폰으로 통화 중이었다. 나는 점점 심해지는 통증을 느끼면서 그 진원지가 차 유리문에 끼인 오른 손 엄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떻게든 손을 빼보려 했지만 빼도 박도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으나 앞의 두 분은 듣지 못했다. 유리가 내 손을 계속 거세게 밀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내 손은 처음엔 파랗게 되더니 곧이어 검붉게 변했고 이내 살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엄지손가락을 다치고 보니 일상의 많은 부분이 불편했다. 연한 살이 뭉개지고 으스러져서 쓰리고 아팠다. 식사 때 숟가락, 젓가락을 드는 일도 힘들었고, 옷을 입을 때 단추를 잠그는 일이나 지퍼를 올리는 일도 한참 낑낑대야 했다. 수업 시간에 칠판 글씨를 쓰는 일도 쉽지 않았으며 컴퓨터 문서 작업과 휴대폰 문자 입력 속도도 전과 같지 않았다. 이런 난관에 비하면 엄지손톱을 뒤덮은 보기 흉한 검붉은 피멍은 경미한 피해였다.
 
엄지손가락을 다친 후에야 그 동안 엄지가 해온 일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엄지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된 셈이다. 엄지 없이는 나머지 네 손가락이 힘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엄지는 다른 손가락과 가장 협응을 잘한다. 다른 손 네 개는 서로 닿아도 뻣뻣하게 맞닿을 뿐이나 이들이 엄지와 만날 때는 달라진다. 둥글게 구부려져 유연해지고 일하기 쉬운 모습이 된다.
 
손을 다친 지 석 달이 되어간다. 이제 통증도 없고 손가락 쓰는 일에 별다른 지장도 없다. 다만 멍 자위가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어 여전히 보는 이들의 염려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 친구는 보기 흉한 자국을 매니큐어로 감춰보라고 충고한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당분간 해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하지 않기로 했다. 멍 자국을 볼 때마다 그동안 잊고 산 엄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터, 일부러 그 흔적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손 쓸 일이 많은 내게 오른손 부상은 생각만 해도 근심거리였지만 그로 인해 얻은 것이 더 많았다. 내 몸이 하는 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물론 그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게 되었다. 다친 손가락은 나를 주변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내 손의 안부를 묻곤 한다. 자타로부터 살뜰한 보살핌을 받게 한 엄지의 희생 덕에 내 안과 밖에서 부분이 담당하고 있는 기여와 수고에 대해 성찰하게 됐다. 오늘도 내 엄지손 멍 자국이 보기 싫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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