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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를 찾습니다[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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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6  13: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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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현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해부학
 

  기존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과학적 개념을 창조할 때 은유가 동원된다. 원자모델이 처음 설명될 때 천체궤도는 훌륭한 은유로 사용되었다. 관측 불가능한 화학구조를 모델로 만들어 설명하는 것도 은유이다.

  현대의학의 치료방식을 은유하는 단어는 ‘마법의 탄환’이다. 몸에 들어온 범죄자인 질병을 탄환 같은 약물로 제거한다는 개념이다. 이 은유는 약 1세기 전 독일태생 의학자 에를리히가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에를리히는 19세기 후반 색소가 조직에 각기 다른 친화성을 보이는 성질을 이용하여 조직절편을 염색하는 이론과 실제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았다. 이후 에를리히는 결핵균을 염색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인류 최초로 결핵균을 관찰하게 되었다.염색과 관련된 이런 연구과정 덕분에 에를리히는 후에 베링의 항독소 연구의 협력연구자로 크게 기여한다. 독소와 항독소 간의 생물학적 반응은 순수 화학반응으로 연구될 수 있다고 믿은 그는, 베링의 디프테리아 항독소 치료를 유용하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에를리히는 기존에 없었던 치료 개념을 수립한다. 그는 화학적으로 특이성을 가진 치료제를 사용하여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창안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마법의 탄환’이라고 불렀다. 이로 인해 ‘미스터 환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화학물질이 생체 내의 특이한 공격점을 가질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확실하였다.

  이를 위하여 수백 가지 화학물질의 특성을 연구하던 그는 3가 비소를 함유한 물질들이 약효를 발휘할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때마침 1905년 매독균의 원인인 스피로헤타균이 발견되었다. 에를리히는 매독균에 효과를 보이는 특효약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환자의 세포에는 해를 미치지 않으면서 적군인 매독균을 공격하는 화학물질을 찾아 나선 것이다. 수 많은 비소화합물을 조사한 끝에 에를리히는 606번째 화합물이 매독균에 대단히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매독의 특효약이 발견되었다. 매독을 치료하는 ‘마법의 탄환’이 탄생한 것이다. 에를리히는 화학요법의 창시자라는 영예를 얻었다.

  ‘마법의 탄환’ 은유는 감염병 정복 시대의 항생제라는 구체적 성과를 내었다. ‘마법의 탄환’은 은유이자 구체적인 실체가 되었다. 이후 한세기 동안 ‘마법의 탄환’은 서양의학 치료법의 확고한 은유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감염병을 어느 정도 제어하게 되자 인류의 질병 양상이 급격히 만성병으로 변하였다. 복합적 질환인 만성병은 세균이 몸에 들어와 일으키는 감염병과는 달리 세균을 다스리는 ‘마법의 탄환’같은 단순한 약으로 박멸되지 않았다. 수십 년 전부터 양식있는 의료전문가들은 하나의 ‘마법의 탄환’으로 한 만성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감염병 시대 ‘마법의 탄환’이 이룬 성과를 경험한 인류는 만성병시대에도 이 익숙한 은유에 메달렸다. 인류는 알약 하나면 어떤 질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로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인간유전체 지도를 찾아낸 서양의학은 분자생물학과 분자유전학을 총동원하여 각 질병에 대한 특이 치료법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어떤 물질을 찾았으며 이를 표적하여 치료하면 질병을 극복할 것이라는 보도가 떠들석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복합적인 만성병은 특이 분자 하나에 의하여 유발되는 것이 아니며, 특이 약물 하나로 이를 다스릴 수도 없다는 것이 조심스런 의학자들의 중론이다. 그리고 만성병 시대의 치료목적은 세균과 같은 적군을 제거하는 노력에서, 증상을 치료하고 정상에 가깝도록 돕는 치료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법의 탄환’ 은유는 과학과 의학에 대한 인류의 기대 속에 각인되어 있어, 원인을 제거하는 명백한 특이치료가 제시되지 못하면 현대인은 만족하지 못한다. 1세기 전 수립된 ‘마법의 탄환’ 은유는 만성병 시대에 들어서는 의료인을 누르는 무거운 굴레가 되어 버렸다.

  이제 ‘마법의 탄환’ 은유를 벗어나야 한다. 원인제거 대신 증상을 완화하고 정상에 가깝도록 돕는다는 다른 은유를 현대의학이 찾아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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