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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술은 심술[리더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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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6  16: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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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향은
   고신대학교 교수
 
기분 나쁜 경험으로 기억되는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우리는 평생 이런 대화에 연루돼 살아간다. 나 역시 불쾌했던 사건과 시간으로 기억되는 대화를 지금껏 많이 경험해왔다. 그리고 결코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달갑지 않은 경험을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바로 며칠 전에 경험한 언짢았던 대화 때문이다. 돌이키고 싶은 경험은 아니었으나 귀한 성찰을 얻게 한 경험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평소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인 두 분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각별한 사이로 이따금씩 만나 식사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져온 분들이었다. 이번엔 그 중 한 분이 가깝게 지내는 분을 소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본인이 존경하는 어른으로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아온 분으로 우리에게도 꼭 소개하고픈 분이라는 것이다. 이 고마운 제안에 나와 다른 한 분은 흔쾌히 찬성하였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약속한 날을 기다렸다.

약속 장소는 새로 만나게 될 분이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은 내가 부산에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이날은 내가 지역과 사람 모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기분 좋은 날로 기다려졌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동안 차창 밖에 펼쳐진 생소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부산의 공간에 대한 내 인식의 지평도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사무실 건물 앞에서 집결한 나와 지인 둘은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곧바로 새로 만나게 될 분의 집무실을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집무실에 도착해 오늘 처음 뵙게 될 분과 첫 상면을 했다. 온화한 인상에 미소 띤 얼굴로 우리를 환영해준 주인장은 통성명을 마치자마자 건물 안내 과업에 돌입했다. 이분을 따라 이동하면서 건물 내 주요 공간의 용도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5~6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는데, 지역주민에게 개방해 다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층별 공간을 비롯해 외부인에게 건물을 소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1층 카페에 이르기까지 건물의 소유자인 주인장의 세심한 설계가 돋보이는 인상적인 곳이었다.

건물 안내를 받은 후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됐다. 때마침 점심시간에 몰려온 손님들로 인해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주문한 음식이 나와 식사를 하는 동안의 대화가 이날 모임에 대한 강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 연장자인 주인장의 화려한 경력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된 대화에 나머지 세 사람은 학생처럼 듣는 분위기였다. 나는 반영적으로 경청하면서 다른 두 분의 소외를 막고자 틈틈이 화제를 전환하고자 애써보았지만 별반 소용이 없었다.

두 시간 정도 소요된 방문을 마치고 귀가 길에 오를 무렵 내 몸과 맘은 지칠 대로 지쳤다. 기분이 상하고 불쾌한 마음까지 솟구쳐 올랐다. 이렇게 피곤한 시간을 가지려 굳이 이 먼 길을 왔던가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고 새로운 만남에 대해 가졌던 기대가 허망하고 허무하게도 느껴졌다. 스무 시간처럼 느껴진 시간에서 탈출하게 된 것에 대한 기쁨과 안도를 느끼기보다 뭔가 찜찜한 기분에 계속 짓눌려 있었다. 오던 길에 느꼈던 신선한 감흥은 온 데 간 데 없고 가는 길은 좀 슬프기까지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엉망이 된 기분에만 압도되어 있지 않고 왜 기분이 나쁜지를 냉정하게 짚어본 것이었다. 그날 내 기분을 극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대화였기에 대화가 주범이었다. 그렇다면 대화의 무엇이 문제였는가? 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대화를 주도하고 독점한 것, 대화의 주제가 그의 관심에 편중되고 다른 이들은 피동적 청자에 머문 것, 다소 어색하고 어려운 초면의 상황에서 연소자가 쉽사리 대화에 관여하거나 조정하기 힘든 맥락에 놓인 것 등이 문제였다.

한 사람이 대화를 온통 점유하는 대화는 독백에 가깝다. 한 사람이 자기 말만 하다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자기가 관심 가는 말만 하기에 대화는 점점 더 독단적이 되는 악순환을 빚는다. 지위나 서열상 강자의 위치에 있는 이가 이처럼 대화를 독차지하는 것은 힘의 과시고 유세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는 이 구도를 전환하기 어렵고 마지못해 견디고 있지만 그 속내는 즐거움이 아닌 괴로움, 유쾌가 아닌 불쾌가 되기 쉬운데, 정작 화자는 자기 말에 빠져 이들의 마음을 모른다.

이날 대화가 그토록 힘들었던 것은 마음 보살핌이 빠진 대화가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로(言路)는 심로(心路)기에 상대에 대한 인격적 존중, 배려, 이해가 부족한 대화에 수동적으로 임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화의 시종이 다른 이의 통제 아래 놓인 무력한 상황에서 호혜적 교류나 관계는 바라기 어렵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그것도 첫 대면에서 이런 모습을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대화로 기억되는 만남이 영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 생각은 즐거운 대화, 유쾌한 대화, 기분 좋은 대화, 또 하고 싶은 대화로 이어졌다. 위의 사례에서 시사되는 바람직한 대화의 모습은 무엇일까? 대화에 참여한 이들이 골고루 대화에 동참하는 대화, 일방적이지 않고 양방적·쌍방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는 대화, 한 두 사람의 관심사가 아닌 여러 사람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주제가 되는 대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를 세심히 배려해 이들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화의 내용과 방향을 함께 만들어가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대화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위에 기술한 화자의 성품을 떠올릴 때 괴팍하고 독선적이며 외골수 같은 불통의 인물을 연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만났던 분은 부드럽고 따뜻한 분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인정 있는 분이었으며 화려한 경력을 소유한 박학다식한 분이었다. 다만 대화의 매너를 몸으로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한 분이거나 대화에 작용하는 심리에 덜 민감한 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는 이 단점이 그분의 많은 장점을 가리는 작용을 한 셈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우선 대화도 공부가 필요하고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평생에 걸친 학습 과정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가정, 이웃, 학교, 직장에서 상식적 기반의 대화 예절을 일상생활을 통해 익히도록 해야 한다. 성숙한 민감성을 갖춘 대화의 역량을 일찍이 배양하도록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통을 이끄는 건설적인 대화가 공동체의 의제가 되고, 화술(話術)은 심술(心術)임을 주지하여 존중과 배려의 대화를 실천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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