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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의 정신적 풍요[토천(吐天) 장이랑의 동양학 산책]
장종원 선생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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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4  1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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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밖으로는 적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간사한 이들을 잘 막는 사람을 대장이라고 한다. 만일 대장으로서 생각이 여러 사람보다 뛰어나지 못하고, 한갓 이름만 탐내어 적 속에 깊이 들어가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혹은 속으로는 겁쟁이면서 밖으로만 사나운 모양이 나타나고 싸울 때는 적이 두려워 물러나며 공을 챙길 때만 나서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대장은 자신도 편안하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편안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사람에게 길은 멀다.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인생은 길고 멀다. 고달프게 잠든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생에 있어서 자신을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하고, 또한 자신을 포기시키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좌절과 포기는 자기이탈의 좋은 교훈이고 자기영사의 좋은 거울이다. 나보다 나을 것 없고 걸맞지 않은 길벗이라면 차라리 혼자 가야 하는 고난이 차라리 낫지, 어리석은 사람을 길동무로 삼지는 말아야 한다.

사람은 먼저 고독과 친해야 한다. 고독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 보여 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고독한 마음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하여야 모든 비밀을 숨김없이 나타내어 보여 줄 것이다. ‘내 아들이다, 내 재산이다’ 하며 현실에 얽매여 사는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 허덕인다. 나의 ‘나’가 이미 없거늘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재산이겠는가. 같은 세계에 함께 살아가지만 제각각 다른 세계에 산다고 느끼는 것은 슬프고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모두 다른 세계에 살아가더라도 서로 관심의 눈짓을 보내고, 서로 허여하며 이해의 미소로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기쁜 일인가.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어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을 ‘어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나 자신을 알라”고 말한 바가 있다. 모든 철학과 종교가 추구하는 바가 여기에 담겨 있다. 우주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 자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가능성의 한계를 아는 총명함을 가질 때 비로소 무한한 가능의 신앙과 수행의 종교세계가 눈앞에 전개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평생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어도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이에게는 안 들리는 것이 아니라 못 알아듣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면 곧 참다운 법을 바로 알며 혀가 국 맛을 아는 것처럼 말 없는 가운데 호흡이 맞을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떨어져 있어도 심장의 고통을 같이하는 느낌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인생인가?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중생은 자기 자신을 마치 원수처럼 대한다. 욕심에 휘둘려 악한 업을 짓고, 스스로 고통의 결과를 얻는다. 악한 업을 지은 뒤에 갚음을 받아 스스로 뉘우치며 슬퍼하는 결과는 어디서 온 것인가? 운명이란 반드시 원인에 따라 결과가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불행과 불만은 그 원인이 자작의 결과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착한 업을 지은 뒤에 따르는 갚음은 뉘우침 없고 복을 누리는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착한 사람의 고난은 있기 마련이다. 이는 얼른 보아 모순의 극치이지만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또한 그 고난조차 순응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죄가 아직 깊어지기 전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꿀같이 생각한다. 그릇된 죄가 한창 깊어진 후에야 어리석은 사람은 비로소 고통을 느낀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악을 숨기기 위해서 거짓으로 꾸미고,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릇된 진리를 억지로 갖다 댄다. 이것은 하나의 죄 위에 하나의 죄를 더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형식적이나마 고행을 본받아도 그는 참된 법을 아는 사람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상이란 목석이나 쇠붙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섬기지 말아야 할 것을 섬기는 것, 즉 부귀·명예·지식·색정 등 내가 마땅히 시키고 부려야 할 이런 것들을 도리어 거기에 종속되어 섬기고 복종하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인 것이다.

재에 덮이더라도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어진 업이 당장에는 안 보이나 그늘에 숨어 있어 어리석은 이를 따른다. 죄업이 두려워 고뇌를 벗어나려 산속으로, 바닷가로, 공중으로 피하려고 하나 그 방소는 고뇌를 비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먼저 세속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끊임없이 어둠 속을 흐르면서 그의 좋은 운수를 나쁘게 바꾸고 마침내 갚음으로 응보를 당한다. 착한 이와 죄인은 욕심을 제어하느냐, 제어하지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죄인이지만 누구도 함부로 가볍게 돌을 던질 수는 없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익을 말하고 부질없는 존경이나 이름을 구하며, 집에 있어서는 주권을 다투고 남의 집에서는 공양을 바란다. 칭찬이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동시에 또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도리어 후자가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을 마치 인형인 듯 조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은 나의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이다.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은 욕망과 교만이 날로 커진다. 자신보다 약한 자만을 가려서 자기의 우월감을 내세우려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 추구하는 길 중 하나는 부귀의 길이고 하나는 열반의 길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참 비구요, 부처님 제자뿐일 것이다. 속인이라도 부귀를 즐기지 않고 한가하게 살면 마음이 편안하다. 물질이 궁핍할 때는 정신적 풍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물질이 풍부한 생활을 누릴 때라도 정신의 풍요는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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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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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 2017-09-15 00:49:16

    기존의 과학과 종교를 180도 뒤집는 혁명적인 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와 종교학자들이 반론을 못한다. 이 책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 이 책은 우주의 기원과 운행을 포함해서 자연과 사회의 모든 현상을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설명한다. 이 책을 보면 독자의 관점과 지식은 물론 철학과 가치관도 변한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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