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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오늘]'부관연락선' ...일제 침탈의 루트 완공되다
백재현 기자  |  itbrian@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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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1  14: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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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9월 11일,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 사이 240Km를 잇는 연락선이 개통되었다. 앞서 그 해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었고,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이 이듬해인 1906년 4월 개통을 앞둔 시점이었다. 부산의 ‘부’와 하관(下關)의 ‘관’을 따 ‘부관연락선’이라고 불렸다. 일본에서는 주로 ‘관부연락선’으로 불렀다.

첫 취항의 배 이름은 이키마루(壹岐丸)호. 이로써 일본의 대륙 침탈과 한반도 수탈시스템은 완성된 셈이다. 부관연락선은 일본 내륙으로는 시모노세키에서 고베(神戶)~도쿄(東京)를 있는 철도와 연결됐다. 또 한국에서는 경부선, 경의선을 거쳐 남만주와 시베리아철도 등으로 연결됐다. 당시 대한제국은 이미 빈사상태였다. 결국 두 달 후인 11월 17일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외교권까지 빼앗긴다.

부관연락선은 이후 일본 패전 직전에 이르기까지 50년간 ‘일제의 대륙참략과 조선인 강제동원의 연결창구’로 운행이 계속되었다. 배에는 신천지를 찾아 조선과 만주로 이주하려는 일본인과 노동력 수탈의 대상이 되어 이른바 ‘내지(內地)’로 가는 조선인들로 언제나 넘쳐났다.

첫 연락선인 이키마루는 1680톤급으로 항해에 걸린 시간은 11시간 반이나 됐다. 이후 여객과 화물의 급증에 대비해 7,000톤급의 대형 여객선이 투입하면서 운항 시간도 7시간 반으로 단축되었다.

‘사(死)의 찬미’로 당시 인기를 끌었던 가수 윤심덕이 동갑내기(29살) 애인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차가운 현해탄에 몸을 던진 배도 바로 부관연락선이었다.
   
▲ 부관연락선 '성희호' 모습

일제의 패망 이후, 부관연락선은 당시 80만 명에 이른 조선 거주 일본인과 200만 명에 육박했던 재일조선인들이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배편 구실을 했다.

한편 해방후 박정희 대통령 당시인 1970년 6월 19일 한일 양국은 50대 50으로 관부훼리 회사를 운영세워 운영해왔으나 지금은 그 경영권이 일본의 손으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현재 부관항로에는 1998년에 도입된 일본 국적 하마유(Hamayuu)호(1만6187톤) 1척과 2002년에 들여온 한국 국적 성희(Seonghee)호(1만 6665톤)가 각각 매일 1회씩 다닌다. 부산에서 저녁 8시에 출발한다. 백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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