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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歌王) 나훈아 그는 누구인가?
이현수 기자  |  leehs0103@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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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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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이라는 오랜 공백기를 깨고 오는 11월 팬들 앞에서 서는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 나훈아.

그는 1947년 2월 부산에서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학창시절에 그는 기타와 피아노를 잘 쳤다. 그는 부산 초량국민학교, 대동중학교를 각각 졸업했다.

가수로 데뷔는 서라벌예고 2학년 때 오아시스레코드와 ‘천리길’을 계약하면서다. 특유의 꺾기 창법으로 주목 받으며 특히 고등학교 졸업해인 1968년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크게 히트했다.

1970년대에는 가수 남진과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당시 대중가요를 주름잡았다. 1972년 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하던 중 괴한에게 병 조각으로 피습을 당해 몇 개월을 입원했다. 당시의 흉터는 평생을 그의 얼굴에 남았다. 남진의 팬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소문이 돌아 양측 팬들이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나훈아는 1973년 공군에 전격 입대해 큰 화제를 모았다.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다가 1975년 전역을 1년 앞둔 시점에 이혼했다.

1976년에는 영화계 최고의 스타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해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 같은 해 나훈아는 심수봉에게 ‘여자이니까’란 곡을 주어 큰 인기를 끌게 했다. 1977년에는 ‘애정이 꽃피던 시절’을 발표해 히트쳤다.

김지미와의 결혼으로 한 동안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나훈아는 1981년 ‘대동강 편지’로 가요계에 복귀했으며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1982년 ‘울긴 왜 울어’로 인기를 얻었지만 그 해 김지미와 이혼했다. 이듬해 가수 출신인 정수경과 결혼한 후 1남 1녀를 두었다.

1980년대 나훈아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 외에는 출연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팬들은 자주볼 수 없는 그를 보려고 더욱 몰려들었다.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 서정적이면서도 슬픈 가락의 자작곡을 잇따라 히트시켰다.

나훈아는 지금까지 2500여곡을 취입했고 정규 앨범 19장을 포함해 200여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만 800곡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007년 3월 세종문화회관 콘서트가 갑자기 취소된 뒤 지금까지 은둔해왔다. 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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