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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리더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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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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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보경
   시인
모처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정의 순간순간 또한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소소한 갈등으로 마음이 상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즐겁고 새로운 체험을 함께 하는 동안은 그간의 소원함을 끈끈한 정으로 채운 무난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여정의 하루하루를 행복지수로 표하면 그럭저럭 낙제점은 면할 것 같다.

이스라엘 학자인 다니엘 카네만이 말한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를 생각해본다. 경험하는 자아는 순간순간을 경험하는 자아이고 기억하는 자아는 시간이 흐른 뒤 지난 경험들을 돌이켜 보며 의미를 찾고 평가하는 자아이다. 이 두 자아는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은 경우 기억하는 자아가 사람의 인식과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경험의 순간순간을 인식하는 자아는 시간이 지난 후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자아에 의해 왜곡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두 자아 모두 ‘나 자신’임에 틀림없지만 어느 자아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한 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고통과 불안의 순간을 견디고 나면 반드시 행복이 올 거라고 믿어왔다. 오늘의 어려움과 갈등은 내일의 행복을 가져오는 불쏘시개가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달달한 열매를 얻기 위해 뜨거운 뙤약볕을 피해 그늘로 숨어들지 말라고 했다. 고통스럽더라도 뜨거움을 견디며 자신을 담금질하기를 원했었다. 뜨거운 사막을 건너기 위해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일이 뜨거움을 고스란히 견디는 일보다 더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여정일 수 있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오로지 그늘은 외면해야 할 어둠이고 나태와 실패의 함정이라 여겼다.

내게는 지난 하루하루의 시간을 기억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기억하는 나의 자아는 지난 하루하루의 행복한 순간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난 하루하루에게 무리한 독선을 강요할 때가 많다. 누군가 기쁜 소식과 우울한 소식 중에서 무엇을 먼저 듣고 싶은가 물을 때마다 나는 늘 어둡고 힘든 쪽을 먼저 선택했다. 지금은 가끔 행복하고 기쁜 소식을 먼저 듣는 것이 그 후의 불행과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행복은 하루하루를 기쁘게 기억하는 데 있다 생각하기도 한다.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내년에 행복하기 위해서 지금 현재의 기쁨이나 행복을 희생시키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함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현재를 놓치고 우연히 작용하는 미래를 기다릴 때가 많다.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어쩌면 너무 인지적인 행복에 치우쳐 살아온 것인지 모른다. 가장 큰 시간 손실은 뒤로 미루는 일과 기다리는 일이라는 금언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본다. 이제는 이것저것 따져보고 분석한 후에 살만한 삶인가 아닌가를 결정하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진짜 행복한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한다.

무진장 남아있지 않을, 나의 하루하루를 소중히 기억할 것이다. 아침이면 잠에서 깨어나 말개진 하루의 눈빛을 마주볼 일이다. 종일 내 옆을 지키는 하루의 손가락 발가락의 움직임을 비로소 알아차릴 것이다. 바람에 잠시 흘러내린 하루의 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깨끗하고 반듯한 하루의 이마를 발견하리라. 나른한 피로를 짊어지고 인사를 건네는 하루에게 하루하루 인사하고 싶다. 가끔 지루하고 똑같은 표정을 한 하루가 지긋지긋해지면 내가 먼저 어떤 새로움이 되리라.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는 하루에게 인사조차 나눌 새 없이 지나가고 지나간다. 아직은 거기서 거기인 듯 나의 하루하루는 비슷한 모습이다. 세수도 하지 못한 초췌하고 퀭한 얼굴이 지나간다. 어수선하고 헝클어진 눈빛이 지나간다. 누군가에게 꼬리를 잡힐까 허둥허둥 황망한 걸음으로 총총 사라진다.

가만히 지난 여정의 하루하루를 불러내본다. 하루하루에서 하루의 기억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꺼내본다. 하루하루 속에는 하루만이 지닌 표정과 감정이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하루하루를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기억한다면 하루하루는 이미 하루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 하루하루의 이목구비가 더는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여정의 하루하루는 뜨거웠다. 어쩌면 또 다른 하루하루는 점점 더 뜨거워질 것이다. 그 뜨거움을 잊지 않고 고스란히 기억하기 위해 좀 더 뜨거워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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