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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할배[리더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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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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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환
   전 남성여고 교감·수필가
 
금년에 나도 드디어 칠순이다.

내가 70년이나 살아왔다니 꿈만 같다. 교회학교 유치원에서 유희하던 일이 엊그제 같다면 누가 믿어나 줄까. 10대, 20대, 30대… 그때 내가 무엇을 했나, 곰곰이 헤아려보니 그 세월이 너무나 가마득하다.

그렇게 긴 세월이 또 너무나 순간이라 깜짝 놀라고 만다. 전도서 기자가 인생을 살아보니‘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탄식한 그 말씀에 뼈저리게 공감한다.

그러나 나는 무척 감사하다.

50대 말에 간암 판정이 났을 때 마음속으로는 정년퇴임이나 했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다가 퇴임 후에는 65세나 넘기려나했는데 칠순까지 견뎌왔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아들들은 금년 가을쯤 우리 내외 유럽관광을 보내드리겠다고 하니 그 또한 꿈만 같다.

서울에서 손자 은성이가 왔다. 현관문을 열자 날렵하게 달려와서 내 품에 안기는 손자는 이제 제법 머슴아이 티가 난다. 지난 연말에는 녹용을 먹고 불어난 몸으로 뒤뚱거리던 녀석이다. 이제 우리 은성이가 몇 살인가?

“어제 나를 꼭 닮은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출발하기도 하고, 오늘 나처럼 물러나기도 하는가봅니다.”

내 정년퇴임식 때 이런 말로 퇴임사를 시작했으니 벌써 7년 째 접어든다. 녀석은 다짜고짜 세배부터 받으라고 한다. 지난 설날에는 제 아비가 신문사 특근 때문에 내려오지를 못해서 스마트폰 영상 세배로 때우는 바람에 나도 세뱃돈을 영상으로 흔들어 보냈다.

이 녀석이 벌써 돈맛을 아나? 며느리 말로는 아직 화폐 구분을 못한다는데, 하기야 다음에 만나면 진짜 주고받자고 약속은 했었다. 넙죽 엎드리며‘할아버지, 할머니 오래 오래 사세요.’하는 손자가 눈물겹도록 예쁘다.

나는 지갑을 열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5만 원 1만 원 1천 원 권 각각 1장씩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우리 은성이, 할아버지가 어느 돈으로 줄까?”

녀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돈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망설이더니

“할아버지, 다 주세요.”

아내가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얼른 석 장을 걷어다가 은성이에게 주면서,‘우리 은성이 욕심 봐라, 욕심 봐라.’하고 좋아한다. 졸지에 백수 할배는 세뱃돈 육만 천 원을 날렸다. 그나마 지갑에 5천원 권이 없어서 다행이다.

몇 달 전에 오리처럼 뒤뚱거린다는 말이 걸렸든지, 며느리는 은성이가 유치원에서 닭싸움 짱이란다. 얼마 전에는 연달아 다섯 명을 넘어뜨려 다른 아이들이 은성이를 슬슬 피한다고 자랑이다. 그러자 대뜸 아내가‘은성아, 할아버지 하고 닭싸움 해봐라.’

이런 낭패할 일이 있나. 요즘은 한 쪽 발로 단 몇 초도 서 있기 어렵다. 몸이 흔들거려 곧 다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아내가 다시 재촉한다. 마누라도 짓궂지, 이제 내 편이 아닌가보다.

은성이가 한쪽 발을 올려 잡고는‘할아버지!’하고는 깡충깡충 달려온다. 나는 할 수 없이 한쪽 발을 무릎 위로 올려 잡고 섰다. 벌써 몸이 흔들린다. 지래 쓰러지지 않으려고만 애쓰는데, 채 부딪치기도 전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와, 우리 은성이 이겼다.’아내는 손자 손을 들어 흔들며 넘어져 누운 나를 보고 웃는다. 며느리도 웃으며‘은성아, 할아버지가 일부러 져 주신거야.’

아, 세월이 정말 무상하구나.

이래 가지고는 14박 15일 유럽여행이나 제대로 하겠나. 누운 채로 창 너머 건너다보니 광안대교 위로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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