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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공원의 역사성[리더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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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30  17: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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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화 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일제강점기 시에 일본인 개인이 지금 서구청 일대에 조성했던 공원이 부산 최초의 공원일 것 같다. 부산에는 사적공원, 기념공원. 문화공원, 체육공원, 생태공원, 등이 있다. 그밖에 오륙도, 태종대, 안남공원, 낙동강 하구의 부산국가지질공원 등과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근린공원이나 쌈지공원과 어린이놀이공원 등은 제외하였다.

사적공원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운으로 금강공원, 수영사적공원, 자성대공원, 중앙공원, 용두산공원, 태종대공원, 부산시민공원, UN기념공원, 평화공원 등이 있다.

금강공원은 일제강점기 때에 담배장사로 돈을 모았던 히가바라가 풍광이 뛰어난 동래온천장에 1920년경에 정원을 만들어 1931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다. 오래 동안 동래 남문, 독진아문 등이 이곳에 옮겨지기도 했고, 동물원 등을 두었다. 1940년에 동래읍에 헌납하면서 금강원이라 불렀고, 1965년에 금강공원으로 지정하였고, 1966년에 금정산 남문까지 가는 케이블카가 놓였다. 과거에는 풍광이 좋고 그네 등 각종 놀이기구 등이 있어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봄, 가을 행락철에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나 지금은 과거에 비해 빛이 바랜 듯하다.

수영팔도시장에 둘러싸인 듯한 수영사적공원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수영성에 두었다. 허물어진 옛 수영성의 일부, 안용복 동상, 충혼탑, 수영초등학교에서 옮겨온 남문(홍예문, 시 유형문화재 17호)이 있다. 성문, 성의 일부, 25의용단과 오랜 수령을 가진 곰솔(천연기념물 270호)를 볼 수 있으며, 북서쪽에 민속예술관이 있어 수영야류 등을 공연하고 있다. 이곳에는 송 씨 할매당, 할배당과 장승이 있다.

예부터 49m 높이의 송현산(松峴山)이라 불렀던 곳에 용두산공원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곳을 용두산이라 하고서 일본인의 무사 항해를 빌었던 부산신사가 세워졌던 곳이다. 1945년에 신사는 불타고, 6.25전쟁 후에 이 주위가 2차례 대화재가 있은 후에 이승만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雩南公園)이 되었다가, 자유당정권이 무너지고 4.19탑을 세워 용두산공원으로 개명하였다. 울창한 숲이 있어 도심의 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엔 척화비, 충혼탑, 충무공 동상, 꽃시계, 부산타워가 세워져 있고, 많은 시비와 초량왜관의 성터 일부를 볼 수 있다.

유엔기념묘지라고 하다가 2001년 3월부터 UN기념공원이라고 한 이 공원은 6.25한국전쟁에서 산화한 2,300명의 전사자들이 묻혀있는 묘지공원이다. 유엔군의 유해는 이곳에 안장했으나, 당곡공원 위의 평정산 정상에 북한군 전사자들의 묘가 있다가 휴전 때에 송환되었다. 이 공원에는 정문과 추도관은 세계적인 건축가인 고 김중업의 작품이다. 이곳 가운데에 16세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병사를 기념하여 도은트수로가 있어 우리를 숙연케 한다.

태종대공원은 신라 태종 무열왕이 태종대에 와서 활쏘기를 했던 곳이며, 조선조에 가물 때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바다, 바위, 짙은 송림과 솔바람이 있고, 등대와 자갈 구르는 해조음이 있는 곳이다. 꼬마 다누비열차가 달리고, 자살바위 근처에 비녀를 꽂은 어머니와 어린 남매를 안고 있는 모자상이 있다. 이곳의 태종사의 수국은 이곳의 초여름을 더욱 신나게 한다. 망부석, 신선바위 무슨 사연이 있는지 바다만 응시하고 있다. 2019년에 완공될 모노레일을 아름다운 경관을 마음껏 누벼볼 날을 기대해 본다.

부산시 기념물 7호인 자성대공원은 1988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제대로 항전도 못하고 무너졌던 곳이다. 부산진성의 성벽을 허물어 증산으로 옮겨 왜성으로 바뀌는 바람에 전후에는 자성대가 실질적인 부산진 역할을 하여 떡시루처럼 생긴 성안에는 최영 장군 사당과 명나라 천만리 장군의 비가 남아 있다. 경부선 부설 때 허물어 버린 일본사신을 맞던 그 아름답던 영가대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 자성대 위의 장대(진남대)가 있고, 성 아래에는 동문(진동문), 서문(금루관)를 복원하였고, 조선통신사 역사관을 세워두었다. 60년 전이었던가 보다, 야바위꾼, 새점과 뽑기장사 사이에 30환을 주면 갖가지 이상한 붓으로 용과 꽃 등이 있는 이름을 써주던 아저씨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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