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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향과 만프레드[리더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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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30  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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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옥
   부산시향 제1바이올린 수석
 
공항으로 가는 길. 흐린 하늘과 차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교외로 이어지는 한적한 풍경에 아직 만프레드의 판타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연주 후에 오는 피곤함이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건 그 만큼 예술의 전당에서의 연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결과일 것이다.

부산이라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에 살고 있지만 서울과 지리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다 보니 수도권의 문화를 동시에 즐기거나 문화 인프라를 공유할 기회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부산시향이 매년 교향악축제로 예술의전당에서 펼치는 연주는 부산에서 매번 하는 정기연주회보다 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특히나 이번 교향악축제에 대해서 일찍부터 단원들의 관심이 많았다. 2016년 교향악축제에 참가하지 못했고 최근 몇 년 문화회관 재단 법인화와 더불어 상임 지휘자 부재 등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 어쩌면 단원들은 좋은 지휘자와 좋은 연주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베네수엘라 출신의 지휘자 마누엘 로페스-고메스와 협연자 바이올리니스트 정준수로 결정이 내려졌다. 연주할 프로그램으로 베토벤 콘첼토는 익숙한 곡이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만프레드 심포니는 연주해보지 않은 곡이었다.

부산시향의 역사가 50여 년이고 외국인 지휘자들과 연주를 많이 한 탓에 레파토리 스펙트럼이 좁은 편이 아닌데도 부산시향으로서는 처음 연주하는 곡이다. 쉽지 않은 연습과 연주가 되리라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첫번째 리허설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디테일한 연습이 시작되자 여기저기 삐걱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부산공연 하루 전 불안한 리허설을 마치고 단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위기에 강한 부산시향!

3월의 마지막 날 부산 문화회관 연주에서 대단한 응집력과 집중도로 감동을 만들어내었다. 잔 실수들은 있었으나 부산시향 특유의 폭발력 있는 연주에 청중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마누엘 로페즈-고메스, 젊은 지휘자인데도 연습의 굴곡에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연습을 대처하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곡은 영국의 대문호 바이런의 극시의 내용에 기초한 표제음악이다. 극시에 나오는 내용처럼 알프스를 헤매는 만프레드의 모습이나 연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용서 받기 위한 갈구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판타지가 이 교향곡에 담겨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고 연주하기는 엄청 힘들고 듣기는 지루하리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듣는 차이코프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은 청중에게 엄청난 파워로 밀려오는 소리들의 향연과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4월 4일 서울에서의 연주 역시 부산시향의 저력을 숨김없이 보여주었고 상임지휘자 없이 여러 가지 혼란한 상황을 겪고 있는 오케스트라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응집력 있는 연주를 했다고 자부한다. 부산시향의 연주는 부산과 서울 공연장 음향의 차이로 인한 연주습관 때문인지 다소 투박하게 들릴 수는 있어도 백여 명의 단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응집력 있는 연주로 무대에서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청중에게 전달하는 매력을 지녔다. 어제 저녁 우리는 또 한 번 한마음이 되어 가슴 뛰는 연주로 서로를 다독였으며 그것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해졌으리라.

부산,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길. 비행기 착륙 안내 소리를 들으며 비행기 안에서 써내려간 만프레드와 함께한 부산시향의 9일 간의 여행기를 마치려고 한다.

무대에서 함께 가기 위해 개인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억누른 단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며 목적지에 잘 이르도록 길 안내를 잘해준 지휘자 마누엘 로페스-고메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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