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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함께 ‘마을살이’… 지도자에 그림자 지원부산의 도시재생 사람과 사람 <3> 마을활동가의 삶
김효진 기자  |  khi5018@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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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1  19: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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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임기헌 부산 영도구 청학1동 해돋이새뜰마을 마을활동가, 부산반빈곤센터 반상근 활동가
“절반의 주민 돼 스스로 성장하고 조직하도록 도와”
회의서 듣지 못한 이야기는 마을공간 ‘총각다방’서


부산시 영도구 청학1동에 위치한 해돋이마을. 취약계층 비율이 높고, 노후 슬레이트 주택 등 열악한 주거환경과 더불어 안전 및 생활인프라가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이러한 낙후지역을 대상으로 국토부와 지역발전위원회는 새뜰마을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해돋이마을에서는 2015년부터 시작해 2018년까지 새뜰마을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새뜰마을 사업은 취약지역 주민의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해주기 위해 안전·위생 등 중요한 생활인프라 확충 및 주거환경 개선, 주민역량 강화 등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사업구조가 물리적 분야와 사회·경제 분야로 나뉘어서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사회·경제 분야 책임연구원을 거친 뒤, 현재 해돋이 새뜰마을사업 마을활동가로 마을에서 상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지금부터 새뜰마을에서 활동해 온 경험을 중심으로, 부산의 도시재생이 걸어온 길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해돋이 새뜰마을사업, 사회·경제 분야 기본계획수립 용역을 시작하다

해돋이 새뜰마을사업의 사회·경제 분야를 책임지고 시작하면서, 첫 날부터 먼저 시행했던 것은 마을활동가와 책임연구원이 마을에서 상주하면서 마을살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었다.

행정과 함께 하는 마을관련 사업 활동가는 대부분 회의 또는 행사가 있을 때 마을을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마을활동가의 역할은 주소지까지 옮기면서 완전히 그 마을의 주민이 되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절반의 주민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활동가를 위한 공간이 마을 속에 별도로 갖추어져야 한다. 다행히 주민들의 도움으로 어르신들이 이용하지 않으시는 경로당을 임시 활동가 아지트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해돋이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경로당은 빼어난 전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앞으로는 영도 앞바다가 펼쳐져있고, 아침마다 뱃고동소리가 들려온다. 게다가 뒤로는 봉래산이 자리잡고 있어 맑은 공기는 물론 온갖 산새 소리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한겨울에도 햇빛이 따뜻하게 감싸주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활동가들에게는 과분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공간이었다.

 
   
▲ 마을살이 공간 ‘총각다방’.

◇ 나는 절반의 주민, 마을살이 활동가랍니다

활동가를 위한 마을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상주를 하는 경험은 나로서도 처음이었기에, 많은 기대와 각오 속에서 마을살이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출퇴근시간은 내부적으로 정해뒀지만, 마을살이를 하는 활동가에게 시간은 중요치 않다. 언제든지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지, 주민들에게 고용된 종업원처럼 정시 출퇴근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새로운 기술과 정보·자본을 투입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 그 마을, 그리고 그 모임 내부에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었던 희망을 구성원들이 스스로 발견해내고, 그것을 잘 키워서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즉, 타동사가 아닌 자동사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을활동가는 ‘주민 스스로 성장하고 조직하도록’ 지원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에 밀착돼 있어야 하고,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 내가 마을살이를 고집하면서 주민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문화, 그리고 속 이야기들을 들어보고자 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을살이 공간 덕분에 언제든지 주민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다. 때로는 댁으로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또 특별한 경우에는 몇몇 분들을 모셔서 우리 공간에서 간단한 식사를 대접해드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님들이 그러신다. “아이고, 평생 영감 밥만 챙겨주다가 내가 대접을 다 받네~”. 먹을거리가 풍부하지도 않은 빈곤한 밥상이지만, 주민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진다.

이렇게 가까워지는 사이 만큼, 우리 공간에서는 그 동안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다. 우선 새뜰마을사업 관련 주민들과 함께 한 워크숍이 개최됐다. 행정과 용역업체,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정기적인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현장에 있다보니 회의를 하다가도 필요하면 바로 현장을 방문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별하게 날짜를 정해서 주민들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필요할 때 주민들을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었다.

때로는 주민들이 우리 공간을 찾아오기도 하신다. 어떤 날은 먹을거리를 잔뜩 가져다 주는 분도 계시고, 담장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긴급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눈물을 뚝뚝 흘리시면서 주민들과의 갈등을 쏟아내시기도 한다.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고 온갖 하소연을 하시지만,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청한다. 하소연하시는 분의 마음이 시원하게 풀리실 때까지 들어드린다. 그럼 결국 “끝까지 경청해줘서 정말 고맙소”라며 웃는 얼굴로 돌아가시는 어르신의 표정에서 속 시원한 해답이 찾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말씀을 들어드린다는 것은 어르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멘토링이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민들 전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갑작스럽게 마을에 들어온 우리들이 무슨 재간으로 주민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설문조사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자 효율적인 도구이다. 설문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생각, 고집, 주장, 하소연 등을 듣고 자료화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주민들이 주민회의에 참석하지 않기에, 가장 가까이에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을에 상주하면서 주민분들과 동고동락하고,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예상 외로 더 많은 배움의 시간이 주어지고, 가능성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새뜰마을사업 활동가로서의 나의 노하우는 한층 깊어짐을 느낀다.
 
   
▲ 마을살이 공간 ‘총각다방’을 이용하고 있는 주민들 모습.
◇ 가짜 총각들이 만들었어요! 새로운 마을살이 공간 ‘총각다방’

2016년 여름. 마을 내부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경로당을 마을살이 공간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또 다시 주민들의 도움으로 빈집을 아주 저렴하게 세를 얻어 새로운 둥지 마련에 돌입했다. 그 간의 경험을 토대로, 마을활동가만을 위한 마을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견고해졌다.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을살이 공간의 이름을 고민하던 중, ‘총각다방’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론 우리는 총각이 아니다. 함께 한 시간이 제법 쌓인 주민분들도 잘 아신다. 때문에 오며가며 “아저씨들 총각 맞아예?”, “아들 둘에 딸 서이나 있다면서”라며 농담을 건네시는 걸 잊지 않으신다. ‘총각다방’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골목길에는 웃음이 넘쳐난다.

새롭게 마련한 마을살이 공간은 예전에 동네 ‘점빵’을 하던 곳이라 목이 좋다. 총각다방의 문은 항상 조금씩 열려있다. 닫혀있으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돌아가실까 염려돼서다. 조금이라도 문이 열려있으면, 주민분들은 오며가며 기웃거리기도 하시고, 한 말씀이라도 건네고 가신다. 심지어 동네 고양이도 문이 열려있으면 한 차례 들어왔다가 나간다.

마을 꼭대기에 위치했던 예전 마을살이 공간보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다 보니, 훨씬 더 많은 만남과 대화가 가능해졌다. 마을살이가 제대로 탄력을 받은 것이다.

총각다방 옆집에 계시는 박 모 어르신은 가장 좋은 이웃이다. 작은 애로사항이라도 있으면 바로 달려오셔서 도움을 요청하신다. TV 옮기기, 전기장판 오작동, 휴대전화 확인하기, 심지어 빨래 같이 걷기 등을 당당하게 요구하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부탁이 반갑다. 주민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접촉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잦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행정적인 업무를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민들의 잦은 왕래가 있기도 하지만, 그 순간순간들이 결국 주민들이 우리를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을에서 상주하면서 주민들과 일상적인 삶을 같이하다보니, 공식적인 회의석상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그 분들만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물론 항상 좋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온갖 질투와 비방, 오해가 뒤섞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주민들의 삶이고, 현실이다. 이런 삶의 단면들을 함께 직면하면서 알게 모르게 마을활동가와 주민들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서로가 고마워하는 사이가 된다.
   
▲ 임기헌 부산 영도구 청학1동 해돋이새뜰마을 마을활동가가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해돋이마을에서 새뜰마을사업 책임연구원과 활동가로 활동해오면서, 마을활동가들의 ‘마을살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외부 전문가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로 마을이 마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주민 언어’ 속에 주민의 일상이 담겨져 있는 ‘주민 시설’로부터 시작할 때 참된 마을공동체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마을활동가는 주민들을 이끌고 가는 젊은 리더가 아니라, 인정받는 주민지도자가 충분히 역할을 하실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지원하고 촉진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 그리고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종류의 도시재생사업이든, 중요한 것은 ‘마을은 본질적으로 사람이 사는 곳이지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필요한 사업은 자연스럽게 결과적으로 이어지는 형태가 적합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마을의 주인이자 주체인 주민이 이끌어가야 한다. 수많은 마을만들기 사업 속에서 주민이 또 다시 대상화되고 단지 ‘참여자’로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업비의 힘보다 주민의 힘이 훨씬 큰 구조 속에서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들이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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