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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드로잉[리더스 칼럼]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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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7  13: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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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향미
   화가
모든 사물이나 생각, 일들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살다보면 사람 관계나 스스로의 자아 안에도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림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작가들이 그림자가 전혀 없는 실체만을 그리기도하고,

그림자를 이용하여 사물을 더욱 잘 표현하기도 한다. 또 어떤 작가들은 그림자만을 그려서

원하는 주제의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확대, 축소, 과장하기도 한다. 사실은 그림자로 인하여 그 대상이나 본질이 더욱 실재감을 지니게 될 뿐 만 아니라 주제나 표현의 영역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

나는 작가의 눈으로 그림자의 평면적인 조형성이나 세련된 실루엣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림자를 즐겨 바라보면서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림자의 변형을 그리다보면 실체가 더욱 궁금해지고 더욱 자세히 객관적으로 살피게 된다. 그림자의 조형성 때문에 그 실체나 본질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실체의 모습에 감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언제나 실체는 그림자의 존재를 가지고 있다. 실체에 대한 탐구는 역으로 그림자에 대한 발상이나 표현해내고자 하는 조형성에 대한 탐구를 넓혀주게 된다. 작업에 있어서 그림자와 실체는 서로 다른 양면적인 대상이 아니라 한 몸에서 다른 꿈을 꾸게 되는 동상이몽의 표현영역의 대상이 된다.

꽃을 바라보면 꽃만 보이지만 환한 벚꽃 밑에 엷게 드리운 투명한 그림자는 수많은 벚꽃의 만개한 모습을 화사하게 드러내어준다. 함께 보고 있지만 보는 이의 눈길에 따라 있고 없음이 달라진다.

현실에서의 삶이나 사회 안의 관계에서 명암의 표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바라보는 이의 끊임없는 관찰과 읽어내는 능력은 세상살이에서 밝음과 어두움이 단절된 다른 이면이 아니라 수많은 명암의 단계를 이어와야만 표현되어지는 그림자임을 알게 된다. 그림자의 모습은 양면적인 다른 나눔이 아니라 다면적인 폭 넓은 이해의 결과임을.

실체를 분명하게 가두리하는 명암, 그것이 그림자의 역할이기도하다. 바라보는 이가 이러한 사실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림자를 잃어버린 꽃은 자태가 없는 색칠한 평면으로 표현되는 다른 세계가 된다. 최고 밝은 하이라이트는 반드시 가장 어두운 빛과 함께 한다. 어두움이 잘 표현되지 않으면 하이라이트 또한 극적인 효과로 빛을 담지 못한다. 흑과 백의 어울려짐은 자기자리에서의 역할을 가늠해서 제대로 표현되어져야만 대상이 잘 드러나게 된다. 풍경의 이면에 있는 명암의 모습은 양면이 아니라 서로이자 하나가 되는 상호보완의 의미이며, 한 몸에서 잉태되는 상대적인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임을 읽어나가야만 한다.

마음에 가지는 만큼이 마음가짐이라면 서로 다른 꿈을 모두 꿈꾸어 보면서 넘나드는 삶은 얼마나 유유자적일까. 그러나 몸은 하나이고 꿈과 마음은 또 다른 주머니를 지니고 있으니 눈을 뜨면 간혹 꿈은 한바탕 꿈으로 지나감을 아쉬워하게 된다.

나의 삶 어디에 자유를 두어야할지 매일 이른 아침마다 꿈꾸면서 내 손 안에 쥐어진 오늘 하루의 시작을 다시 바라봐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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