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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화살[리더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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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6  13: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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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보경 시인
곰곰 생각해보면 나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으로 불교를 만났던 것처럼 시를 만났다. 기도는 부처님께 대자대비를 베풀어 달라고 생떼를 써보는 것, 기어이 가피를 받고 말리라는 나만의 막연한 주술 같은 것이었고 나의 시는 그런 기도를 닮았다.

일이 뜻대로 해결이 되지 않아 많이 힘들고 지치던 때가 있었다. 제대로 의례를 갖추어 한 것은 아니었지만 힘든 일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부적을 마련하듯 사경에 매달린 적이 있었다. 49 번째 금강경 사경을 하고난 후였다. 사경을 마치고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그냥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의 이유를 조근조근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막혔던 가슴 한켠이 툭,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금강경을 읽는 시간은 참 행복했다.

불교의 목적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지혜로운 이든 어리석은 이든 살다가 어떤 경계를 만나게 되면 생각과 느낌이 일어나고 여러 감정들이 발생한다. 첫 번째로 맞는 화살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경계에서 일어난 감정에 끄달리지 않지만 어리석은 이는 이미 일어난 감정에 매달리고 집착하느라 더 깊은 괴로움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이다.

꽃샘바람이 차갑던 3월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해 봄비가 무척 잦았다. 비에 젖어 눅눅해진 죽음의 얼굴을 떠올리며 여기와 거기의 경계에 서서 나도 비처럼 눅눅해졌다. 두려움과 슬픔이 쏜 두 번째 화살을 맞고 이불 속에 웅크렸던 나를 깨운 것은 아슴아슴하게 젖어드는 어머니의 다라니였다. 어머니의 독경소리는 구슬프고 나즉나즉했다. 사람이 내는 소리에 그리 은근하게 마음을 흔드는 힘이 숨어 있는 걸 그때 알았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기도는 나의 초발심이 되었을 것이다. 그 초발심이 자라나 나의 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쓰는 일은 기도처럼 느닷없는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을 벗고 짧은 행복을 느끼는 일이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 나는 원시적인 기도를 하고 시를 써온 것 같다.

어떤 걸림에 벗어나려다 더 지독한 걸림에 걸려들어 마음이 얼키설키 얽힐 때가 있다. 한 편의 시를 억지로 매만지고 주물럭거리다 보면 과도한 욕심과 무리한 집착이 오물처럼 엉겨붙는다. 방향과 형태를 잃어버린 거두절미처럼 시는 불가사의해지고 온전하지 못한 불구의 몸이 될 때가 많다. 시는 스스로 쏜 화살에 맞아 제 모습을 잃고 헤맨다. 부메랑처럼 돌아온 화살은 더 힘들고 독한 ‘두 번째 화살’이 되고 만다. 시작詩作도 생사의 업을 짓는 일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한 순간 쾌락과 고행이라는 두 극단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확고한 결론을 내리셨다. 그러니 시가 더 없는 쾌락이거나 더 없는 고통이 된다면 시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시인은 시가 쏜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연달아 맞아 치유 불가의 괴로움에 빠진 시중독자가 되고 말 것이다.

시의 등 뒤로 두 번째, 세 번째 화살들이 줄줄이 날아와 박힌다. 화살의 독 때문에 몸과 마음이 상해 가듯 나의 시도 그리 시들어간다. 두 번째, 세 번째의 무수한 화살이 스스로가 쏜 것임을 눈치 챈 시가 자책과 부끄러움을 버무려 또 다른 화살을 스스로를 향해 겨누고 있는지 모른다.

불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나는 시의 몸통 전부를 버리고 싶다. 시를 버리는 것은 시를 벼리는 일일 것이다. 잘 벼려진 시의 취모검(吹毛劒) 위에 마지막 남은 시의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그 또한 벼려져 깨끗이 버려질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두 번째의 화살’이 될지 모른다. 새로운 두려움 앞에 눈 감아버리는 어리석은 청맹과니가 되는 것인지 모른다. 애초 시라는 것이 썩은 등걸인지 모른다. 시를 쓰는 일은 꿀맛처럼 짧은 행복에 취한 중생이 올리는 기도처럼 애처롭고 절박한 마음으로 시와 무모하고 위험한 맞짱을 뜨는 일인지 모른다.

분명하고 확고한 결론 하나는 이 모든 기도와 시라는 것이 모르고 짓는 죄 하나를 보태는 일이라는 것이다.

푸른 오월이다. 부처님 오신 뜻이 좀 더 푸르게 돋아나 온 누리를 환하고 맑게 비추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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