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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남아 있는 근대건물[리더스칼럼]
공기화 교수  |  khj@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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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6  17: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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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화 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
부산광역시는 개항과 더불어 일본으로부터 근대문물의 창구가 된 곳이다. 해방 후에도 일본식 건물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신동, 대청동, 남포동, 초량동, 수정동에 가면 아름다운 일식가옥(日式家屋)을 많이 볼 수 있었다. 6·25전쟁에서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지역이 개발되고 가옥이 개량되면서 정감 있는 일식가옥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부산진일신여학교(부산기념물 제55호, 2003. 5. 2)는 동구 좌천동 768-1에 위치하여 있는데 부산 최초의 3·1독립만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호주장로교선교부의 여선교사인 멘지스, 페리양이 일신병원 쪽의 3칸 초가에서 3명의 여자 고아를 선교사로 만들 목적으로 교육을 시켰는데, 많은 부산의 여자아이들이 모여들어 1895년 고아원에서 주간학교를 열어 ‘날로 새로워져라’는 뜻인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라고 하였다. 1895년 10월에 여전도회가 주관하고 선교사들의 관리 아래 초가에서 3년 과정의 소학교를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은 멘지스 선교사이다. 1905년에 초가를 허물고 서양식 양옥건물을 지었다. 2층으로 증축된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2층 증축 시에 1층 교실 내에 기둥을 별도로 두지 않았는데도 지금까지 사고도 없이 버틴 것은 다행이며 100년 전의 서양식 테라스를 만날 수 있다. 10년 전에 부산노회에서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있었던 이 건물을 지키려고 애썼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좌천동일신여학교는 새롭게 복원되어 있다. 이곳의 보존을 위해 애쓴 이상화 장로님, 김운성 목사님 등 여러 부산노회사 편찬위원들과 교육자료를 제공한 안대영 장로님께 감사드린다.

임시수도대통령관저(부산광역시기념관 제53호, 2002. 5. 6)는 서구 부민동 22번지에 있다. 경상남도 도청이 전주에서 1925년 4월 1일에 옮겨오고 1926년 8월에 도지사 관사가 이곳에 옮겨왔다. 1950년 6·25한국전쟁의 발발 후 8월 18일에 정부가 부산으로 옮겨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의 관사가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이 수복되자, 동년 10월 27일에 환도하였다가 1951년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 때 다시 부산으로 임시정부가 옮겨왔다가 1953년 휴전협정이 되고 8월 15일에 서울로 환도하였다. 이 건물은 2층 목조건물이며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이 지낼 수 있는 일본절충양식의 기와집인데, 점점 퇴락하여 삐거덕거리는 것이 아쉽다. 그곳에는 대통령이 사용한 듯한 가구들이 있어 정취를 더한다. 이 건물은 근대양식을 수용한 일본식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단아한 건물의 모습과 조용한 뜰이 아름다워 부산 근대역사 사진전을 열 때면 찾는 곳이다.

부산임시정부정부청사(등록문화재 제41호, 2002. 9. 13)는 1924년 12월 8일 총독부령 제76호에 의하여 진주에 있었던 도청을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이 건물은 서구 부민동 2가 1번지 현 동아대 부민동 캠퍼스 내에 있다. 1923년부터 경남도청 청사를 짓기 시작하여 1925년 4월에 완공한 2층 벽돌기와건물이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진주시민들의 반발이 커서 병원건물을 짓는다고 거짓말하고서 완공하였다. 1925년 4월 1일 경남도청은 부산으로 이전하여 4월 17일에 이전식이 있었고, 4월 25일부터 업무가 시작되었다. 6·25한국전쟁이 발발되자 이곳의 본관은 서울에서 피난 온 임시정부청사가 되었고, 뒤편 건물은 경찰청과 군·경합동작전사령부로 사용하였고, 도지사 관사인 현 임시정부기념관에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다.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후 1984년부터 부산검찰청에서 사용되다가, 2002년 동아대가 매입하여 리모델링 한 후 2009년부터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건물을 리모델링 할 경우에는 이 건물처럼 원형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건물 밖에서 보아도 참 아름답다. 건물의 밖에는 폐 사찰에서 가져온 석조물이 나무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산근대역사관(부산시기념물 제49호, 2001. 5. 16)은 중구 대청동 2가 24-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지어진 것이다. 이 회사는 1910년 마산출장소로 설립되었다가 1921년 중구 영주동으로, 1929년에 대청동으로 이전하였다. 이 건물은 근대합리주의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외벽 기초와 바닥은 대리석을 깔고, 1층과 2층 사이에는 문양을 넣었다. 전형적인 은행 건물로 대형 기둥을 세워 웅장함을 나타내었고 창문은 전형적인 서구 형태이며, 옥상은 철근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미군의 주둔지로, 이후 미문화원, 미대사관(1950년~1953년), 한국전쟁 후에 미문화원으로 사용되다가, 1982년 3월 학생운동으로 방화 되기도 하였다. 1996년에 폐쇄되었고 그해 우리 정부로 돌아와서 2002년 7월 3일 부산근대역사관으로 개관되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기상청(부산시 기념물 제51호, 2001. 10. 17)은 중구 대청동 1가 9-305번지의 복병산 배수지 위에 있다. 부산의 기상 관계는 1904년 3월 7일에 측우소가 부산, 인천과 목포에 설치되었다. 1905년 12월 31일에 중구 영주2동에 기상업무의 임시청사를 지어 1906년 9월 1일부터 기계식 지진계를 설치하여 지진 측정을 하였다. 중구 대청동의 기상청 청사는 1933년에 착공하여 12월에 준공하여 1934년 1월에 기상업무를 시작하였다. 1939년 7월에 조선총독부 기상대 부산측우소로 개칭하였다. 1948년 국립중앙기상대 부산측우소로 개칭하였고, 1992년 3월에 부산지방기상청으로 승격되었다. 부산기상청 건물은 4층 서양식 건물이다. 복병산 산정에 서 있는 이 건물은 부산을 내려다보는 깔끔한 영국신사와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밋밋하지 않고 돛단배나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을 보는 듯하여 아름답다.

부산성공회 성당(등록문화재 575호, 2013. 10. 29) 부산근대역사관 건너편 골목길로 약 30m에 위치해 있다. 한국성공회는 1903년 일본인 신자 중심으로 주교 ‘고요한(코프)’에 의해 조선교구로 설립되었다. 이 성당건물은 캐나다 선교사인 차애덕 신부가 남긴 생명보험금으로 건축된 것으로 1914년 40여 평 대지를 구입하여 1924년 러시아에서 구입한 붉은 벽돌로 건축되었다. 이 건물은 기독교 건물의 표본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된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 건물은 재단법인 대한성공회의 소유이며 관리자는 대한성공회 부산교구장인 이대용 주교이다. 이 건물은 부산, 경남을 통틀어 성당 건물로는 유일하게 등록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적인 건물로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

구 경남상업고등학교(현 부경고등학교, 등록문화재 제328호, 2007. 7. 3)의 본관 건물은 서구 서대신동 3가 52번지 구덕종합운동장 바로 곁에 있다. 이 학교는 1906년 중구 신창동에서 개교하여 1907년 중구 보수동으로 이전하였다. 1912년 4월 부산공립상업전수학교로 개칭하여 5월 대신동으로 이전하였다. 1922년 부산공립상업학교로 개칭, 1923년 3월 21일 폐교하여 그날 일자로 부산제1공립상업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하여 1927년 그 자리에 본관을 증축하였다. 이 건물은 서양 고전건축을 재해석한 전형적인 관공서 양식의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벽면은 몰딩 처리와 수평적인 줄눈, 벽면의 장식적 처리를 통하여 정면성을 강조하였다. 건물은 중앙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다. 학교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 건물에 찬사를 보낸다.

경남고등학교의 덕형관(등록문화재 제568호, 2013. 10. 28)은 서구 동대신동 3가 63-2번지의 경남고등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4층 484.7㎡에 연면적 2,020.47㎡인 원형 평면 건물로 근대 모더니즘 건축양식 연구에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1956년 11월 30일에 준공한 이 건물은 이천승 씨가 설계하였고, 원형이 6등분 되어 있는 원통형의 건물로 한 층에 5개의 교실과 1개의 화장실로 되어 있다. 교실은 둥근 부채꼴로, 계단은 나선형으로 되어 있으며 발코니는 교실 밖 통로가 되어 있다. 온냉방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북쪽 교실은 겨울에 춥고, 남쪽 교실은 여름에 무척 더운 게 탈이다.

정란각(등록문화재 제330호, 2007. 7. 3)은 동구 수정동 1010번지에 있다. 1912년 실시된 토지조사 시 일제강점기에 부산에서 토지 투기를 하여 돈을 모은 하지마(迫間房太郞) 외 2명의 소유였다가 후에 하지마의 단독 소유가 되었다. 1925년에 토목건축청부업자였던 오하라 타메(小原爲)에 의해 1층 규모의 일식목조건물로 건축되었다. 1931년 6월 인근에 2층 규모의 일식목조주택으로 사용하였다. 1939년 일본인 양전양이 이 주택을 매입하여 본채를 2층 규모의 일식주택으로 건축하였다. 이 주택은 1층과 2층은 일식목조주택, 2층의 양옥 등 3개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일식 건물 사이에 정원이 있다. 이 주택의 특징 중 하나가 2층 일식주택은 증기난방시스템으로 되어 있으며, 지하에 보일러실이 있는 등 근대식 위생설비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고위관료들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 한국인이 인수하여 정란각이라는 고급요리집이 되었다가 지금은 문화재가 되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1’이 촬영되기도 하였다.

다나카주택(등록문화재 제349, 2007. 9. 21)은 초량이바구길 끝에서 초량시장을 구경하고 고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타나는 아름다운 일식가옥이다. 이 건물은 1925년 일맥문화재단에서 토목업에 종사하였던 유명한 건축가인 다나카(田中筆吉)가 건축한 건물이라고 해서 ‘다나카 주택’이라고 부른다. 이 건물은 일식목조주택으로 2차례 증축이 있었다. 이 건물은 내부공간과 건축의장, 정원 구성이 우수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일제강점기의 주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워커하우스는 현재 부경대 대연캠퍼스 내에 있다. 1950년 9월 5일부터 미8군사령부가 대구에서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으로 이전하여 작전지휘본부로 사용했던 건물이 아직 대학에 남아 있다. 이기대 등지에서 해안의 돌로 80㎝ 정도 두께의 벙커형 작전지휘본부가 완공되었을 때 찍은 사진 일자가 8월이므로 대구에서 철수하기 이전에 지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전에 바닷물이 닿는 곳에서 불과 3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서양식 건물로 세워진 이 건물을 주민들은 ‘미 장군의 별장’ 또는 ‘돌집’이라 불렸다. 이곳은 1960년대 이후 학교경비원의 본부, 창고, 교수·학생 식당으로 사용되었다. 1981년부터 대학의 동아리방으로 이용되다가 1990년에 화재가 나서 벽체 외에 완전 소실되었다가 1995년도 9월 29일에 준공하였다. 건물이 지방문화재라도 지정이 안 된 것은 퍽 유감스럽다. 피난임시수도 유적지로 유네스코 인류문화등재 후보 건물 중 하나로 가치가 인정된다.

벽제병원은 초량의 차이나타운의 화교중학교에서 말린 명태를 보관하였던 옛 남선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쭉 나가다 보면, 검붉은 5층 벽돌집이 있다. 이 건물은 김해 명지 출신의 최용해 씨가 일본 강산의전을 졸업하고 건축업을 하던 장인의 눈에 들어 일본에서 결혼하고 부산에 사립벽제병원을 지었다. 이 건물은 동양척식회사에서 3만 원을 차용하고 사재를 털어 지었다. 이 병원은 당대 부산시립병원, 철도병원과 더불어 부산의 3대 병원이었다. 외과는 최 원장이 맡고, 내과는 구주대학의 세전(細田) 박사와 한국 3번째 박사인 경북도립병원의 외과 과장인 최일문을 초빙하였다. 기타 이비인후과와 치과를 두었으며 병원 종업원들은 30명 정도 되었다. 이 병원은 번창일로에서 해골표본사건과 빚 독촉으로 파업하였다. 최 원장은 그의 나이 39세에 빈털터리가 되어 일본으로 야반도주하였다.

이 건물은 중국인 양모민 씨가 인수하여 1933년에 봉래각이라는 중화요리점, 1942년 태평양전쟁 중 양모민 씨가 본국으로 돌아가자 일본 아까즈끼 부대가 접수하여 숙소로 사용하였다. 해방이 되어 귀환한 학생들과 일본인 사이에 서로 접수하려는 분쟁이 있었다. 후에 신세계예식장으로 사용된 적도 있었고, 화재 후 오랫동안 빈집으로 있다가 최근에 건물 일부에 커피숍을 개업해 영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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