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UPDATE : 2019.8.21 수 10:01
> 기획/연재 > 칼럼/기고
사라진 부산의 아름다운 근대건물들[리더스 칼럼]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신고하기
승인 2017.03.05  15:02:21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미투데이 트위터
   
▲ 공기화
   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가 1960년대부터 사라진 부산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다. 구 부산부청사, 부산우편국, 구 부산역사, 구 부산세관, 구 부산상품진열관, 구 조흥은행 영주동지점, 부산중학, 미나카이백화점 등이다.

구 부산부청사는 부산시 중구 중앙동 7가 20번지였는데, 동광동에서 용두산공원 남쪽 중턱인 기업은행 중앙동지점이 해방 전까지 부산부청사가 있었던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04년 일본영사관으로 신축되었다가 부산이사청사로 사용, 1936년 부산부청사로 사용되었다. 건물의 양식은 특별한 특징이 없는 전형적인 서구식 공공건물 양식으로 지어졌다.

부산우편국은 중구 중앙동 3가 1번지 즉 현 부산우체국 자리에 1876년 11월 1일 제국우체국이라는 명칭으로 부산에서 처음으로 우편업무를 시작했던 곳이다. 1884년에 전산업무를 취급한 전산국과 우편업무를 통합하여 부산우편전산국이라고 했다. 1905년 통신과 전보 등 통신업무를 망라하여 취급하여 부산우편국이라고 하였다. 구 부산우편국청사는 2층 벽돌 건물로 1910년 5월 25일에 연건평 848평으로 준공하였다. 이 건물은 전형적인 서구 르네상스식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예술성은 그리 뛰어나지 않으나, 안정감이 있고 장중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 건물은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때 소실되었다.

구 부산역사는 일본 전관거류지였던 동광동, 초장동, 광복동 등지와 가까운 중앙동에 옛 부산역사를 야심작으로 지었다. 지금의 중앙동 부산경남본부세관 맞은편 쪽에 있었던 부산역사는 1908년 6월에 착공하여 1910년 10월 31일에 서구식 건축기법의 붉은 벽돌로 지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준공되었다. 총 공사비는 약 25만 원으로 역사건물(驛舍建物, 370.6평)은 처마 높이가 34척, 돔(dome)형의 지붕은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75척이다. 이 역사적인 건물은 일본 건축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타스노(辰野金吾, 1854 ~ 1919)가 설계하여 완공되었는데,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중간기에서 중세의 건물과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던 독특한 양식의 사라센풍(Saracens style)을 연상시키는 건축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외관 장식은 벽돌벽 상반부에 화강암으로 4겹을 둘러 붉은색과 회색을 강조하였다. 지붕은 스레이트로 이었고, 옥상에는 시계탑과 창문을 내단 각탑(角塔)과 또 다른 지붕 위에 시계탑이 있는 돔형 지붕을 얹었다.

구 부산역사는 동경역을 축소한 서울역보다 더 아름다웠다. 관부연락선을 타고 내려 조선의 관문에 우뚝 솟아 일본 관광객들, 장사꾼과 서울이나 만주로 가는 일본군인들을 기분 좋게 하여 맞이하고 떠나보냈을 것이다. 이 부산역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서울, 평안도, 멀리 함경도 등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의 애환을 담은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으로 시작되는 ‘이별의 부산정거장’(홍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이라는 가요의 현장이었다. 이곳은 전쟁으로 이별했던 사람들이 얼싸안으며 만난 곳이며, 군복무, 학업, 취업, 이사 등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별해야 했던 역이었다. 이 건물은 1953년 8월 15일 부산에 내려온 임시정부가 환도한 지 불과 102일이 되는 날인 11월 27일 밤 8시30분께 영주동 서쪽 산비탈 즉 지금의 흥아거북맨션 아래 골목에 있던 판자촌에서 불이나 거세게 분 하늬바람을 타고 거의 유지(기름종이) 지붕인 동광동 판자촌을 불태우고 영주동·중앙동·대청로 입구 일대를 불태웠다. 그 불은 길 건너편의 구 부산역사를 불태워 지금의 정발 장군 동상이 있는 초량역에 부산 본역을 옮겼다.

구 부산세관은 1976년 부산시 유형문화제 제22호로 지정되었다가 1976년 12월 7일에 해체된 건물이다. 건물의 위치는 부산시 중구 중앙동 4가 17번지 지금 부산경남본부세관 왼쪽 육교가 있는 곳이다. 부산의 근대 세관의 효시는 1878년 동구 수정동에 세워진 두모포해관이었다. 1883년 조일관세협정이 체결되자 그해 11월에 부산해관이 지금의 동광동 부산데파트 자리에 세워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1907년 12월 16일 부산세관으로 바뀌었다. 구 부산세관의 건물은 1909년에 착공하여 1910년 8월 30일에 총면적 308.4평 위에 146.9평의 2층 벽돌 건물로 우람하고 아름다운 건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건물은 문화유산에 무지한 도시행정관료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1979년 부산대교 건립과 도시계획으로 인해 헐렸다. 지붕 위의 철탑은 부산경남본부세관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구 신창동에 있었던 구 부산상품진열관은 1903년 6월에 착공하여 1904년 12월에 준공하였던 부산 최초의 3층으로 된 서구식 벽돌건물이었다. 이 건물의 특징은 아래의 1/3은 아치형으로 2층 높이로 뚫리게 하고 그 좌우에 프랑스 원형성곽의 모양으로 쌓아 4층 높이의 뾰족탑으로 완성하였는데, 외벽의 구성은 독일과 영국의 풍을 두루 갖췄다. 1909년 1월 9일 영남지방에 순방 왔던 순종 황제가 이곳을 시찰하고 1910년 1월에 대한제국정부에 2000원을 희사하였다고 한다. 1910년 4월 21일 재개관 때 2층에 일본 상품을, 3층에 조선 상품과 참고자료를 진열하였고, 원형탑 방에는 신문열람실이 있었다. 이 건물은 한때 부산상공회의소 사무실로 쓰다가 1927년 부산저축관리국청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건물은 1963년 말까지 현존하다가, 후에 철골 건물을 지어 새부산예식장으로 사용한 적도 있었고, 리모델링하여 미라지오 도매상가로 영업하다가 지금은 상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동구 초량동 1210-15번지에 위치했던 조흥은행 영주동지점은 1892년 7월 제58은행 부산지점으로 개업하여 영업을 하였다. 이 건물은 은행으로 합병되고 명칭이 개칭되면서 1943년 10월 1일 한성은행과 동일은행이 합병되어 조흥은행 부산지점이 되었다. 구 조흥은행 영주동지점 건물은 1926년 6월에 착공하여 1927년 8월에 준공하였던 2층 벽돌의 르네상스 서양식 건물이며 외벽은 화강암이었고 내벽은 철골 시멘트로 지었다. 이 건물은 비대칭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정감이 있고 창틀과 창틀 사이는 원형으로 되어 있어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이 은행은 1987년 부두공사인 충장로와 부산터널 간 연결 고가도로를 건설하면서 철거되었다. 문화재로 가치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 행정관료들의 무지함과 기업의 영리 목적 때문에 사라져 버려 너무도 아쉽다.

부산중학은 일본인 자제들을 교육했던 부산의 공립 중등학교이다. ‘일제강점기의 사립학교 탄압사’를 발표한 후 ‘지금의 부산고등학교의 전신인가?’라는 질문을 받고서 ‘일제강점기 시 부산중학의 교육목적은 ‘조선혼을 말살하고 황국신민을 만들기’’이며 졸업생의 거의 대부분이 일본인 자제라는 이유로 ‘아니다’ 하고 답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 학교는 한국에 와서 조선총독부의 배경으로 한 대목 잡으려던 일본인의 자제에게 중등교육을 가르쳤던 학교였다. 그들은 효율적으로 조선을 경영하기 위해 그리고 본토의 일본인 교사들이 조선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의 최일선인 부산에 근사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일본에서 고급 건축자재를 보내어 잘 지어졌던 2층으로 된 목재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전형적인 학교건물이지만 장중한 멋을 지니고 있었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의 근대화로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어 학생 수는 많고 교실을 충당할 수가 없어 1970년대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하여 헐었던 것이 너무나 아쉽다.

미나카이백화점은 미나카이상사가 1907년 부산에 진출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5층 건물은 중구 중앙동 7가 20번지 지금의 롯데백화점 광복점에 위치하는데, 1937년 700평 5층 건물로 엘리베이터 2대가 운행되었던 당시 부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미나카이백화점은 부산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부산부청 옆 건물이었던 이 건물은 6·25전쟁 때 5육군병원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고, 1967년 10월 25일 부산상공회의소가 이 건물을 인수하여 1976년에는 2층을 더 증축하여 7층이 되어 1987년까지 사용하였다. 1987년 부산상공회의소가 범천동으로 이전한 후 1998년 1월 부산광역시 시청이 연산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부산시청 별관으로 사용되다가 2000년께 롯데백화점 광복동 신축으로 철거되었다.

능풍장은 좌천2동 수정초등학교 동편 언덕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골동품을 수집하는 일본 상인인 오이케 다다스케(及川民次郞)가 큰 저택을 짓고서 능풍장이라고 하였다. 이 건물은 현존하지 않는 것 같다. 오이케 다다스케는 1905년 영가대(永嘉臺)가 경부선 철로로 말미암아 양분되면서 철거된 정자 1동을 사들여 능풍장 언덕바지에 옮기기도 하였다. 이 정자 역시 1966년 이후 동구청과 도로확장공사에 의해 철거되면서 사라졌다.
 

[관련기사]

일간리더스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신고하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미투데이 트위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594 |  대표전화 : 051-996-2400  |  팩스 : 051-996-2408  |  등록번호 : 부산 가 00020  |  발행·편집인 : 백재현
등록번호 : 아00219 |  등록일자 : 2015년 2월 06일 |  청소년 보호책임자 : 백재현
Copyright © 2014 일간리더스경제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