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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고향 몽마르트르 언덕[리더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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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1  13: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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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중구
   수필가·여행가

나는 언제부터인가 ‘몽마르트르 언덕’이란 말을 들으면 어릴 때 소꿉동무들과 뛰놀던 고향 마을 이름을 듣는 것처럼 따스한 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인데도 몇 번이나 다녀온 고장처럼 그곳의 전경을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꿈꾸어 오던 그림에 대한 향수 때문이리라.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웃집 동무들과 병풍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자라면서는 미술대학에 진학을 하려고도 했지만 마음 같지 않아서 지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 꿈에도 그리던 몽마르트르 언덕을 찾아 나섰으니 이 얼마나 마음이 설레겠는가. 마치 한평생 대처를 떠돌던 탕자가 부모님이 기다리는 고향을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인클라인을 타고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보니 언덕 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 기다리고 있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숲속의 조그마한 광장에서 화가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언덕 위에는 웅장한 사크레쾨르 성당이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사크레쾨르 성당은 1870년 보불 전쟁 당시 프러시아군이 침공했을 때 주민들이 이곳을 사수하다가 몰살당한 곳에 세운 것이다. 패전으로 인한 절망과 분노에 몸부림치는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심과 사기를 높이기 위해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서 1910년에 건립한 것이다.

따라서, 이 건물은 프랑스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건물 중앙부 상단에는 성모 마리아상을 세우고 그 왼쪽에는 중세 프랑스의 집권적 왕권을 완성하여 위대한 국왕으로 추앙받는 루이 9세의 기마상을, 오른쪽에는 100년 전쟁 말기에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적 소녀 잔 다르크상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 몽마르트르 언덕의 역사도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닌 순교(殉敎)로 시작되었다. 프랑스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272년 프랑스 초대 교주인 생 드니(Saint Denis) 신부가 가톨릭을 전파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자 병사들은 언덕을 오르다가 신부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신부는 잘려버린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언덕에 올라가서 우물물로 얼굴을 씻고는 언덕 너머 6㎞를 걸어가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언덕이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몽마르트르(Montmartre)’란 이름의 기원이 된 것이다.

내가 꿈에도 그리던 화가들의 거리는 몽마르트르 언덕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테르트르 광장(Place de Tertre)이었다. 이 작은 광장은 역사를 살다 간 수많은 미술가의 고향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화가들이 영광된 미래를 꿈꾸면서 나무 아래서 부지런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은 진지했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그림 구경을 하느라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속에서도 그들은 묵묵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온 기념으로 초상화를 한 장 그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리지 못하고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그림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찾았다.

나는 그것이 갖고 싶어서 구레나룻의 작가에게 그림값을 물었더니 40달러를 달라는 것을 졸라서 30달러에 사고 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주인공인 사크레쾨르 성당을 그린 1호짜리 그림, 나는 작은 그림을 마치 내가 그리기라도 한 그림처럼 환호성을 지르면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러자 작가도 신이 났는지 장 콕토의 시 ‘몽마르트르의 축제’를 읊는 게 아닌가. 작가가 ‘몽마르트르의 축제’를 낭송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치 평생 동안 대처를 떠돌던 내가 고향을 찾아와서 어릴 때 동무들과 부르던 옛 노래를 다시 듣는 듯한 기분이어서 마음이 그럴 수 없이 포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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