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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사[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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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13  1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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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현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해부학
 

  태종대 모자상전망대 건립 이전 필자는 수 번 자살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수직에 가까운 아찔한 바위 절벽을 한 참 눈으로 따라 내려가면 파도는 바위에 장렬히 몸을 던지고 하얀 포말로 부서져 사라졌다. 깍아 지른 바위와 파도의 장렬한 소멸에 취해있으면 그 몽환적 분위기에 마치 혼이 구천에 흔들리는 듯 어지러움을 느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기도 하였다.

  한 해 수십 명 까지 몸을 던지자 자살바위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정영숙보살은 자살바위 옆에 한 천막식 암자를 세웠고, 그 암자에서 자살바위 위를 주시하다 사람이 발견되면 다가 갔다. 제 몸 스스로 끊으려던 많은 사람들은 돌아가 다시 삶을 영위하였고 이 암자는 구명사가 되었다. 현재는 전망대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져서 정보살의 후손이 대를 잇고 있다.

  세포도 자살을 한다. 세포의 죽음은 타살이 전부라는 생각이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1972년 일군의 학자들은 세포는 개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자살한다는 이론을 제기하였다. 손가락이 발생할 때 세포 자살은 극적으로 일어난다. 발생의 일정 시점에 이르면 손가락이 될 부분에서는 연골이 형성되는 반면, 연골 사이에 마치 물갈퀴처럼 자리하고 있던 손가락 사이 세포들은 자살기작을 작동하여 죽어버린다. 또 다른 극적인 예는 면역세포의 발생과정 중 일어난다. 면역 세포 중 자기 몸을 공격할 수 있는 면역세포는 발생의 어느 시기에 모두 사라져 버린다. 출생 후 면역세포는 남의 콩팥을 이식받으면 공격하고 거부하지만 자신의 콩팥은 전혀 거부하지 않는데, 이유는 그런 세포는 발생 시에 이미 자살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세포는 스스로 자살할 수 있는 기작을 가지고 있으며 필요 시에 자살기작을 작동시켜 스스로 능동적으로 죽기 때문에 개체는 생명을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발생 중의 손가락 사이 세포를 모두 타살로 죽여야 한다면 죽는 세포 만큼 타살 도구든 타살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세포는 스스로 사라져야 한다는 신호를 받으면 자살로 사라지니 매우 효율적인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유기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명의 단위인 세포가 자살한다는 개념은 생명과학자들을 열광시켰다. 세포가 죽는 기작에 대한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이런 중에 일군의 과학자들은 색다른 질문을 하였다. 세포는 자살신호가 오면 반드시 자살하고 마는가? 아니면 세포 내부에 자살을 막는 어떤 기작은 작동하지 않는가? 만약 세포가 자살을 막는 기작도 가지고 있다면, 세포의 생사는 세포를 자살로 이끌고 가는 기작과 자살을 막으려는 기작이 상호작용 하여 어느 경우에서는 죽고 어느 경우에서는 살 것이다.

  세포사 연구자들은 이에 대하여도 답을 내놓았다. 세포가 죽어야 될 상황이면 미토콘드리아 내 존재하는 시토크롬 c 분자가 고유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미토콘드리아 밖 세포질로 나간다. 이는 자살하려는 힘이다. 시토크롬c는 세포질에서 케스파제 효소를 활성화시켜 세포핵 내 DNA를 조각내고 여러 단백들을 파괴하여 궁극적으로 세포는 죽고 만다. 그런데 자살하려는 세포를 말리려는 기작도 미토콘드리아 내에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토콘드리아에 존재하는 bcl-2 단백들은 시토크롬 c 분자가 미토콘드리아를 떠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추가로 세포 내에는 케스파제의 활성을 막는 IAP 분자와 같은 세포사 예방인자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속속 밝혀졌다. 세포가 자살하려는 장치도 잘 갖추고 있지만 죽으려는 세포를 죽지 않고 살리려는 장치도 잘 갖추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 몸은 세포를 자살로 이끌어 가는 존재와 자살을 막으려는 존재들의 힘의 균형에 의하여 항상성이 유지된다. 자살바위 위에서 딛고 있던 발을 떼어내어 몸을 던지려는 존재가 시토크롬c와 케스파제라면, bcl-2분자나 IAP분자들은 구명사 정영숙보살 처럼 이를 막는 존재인 셈이다.

  세포의 생사는 자체로 놀라운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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