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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만났다[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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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06  14: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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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창미
 가방 디자이너

보스톤에 사는 J는 보그사의 닛트강사과정을 이수하기위해 한국에 유학왔다.

몇 개월 뒤 과정이 끝나면 보스톤으로 돌아가 공방을 열어 인생 후반을 계획하고 있고, 그 전에 옷 만들기를 배워두고 싶어서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훨씬 일찍 시작되었던 것 같다.

9살 때 보스톤으로 이민을 간 J는 핸드메이드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사는 지역의 핸드메이드 샵(실이나 천등의 재료를 팔기도 하고 워크샵을 하기도 하는 곳이 있단다)을 다녔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재봉틀을 가르쳐 준 미국인 디자이너 겸 강사가 자신에게 내 책 ‘story bag’을 사 주었고, 나중에 ‘바느질 사계’를 구입해서 늘 가까이 두고 봐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에서도, 그리고 한국에 나와서도 저자를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한국의 웹이 낯설고, 부끄럽기도 해서 적극적으로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옷 만들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내 홈페이지를 찾게 되었단다. 전화로 영어 억양이 섞인 말투에 정중하게 자신의 미국식 이름을 소개하며 한국에 뭘 배우러 와있다면서 수업을 문의했는데, 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내 개인 작업시간에 함께 하기로 했고 J는 그 때서야 내가 자기가 찾고 싶어하던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이 모든 이야기가 내게는 너무 드라마틱하고 그래서 왠지 좀 꿈같다고 했더니, J는 자신은 오죽하겠냐 한다. 무척이나 예민해보이고 수줍음이 많은 J는 사람들은 자신이 오직 뜨게질을 배우러 한국에서 긴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단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고는 있다지만 젊지않은 나이에 낯설고 각박한 서울 땅에서의 유학생활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까 생각하면 안스럽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던 와중에 나를 찾게 되어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안온감을 느낀다니 다행이다. 며칠 전에는 수업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작업실 외관 사진을 찍어 자신에게 책을 사준 강사에게 사진과 함께 나를 찾았고, 선생님이 작업하는 시간에 옆에서 배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보스톤의 그 샵에 오는 핸드메이드 작가들이 내 책을 좋아하고 구입해서 본단다. 나는 촌스럽게 “한인들이냐”며 자꾸 물었고, J는 아니라며, 그들이 한국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에서 구입한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일본 실용서를 사보면서 감탄하고 동경해왔는데, 바다 건너에 내 책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있다니 잘 믿겨지지 않는다.

그 때 전화로 수업을 문의했던 J를 왠지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더라면 이런 놀라운 소식을 알지도 못했겠지. 그녀가 보스톤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녀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 공간이 되어주고싶다.

며칠 전에는 S에게서 연락이 와서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약속한 식당에 앉자마자 S는 쌓였던 이야기를 봇물 터지듯이 털어놓는다. 초급에서 배웠던 원피스를 응용해서 만든 옷들을 친구들이 너무너무 좋아해서 주문이 쇄도하는데, 벌써 수업료를 만회했다며, 옷 만들기가 너무 좋다며, 요리를 좋아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1년 내 친구들과 함께 경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나와 좀 더 공부를 해서 20년 전 쯤 꿈꾸었던 디자이너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단다. 내 수업에서 배운 옷들이 아니었더라면, 이 정도로 옷 만들기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지 않았을 거라며...

나는 생의, 운명의 씨실과 날실을 믿는다.

S가 바느질솜씨가 출중한 어머니를 보면서 자란 시간과, 양재학원을 등록할 돈을 마련하려고 취직했던 회사와, 그녀가 연희동에서 레스토랑을 차린 것과, 같은 건물에 있는 L이 그녀에게 나를 소개해준 것과, 나를 만나 함께 한 시간들의 씨실과 날실 사이에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는 지점이 있다.

새로운 꿈을 꾸는 그녀의 이야기에 온몸이 짜릿해지며 누군가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한 나의 삶이 제법 괜찮게 느껴진다. 그녀가 꼭 꿈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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