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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둘러 말하기, 콕 집어 말하기[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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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7.03  14: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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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숙
 프랑스 뚜르대학
 불문학 박사․수필가
 

옛날에는 어떤 일을 끝내고 마지막 잔금을 치룰 때에 알아서 계산을 해 달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일종의 팁을 더 달라는 뜻이었다. 일의 성격에 따라 각각 몇 프로의 팁이 정해져 있는 팁 문화가 정착된 나라가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이 ‘알아서 주세요’, 또는 ‘알아서 해 주세요 “ 라는 표현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물론 서로 간에 잘 알고 있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반대로 자신의 무지를 감추면서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 위한 애매모호한 표현법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기대하면서도 겉으로는 ‘괜찮다’라는 어른들의 표현법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의 그 괜찮다는 표현은 알아서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섭섭하다는 뜻임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내가 괜찮다는데 그대로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친구의 단점을 고쳐주고 싶거나 상처를 위로해 주고 싶을 때, 환자에게 용기를 주고 싶을 때처럼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에둘러 말하는 표현법이 때로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거나 다른 목적으로 쓰일 경우는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 싶고, 판단착오를 일으키기 쉽다. 더 심각하게는 대충 대충 넘어가자는 식으로 악용되는 일도 있어서 비리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에둘러 말해야 하는, 이 피곤한 ‘밀당’은 어쩌면 체면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인들만의 불편함인지도 모르겠다. 반면 콕 집어 말하기는 한국의 유교적 정서상 너무 정이 없어 보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속마음이 무엇일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이 또한 다른 방식의 배려일 수 도 있다. 몇 년 전에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옆 침대의 환자분은 그런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직업적인 간병인보다는 가족이 병실에 붙어 있어야 화목한 가정으로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그 분은 직장을 다니는 며느리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적절한 배려를 했는데, 바로 에둘러 말하지 않고 콕 집어 부탁하는 일이었다. 퇴근하면서 면회를 올 때에 과일 한 두 개를 사 가지고 와 달라는 식이었다. 일부러 부탁거리를 만들어서 간병을 못하는 미안함을 없애게 해 주는 배려였다. 괜찮으니 면회 올 필요 없다는 표현보다 훨씬 나은 방법이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괜찮다는 표현보다 콕 집어 부탁하는 일이 오히려 편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지혜임을 그 분에게서 배웠다.

에둘러 말하기가 깊은 울림을 갖게 되는 경우를 어떤 분의 글을 통해서 보았다. 글을 쓴 분이 아버님을 모시고 아들과 함께 목욕을 갔는데, 목욕 중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미래의 계획에 대해서 묻자 20대 손자는 출세와 권력에 대한 꿈을 펼쳐보였다.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 사람은 밥을 하루에 세 끼 밖에 못 먹는다. 누구나. “ 라는 것이었다. 손자는 당장은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깊은 뜻을 새록 새록 새기게 될것이다.

사실 에둘러 말하기와 콕 집어 말하기 중 어느 표현법이 옳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상황에 따라 두 표현법이 모두 필요하다. 정치인에게 있어 말보다 실천이 더 중요한 덕목이기는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은 아무래도 말하는 능력으로 판단되어지는 편이다. 답답한 상황을 콕 집어 원인을 분석해주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주는 전문가로서의 정치인, 촌철살인의 위력까지는 아니더라도 함축적 의미를 담은 에둘러 말하기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사안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정치인이 아쉬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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