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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지의 기업 배출한 동천, 철저한 복원 통해 창업의 명소돼야”[동천에 새 생명을] - (19) 근현대사 창업의 터전 동천
김효진 기자  |  khj@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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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4  20: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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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된 역사를 살아온 동천이 최하류에서 북항과 맞닿는 모습.

동천에 새 생명을 19 - 근현대사 창업의 터전 동천
“굴지의 기업 배출한 동천, 철저한 복원 통해 창업의 명소돼야”
창업 인프라·성공 노하우, 다양한 경험으로 획득
200억원 들여 수질개선 등 동천 복원 공사 진행


세계적인 명품 공원을 만들기 위해서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라는 5개의 활동주제로 조성한 부산시민공원은 동천의 5개 지천 가운데 부전천과 전포천을 공원 내에 가지고 있다. 동천의 발원지는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백양산의 선암사 뒤쪽을 시작으로 하여 대부분이 복개된 채로 서면 광무교까지 흐르다 이후부터는 미복개 구간으로 그나마 갑갑함을 덜고서 북항의 바다로 흐른다. 복개구간의 지하는 일명 지하박스라 불리는 콘크리트로 이루어졌으며 지상의 대부분은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광범위로 부전동, 부암동, 범전동, 범천동은 물론이고 가야동, 당감동, 연지동, 초읍동, 양정동, 전포동 등을 서면이라 할 수 있다. 거리 간격을 두면서 당감천, 부전천, 가야천 그리고 전포천이 서면 도심을 관통해서 동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따라서 이런 동천에게 우리나라 근·현대 산업경제발전 과정에서 펼쳐진 지대한 역할과 공헌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의 자취와 흔적들만 있지 실지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그러한 발자취를 살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그 당시에 동천 일대에서의 기업 창업 붐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크게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동천의 미복개 약 2.6㎞ 구간과 복개 약 8㎞ 구간을 이어주는 광무교는 올해로부터 101년 전에 개통된 노면전차가 처음으로 지나다닌 곳이며 1935년에는 동해남부선이 개통되면서 철교가 옆에 나란히 놓인 곳이다. 풍부한 물이 흘러내렸던 광무교를 중심으로 동천은 기업창업의 원동력이 되는 터가 되면서 동천 주변으로 펼쳐진 창업 신화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시작지가 된 곳이다.

   
▲ 전포천 옆 송상현 광장 내 창업카페들이 있는 지하 선큰(sunken)광장.

1930년대 초에 보생고무주식회사가 지금의 서면엑센시티 자리에서 시작하여 타이어표 검정고무신을 생산하였으며 1962년에는 보생철교라 불리는 동해남부선 서면철교를 놓아서 지역에 기증했다. 1934년에는 부산방직의 전신인 제국제마란 이름의 직포공장이 창업했었고 1945년에는 남선도료상회로 창업해서 제비표 페인트와 문화연필로 유명했던 건설화학, 그리고 1947년 조광페인트공업사로 창업한 조광페인트가 동천변에 있었다. 락희화학공업사는 1947년에 창업해서 동동구리무와 럭키치약으로 유명하였으며 락희와 럭키화학을 거쳐 LG화학으로 발전하여 우리나라 화학공업의 기초와 토대를 세워 오늘날 세계일류 화학기업인 LG그룹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 곳도 동천이며 부산이다. 1949년에 송월타올공업사로 창업해 타올의 왕자가 된 송월타올이 있었고, 국제그룹의 토대가 된 국제고무공업사가 1949년에 창업하여 왕자표신발을 생산하면서 진양고무, 진양화학으로 불리어 세계 최대 규모의 신발회사로 명성을 날렸었다. 오늘날 서면지역의 큰 숙제로 남은 부산철도차량 정비창의 전신인 부산공작창도 1949년에 들어섰으며, 1953년에 고무공업주식회사로 창업한 동양고무가 기차표고무신, 르까프로 이름을 날리면서 지금의 대기업인 화승그룹이 탄생되게 했다. 1954년에는 ‘당신의 비누 다이얼’이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했던 동산유지가 동산유지공업주식회사로 창업하였으며, 1956년에는 지금의 대상그룹 전신인 동아화성공업이 창업되어 미원이라는 조미료와 함께 임금님표 순창 찹쌀고추장으로 유명했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유명한 광고카피를 남긴 금성사는 1958년에 창업하면서 지금의 LG전자로 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1959년에 동성화학공업사로 창업해서 신발용 접착제 생산으로 유명했던 동성화학도 동천에 있었다.

지금의 서면문화로가 원래는 문화와 예술, 물이라는 배경주제로 부전천 복원을 실시했었는데 사업과정에서 너무나 엉뚱한 형태로 부전천이 되어버렸다. 이곳에 작은 황령산 봉수대, 서면로타리 부산탑 등과 같은 조형물들을 배치하고 2013년부터는 매일 상수도 물을 흘려보내는 작은 실개천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일대에 1968년에 개점한 부산의 향토서점인 영광도서와 옛날 타작마당 장소에 소민아트센터가 있다.
 

   
▲ 신진자동차(옛 대우자동차의 전신)의 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모습.

1937년에 5개의 방사형 도로로 만들어진 서면교차로는 부산의 동서남북을 가르는 지하철이 1985년에 1호선 개통, 1999년에 2호선이 개통되었다. 서면 지하철역 주변으로 서면시장, 대현지하상가, 롯데지하상가 등이 있으며, 부산시립병원(제 15육군병원)과도 관련이 있는 서면에 170여 개의 의료기관이 운집해서 이루어진 서면메디칼스트리트가 조성되어 있으며 한국전쟁시기에 활동한 스웨덴의 야전병원을 기억하기 위해서 1958년에 세워진 한국-스웨덴 우정의 기념비도 있다. 1968년부터 서면이 유흥가로 발전하기 시작하며 주변 일대에는 화재사건으로 유명했던 대아호텔, 약속장소로 유명한 천우장, 그리고 추억의 이름인 문화관광호텔, 나이트클럽 백악관 등이 생겨났다. 얼마 전에 베어버린 그 아름드리 버드나무 한 그루에서 동천의 광무교 주변이 옛날에는 버드나무길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쉬움을 갖고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광무교의 벽천폭포는 부산시가 동천의 수질개선을 위해 2010년부터 해수도수를 개통하여 하루 5만t의 바닷물을 흘려보내는 곳이다. 부산시는 더 많은 용존산소량을 늘리기 위해서 내년부터 20만t의 바닷물을 더 흘려보내기 위해 더 큰 해수도수 설치 공사를 실시할 것이다. 이와 함께 동천 수질개선 명목으로 약 200억원의 공사가 준비 중에 있다. 또한 2020년까지 동천의 수질을 양호하게 하기 위해서 분류식하수관거 공사도 앞당겨 설치 진행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개선공사 후의 관리에 대해서는 계획이 보이지 않으며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복원될 동천의 지천들과 연계된 수질개선 방안과 도시계획은 더더욱 안 보이며 문화와 관광에 대한 배려는 완전 없다.

동천의 광무교 주변에는 대형서점인 교보문고 이외에 삼성생명, 알리안츠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등의 금융회사들이 즐비해 있지만 지금의 센트럴스타가 위치한 터에서는 1953년에 오늘날의 CJ그룹 전신이자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는 제일제당이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를 창업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생산 공장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동천에는 1889년에 부산객주상법 회사(객주조합)로 설립해서 오늘날의 부산지역 경제인들의 모임 단체인 부산상공회의소가 있으며 상공회의소 안에는 2007년에 항공사로 창업한 에어부산㈜이 있다. 부·울·경 유일 경제신문인 ‘일간리더스경제신문사’도 2015년에 동천으로 이사 왔다. 1925년에 동명제재소로 창업하여 세계 최대규모의 합판기업이었던 동명목재 본사도 있었으며, 1916년 성창상점으로 창업해서 성창합판이라는 목재판매로 유명한 성창기업은 현존하는 부산기업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흥아고무공업㈜도 1942년에 창업하여 우성그룹에서 넥센타이어㈜로 이어져 오늘날의 넥센그룹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회사로 1955년에 신진공업사가 창업되어 최초의 국산 승용차 ‘신성호’를 제작해 시발자동차를 생산하면서 신진자동차에서 대우자동차와 지엠대우를 거치면서 한국지엠(쉐보레)으로 이어져 한때는 부산에서 출범한 국내 자동차 1번지라 하여 대우그룹의 대우자동차 부산공장이라는 간판도 달았던 곳이 동천유역이었다. 1964년에는 한일합성 섬유공업주식회사를 창업하여 한일합성과 대경직물을 통합해서 이루어진 경남모직이 있었고, 1976년에는 슈퍼카미트로 유명한 신발업체인 대양고무도 창업했었다. 부산의 전기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전력공사 부산울산지역 본부 및 부산의 도시전철을 책임지고 있는 부산교통공사도 동천변에 있다.

동천 옆의 문현혁신지구에는 동남경제권의 금융중심지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시설인 63층짜리의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있으며, 1909년에 대한제국의 한국은행 조례에 의해 설립되었던 국책은행인 조선은행에서 1910년 조선은행 부산지점으로 개설한 뒤, 1950년에 한국은행 설립과 함께 부산지점도 개점되어 한국전쟁 때는 두 번에 걸쳐서 한국은행 본부를 수용하여 두 번에 걸쳐서 화폐개혁을 모두 시행했었던 한국은행 부산지점과 1967년에 영업을 개시한 부산은행 본점이 새 사옥을 지어서 2014년에 동천 가까이에 이사를 왔다. 1989년에는 부산 범일동에 본점을 개설해 전국적 영업망을 가졌었던 동남은행도 지방2급 하천인 동천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동천에는 1968년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형건물 옥상에다 마을을 조성한 중앙시장의 옥상마을이 유명하다. 1960년에 개장한 자유시장과 1969년 신축한 평화도매시장, 1970년에 완공한 부산진시장도 동천 부근에 있다. 1917년에 조선 최초의 근대적 면방직 공장인 조선방직주식회사가 창업되어 공장부지가 4만평이나 되는 동양 최대 규모의 면방직 회사로 3000명의 종업원들이 자주 노동쟁의를 일으킨 조방도 동천변에 있었다. 오늘날의 조방이라는 말은 조선방직의 줄임말이다.

지금의 조방 앞이라면 자유시장, 평화시장, 골드테마스트리트, 예식장거리, 현대백화점 일대를 이야기하며 먹거리로 조방낙지가 유명하다. 1930년대 초에 창업한 대선양조는 향토기업인 대선주조의 전신이며 지금의 BN그룹이다. 1934년에 삼화고무주식회사가 창업되어 범표 검정고무신, 타이거 운동화 등으로 유명한 삼화고무가 있었다. 부산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대승한 곳으로 추정되는 동천 하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완공되었던 자성대 부두가 있으며 미군 군수물자를 보관하는 55보급창도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외국과의 교류를 도맡아서 현관문 역할을 했던 동천은 일제강점기에는 유명한 물류수송지였으며, 한국전쟁시기에는 창업 붐의 터가 됐다. 근대산업 시기에는 동천을 중심으로 해서 부산상고와 경남공고 등의 상업학교와 공업학교들이 많이 생겨나 지역의 인재 육성에도 기여했었다.

이처럼 동천은 기업창업의 인프라 구축 사례와 성공의 노하우를 체험과 경험으로 지니고 있다. 지금 동천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고 나아갈 우리 청년들에게 세계적인 기업창업의 명소로 제공돼 새롭게 시작시켜주는 출발지로 되어 있다.

   
▲ 이용희
   숨쉬는 동천 대표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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