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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의 노잣돈[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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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24  14: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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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향미
 화가
 

옛날부터 우리에게는 노잣돈이란 것이 있다.
먼 길 떠나는 이를 위하여 사랑하는 어머니나 아내는 꼭꼭 싸놓은 쌈지 돈을 개나리 봇짐에 살포시 건네주었다. 보내는 걱정과 슬픔의 마음을 노잣돈에 담아 달래는 것이다. 이는 여행자로 하여금 배고픔을 달래는 밥값이 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일에 비상금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든든한 위로가 되어 마음을 보태는 힘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잣돈은 고마움이 담긴 자그만 선물로 빈 봇짐을 채우게 된다. 선인들의 지혜로운 마음이다.

노잣돈은 고대 전사들의 장례식에서 죽은 자에게 또한 주어졌다. 산자들은 금화 두 닢의 노잣돈을 죽은 이의 눈 위에 올려주었다. 노잣돈은 저승길로 떠나는 편안한 여행길을 기원하면서 산자들의 마음과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염원이 되었던 것이다. 죽은 이에게는 무용지물인 금화가 산자들로 하여금 유용성의 의미를 갖게 한 셈이다. 그것을 바치는 이들에게는 물질적인 대가나 경제가치의 유용함을 잃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노잣돈 속에는 주는 이들의 희망과 사랑이 어우러져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기분 좋게 노잣돈을 쥐어주기도 한다. 경제적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도 아직 존재하는 우리의 문화 풍습이다. 이러한 우리의 풍습 속에서 오늘날 사회가 필요한 문화비용의 확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의식주의 해결의 단계에서 생활 이상을 실현하는 문화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대인들은 쏟아지는 정보와 복잡 다양한 소통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사회체계는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기대를 갖는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과 행복에 대하여서도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문화생활이 기회비용이 되고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세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문화에 지불되는 비용은 마치 노잣돈과 같이 실질적인 대가로 돌아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잣돈은 떠나는 이에게 보내는 그리움의 마음이며, 여행자들이 더욱 편안하고 즐겁기를 바라는 염원이 되기도 하며, 죽은 이들에게 보내는 애도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의 표현은 마음 속 깊이 노잣돈의 경제적 가치보다는 더 큰 위로와 사랑으로써 우리에게 보답된다는 것을 안다.

문화 또한, 노잣돈과 같은 가치를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다. 문화란 곧 사회나 개인의 내면세계가 현실의 세계를 한 부분씩 아름답게 칠해나가는 활동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의 문화비용은 사회나 개인이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 스스로에게 기꺼이 내어 주게 되는 여행길의 노잣돈이 된 것이다.

여행길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것은 이루어야 할 이상과 목적의 달성 자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루어야할 더 아름다운 세상의 비전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노잣돈은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가치를 이루는데 써야 한다. 그러한 문화가치의 힘이야 말로 김구 선생님의 말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나선 여행길에서 우리는 빈 봇짐 속에 건네준 이들의 온기를 기억하며 선물을 갖고 돌아와야만 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비전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겨봄직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이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을 갖는 것뿐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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