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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이 들었다는 증거[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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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22  13: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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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진
 불문학 박사 부산대 강사
 

이유 없이 눈이 시리거나, 먹어야 할 약의 투약 방법이 도대체 보이지 않을 때 나이를 새삼 헤아린다. 결혼식장만큼이나 장례식장에 조문 갈 일이 부쩍 많아지는 걸 느끼며 새삼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 때, 육체를 뒤따라 시작되고 있는 의식의 노화를 깨닫는다. 며칠 전이다. 학교 버스 안에서 우연히 엿듣게 된 대화는 말 그대로 “요즘 애들”과 나와의 거리를 3D로 선명하게 보게 해주었다. 1, 2학년쯤 되었을까. 함께 갔었던 식당에 대한 평가를 이어가는가 싶더니만 난데없이 서로에게 “니가 더 처먹었잖아”, “니도 졸라 처먹더만”이라고 말한다. 전후 대화 내용을 봤을 때 분명 사귀는 사이가 맞는데 서로에게 ‘니가 더 먹었잖아’, ‘니도 많이 먹었으면서’라는 말 대신 서로를 향해 ‘처먹다’라는 동사를 쓰고 있었다. 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한 건가? 그런데 얼굴 표정이나 말투가 화가 난 게 아니다. 하루 종일 두 친구의 대화 내용이 머리 속을 맴돌아 동사의 뜻을 찾아보았다. ‘언어를 공부하다보니 내가 좀 예민한 건가’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욕심 사납게 마구 먹다’, ‘먹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분명 속어가 맞다. 대화중에 수시로 튀어나온 “졸라”는 또 어떠한가? ‘정말로’, ‘진짜로’라는 의미로 툭 하면 앞에 붙여대는 이 강조의 비속어는 들을 때마다 거북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랑스 소설가 졸라(Zola)의 이름이 상스럽게 불리는 것 같아서다. 내 귀에 바늘처럼 탁탁 꽂히는 표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언짢아지는 걸 보면 분명 나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언어사회학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세대별로, 계층별로 자신의 생각과 감성에 맞는 표현이 있는 법이다. 여기서 언어순화의 필요성을 역설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근본으로 돌아가 이러한 언어사용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위의 예처럼 오늘날 젊은 세대의 말은 광범위하게 비속어로 오염되고 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옮기기조차 저어한 ‘센’ 표현들을 일상적으로 쓰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언어의 규칙을 보란 듯이 깨부수고, ‘세게’ 말함으로써 그들은 세지고 싶어 한다. 엄밀히 말하면 세지는 것이 아니라 세게 보이고 싶어 한다. ‘세게’ 말하는 순간만큼은 적어도 자신이 세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센’ 말이 힘이 되기도 한다. 일상의 크고 작은 충돌 속에서 다짜고짜 ‘센’ 말로 상대방에게 겁을 주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차분히 경청하고 표현하기 보다는 일단 목소리부터 높이고, 최대한 저속한 표현으로 상대방의 소통 의지를 단숨에 꺾어버리는 그들의 말은 분명 강력한 무기다.

주체 못할 젊음 이외에는 가진 게 없는, 무엇 하나 얻기가 쉽지 않은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말뿐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뜻을 세울 시간도, 고민할 여유도, 실패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지지 못한 채, 어딘가 좁은 문으로 내몰리며 이리저리 밟히고 짓눌린 그들 마음 안에 쌓인 울분과 좌절, 절망이 밑도 끝도 없는 ‘센’ 말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듣기에 불편한 ‘센’ 그들의 말을 도대체 알 수 없는 “요즘 애들”의 특성으로 몰아가기 이전에 그 거친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아픔과 슬픔을 헤아리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싶다. 일단 대학만 나오면 그래도 어쨌든 제 자리는 찾아낼 수 있었던 우리 세대가 대4병이 고3병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유난 떨지 마라. 우리 때도 힘들었다”라고 말해버린다면 그것은 분명 나이가 든 것이다. 과연 고통이라는 것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 세상에 있던가! 세월이 담기어 넉넉해진 그릇으로 그들을 바라봐 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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