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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서 부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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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9  14:3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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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길녀 (시인)
 

오랜만에 먼 나라에서 안부를 전합니다. 이곳은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에 위치한 적도의 나라입니다. 1만 7천 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의 나라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고 있는 곳이지요. 인구는 2억 4천만 명이 넘어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이고 우리 동포도 5만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멀어서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나라, 섬이 많은 나라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모르는 게 더 많았던 나라인데 올해로 한국과 수교 41주년이 되었습니다. 긴 휴가를 받아 거처를 정한 곳은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입니다. 서울보다 4배쯤 넓어 보이는 빌딩숲의 자카르타 시내를 벗어나면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지천이지요.

쟈바섬 서부의 자카르타 술탄에 정박한 지 일 년이 지나고 다시, 유월입니다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 온통 낯선 풍경만이 즐비했던 곳입니다. 유일하게 낯설지 않은 내 남자와 백일기념으로 처음 다녀왔던 순다 끌라빠(Sunda Kelapa)항을 다녀왔습니다. 처소인 술탄에서 40분 거리에 위치한 항구입니다. 바다의 본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나라의 바다는 한 마디로 거대합니다. 이곳은 해양문학을 알게 되면서 바다에 미쳐 있던 제가 늘 바다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매혹적인 말에 선뜻 택하게 된 휴가지랍니다. 순다 끌라빠항구는 5세기에 다르마네가라왕국이 붕괴 되면서 순다왕국이 끌라빠항구를 순다 끌라빠로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빠자자란왕국이라고도 부르고요. 순다 끌라빠항은 서부 쟈바 순다힌두왕국의 중요한 항구로서, 자카르타의 출발점인 찔리웅(Ciliwung)강 어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2세기부터 중국, 일본, 인도, 중동 사람들이 비단, 도자기, 천, 말, 향유, 향료 등의 무역을 위해 순다 끌라빠항을 찾으며 무역상들의 거래가 활발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16세기 빠자자란왕국은 후추, 쌀, 농산물, 금, 가축 등을 순다 끌라빠항을 통해 수출했습니다. 17~18세기 유럽과의 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18세기 중반에는 미국과 직접 교역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 순다 끌라빠 지역에는 전염병이 만연했고,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면서 늘어나는 운수량을 모두 감당하기 힘들어졌지요. 순다 끌라빠의 동쪽 8km 지점에 큰 상선과 객선을 위한 새 항구 딴중 쁘리옥이 건설되었답니다.

딴중 쁘리옥이 현대판 물류 항구라면, 순다 끌라빠항은 아직도 옛 항구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지요. 화려하게 색칠해져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거대한 목선들은 이방인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이 목선들은 길게는 100년 전, 짧게는 30년 전에 만들어졌고, 섬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사용하던 디자인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개 이상의 마스터를 가진 세로로 된 돛을 단 범선에 모터가 부착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항해자들은 수 세기 전과 같은 무역로를 이용하고 별을 보며 항해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과거를 보는 듯 한 느낌의 모습은 이 나라 곳곳에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놀랐던 것도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듯 한 풍경이었지요. 초고층의 빌딩이 즐비한 자카르타 시내를 30분만 벗어나면 슬레이트와 양철, 대나무 지붕의 허름한 집 마당에서 맨발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방목된 채 살고 있는 닭과 오리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범선은 술라웨시의 부기스 종족(Suku Bugis)이 만들고 배 이름은 삐니시(Pinisi)라고 부른답니다. 범선 길이는 28~30m, 높이는 배 밑 3~8m로 600~1,500톤의 물건을 실을 수 있습니다. 이 배들은 주로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에서 목재나 천연원료를 실어 가져오고 시멘트, 쌀, 밀가루 등의 생필품을 싣고 다시 섬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도 시멘트를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이 나랏돈 5만 루피아(우리 돈 5천 원 정도)를 내고 두 사람이 탈 수 있는 쪽배를 타고 1시간 정도 내항을 둘러보았습니다. 방파제에는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정박해 있는 목선들의 반대편 쪽에서는 낡은 고깃배와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낡은 뱃전에서 놀고 있는 모습도 보였고요. 이곳에서도 바닷사람들의 삶의 빛깔은 찢겨진 그물코처럼 헐겁게 느껴졌습니다. 어부들이 살고 있는 집의 풍경은 그들의 삶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노랑과 연두빛이 어우러져 아이들의 웃음처럼 상큼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목판 갱웨이를 오르내리는 항만 노동자들의 어깨에 실린 짐은 삶의 무게처럼 무거워 보입니다. 목선을 수리하거나 화물을 정리하는 선원들은 다시 시작될 긴 항해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입니다.

1527년 6월 22일 인도네시아의 수도 이름이 자야자카르타로 바뀌기 전까지 순다 끌라빠는 이 나라의 수도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자카르타 관문이 되기도 하는 순다 끌라빠항구, 그 화려했던 역사의 흔적은 오래된 목선에 소금꽃 문신으로 새겨져 이방인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바탕의 스콜을 만났습니다.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며 열대 나라인 이곳 사람들의 맑은 눈빛과 여유 있는 웃음의 원천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소낙비가 있어 저들의 모습이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 있겠지요. 슬라맛 소레(Selamat sore), 이것은 이 나라의 오후 인사입니다. 친애하는 당신, 그곳에서는 당신과 함께 오후의 산책을 즐겼었지요. 다시 또 편지 쓸 날을 약속하면서 적도의 분홍빛 석양을 넣어 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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