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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노인이 된다는 것[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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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7  16: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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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숙
 프랑스 뚜르대학
 불문학 박사․수필가
 

내가 가끔 가는 군립 도서관은 노인대학과 같은 건물에 있다. 건물마당 입구에 “어른다운 노인이 됩시다 ” 라는 큰 표지석의 글을 처음 보았을 때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라고 해서 항상 어른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지만, 어른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일까 ?

물론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른의 모습을 경륜을 바탕으로 한 지혜로움과 너그러움에서 찾는다. 그러나 내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는 노인들은 고집스러움과 서러움 사이에서 당혹해하는 모습들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고 허망하다고 하면서도 그 아까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노인들도 많다.

‘늙어가는 남자’는 특히 슬프다고 한다. 사회에서 밀려날 것에 대한 두려움, 조만간 닥칠 건강의 적신호,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죽음 등에 대한 불안으로 생각은 경직되어지고 화석화에 이르게 된다. 고집스런 노인은 어느날 갑자기가 아니고 이렇게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다. 한국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은 대조를 이룬다. 건강문제만 아니라면 할머니들이 대체로 유쾌한 노년을 즐기는 것에 반해 할아버지들은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침울한 편이다. 그런 할아버지들에게 ‘꽃보다 할배’는 로망이지 현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 는 없다. 그들에게는 평생 짊어져야 했던 짐들이 너무 많고 무거워서 휴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어진 휴식은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는 수학문제처럼 난감할 뿐, 보상이나 선물이 아니다.

스마트폰에 의해 일상의 대부분이 해결되는 시대이니 더욱 노인들의 역할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허세와 자조사이를 오가면서 같은 말만 반복하는 노인들은 점점 환영받지 못한다. 노인들 스스로 소외감과 외로움을 자초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대접만 받으려 한다면 대접받지 못할 때의 섭섭함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때로 섭섭함은 분노로 분출되어 우발적인 사회범죄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50대 이후부터 나도 매일 조금씩 늙어간다. 늙어가는 나는 슬프지만, 몸이 늙어가는데 마음만은 젊다면서 떼 쓰듯이 살고 싶지는 않다. 늙어감을 자연의 질서로 받아들인다면 슬픔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김열규 선생은 ‘노년의 즐거움’ 이라는 책에서 노년과 즐거움이라는 단어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음을 조근 조근 풀어주고 있다. 외로움, 그 허허로움을 즐기면서 적극적으로 고독을 이겨내라고 한다. 노년이야말로 비로소 시간부자가 될 수 있는 시기이니, 돌부처처럼 묵묵하고 진중하게 혼자만의 세계를 누리라는 것이다. 가장 으뜸가는 나잇값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람찬 것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내 노년의 삶을 자식들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억울해하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낫다. 시간을 운행하는 주체자로서의 노년의 삶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젊었을때 부터 삶에 대한 태도와 훈련으로 준비해야 한다. 관계의 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이지만, 홀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노력을 하면서, 매 순간 즐거움을 찾는 연습도 미리 미리 해 보려고 한다.

노인학교 앞 표지석의 ‘어른다운 노인이 됩시다’ 라는 표현은 추상적인 희망사항이 아닐 것이다. 젊었을 때처럼 일할 수는 없겠지만, 그 묵묵한 성실함을 잃지 말자는 다짐일 것이고,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노동으로 변화를 주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젊은 세대와 노년의 중간 단계를 살아가는 나는 어른다운 노인의 여유로운 미소를 자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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