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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물길을 따라 세계로 뻗어나가는 부산되길"[동천에 새 생명을] - (10) 부산의 정체성 동천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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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1  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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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희
   숨쉬는 동천 대표
 

- 시富렁 시釜렁 -

재작년 칠월칠석날 동천오작교 세븐데이 축제에서 동천살리기 선언문을 부산시민회관에서 시민들과 함께 우리 숨쉬는 동천(숨동) 회원들이 낭독을 했었다.

동천 살리기 선언 낭독문

멈춰라 동천오염 살려내자 생태하천
지키자 맑은동천 보존하자 우리동천
물고기 뛰어놀고 발담그는 좋은쉼터
부산시민 하나되어 희망동천 지켜내자

작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부산시민공원 내에 있는 부전천에서 출발하여 부산정중앙 표지석을 지나서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된 백양산의 선암사 뒤쪽 300여 미터의 동천 발원지까지 시민들과 숨동 회원들이 답사를 했었다. 이곳 발원지에서 시작한 동천은 부산진구, 서면, 남구, 문현금융단지, 동구, 자성대를 지나 최하류인 북항의 바다까지 오자면 부산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시富(부)렁 시釜(부)렁할 수가 있다.

올 5월에는 문현금융단지 앞에 동천의 인도교인 골든브리지가 설치 완공되면서 범냇골역과 부산국제금융센터(BIFC)를 비롯하여 본점이 부산에 있는 부산은행, 화폐개혁을 실지 주도해봤던 한국은행 부산본부 등으로 드나들기가 용이하게 되었다. 이처럼 동천에서 세계 제일의 금융메카가 생겨나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황령산은 동천의 동쪽 방향에 위치해 있다 할 수 있다. 거칠산 또는 거친산을 중심으로 하여 지금의 동래 칠산동에서부터 동천 상류 감물내가 흐르던 큰 마을인 감물 일대의 대증현(大甑縣)까지 세력을 펼쳤던 거칠산국(居漆山國)이 신라에 정복되면서 속현인 거칠산군으로 바뀌기 전까지의 지역이 바로 거칠 황(荒)자로 쓰는 황령산을 말한다. 따라서 신라 입장에서는 거칠산군이 해상교역의 거점이자 철의 집산지라는 매력과 함께 해산물 및 절영도의 말을 공납하는 신라의 해상 관문이었을 것이다.

부산은 태종실록에서부터 富山浦(부산포)라는 지명의 이름이 보이다가 성종실록에서부터는 釜山(부산)으로의 명칭이 나타난다. 호랑이가 살 정도로 산에 숲이 우거지고 물자도 풍부해 신라의 해상 관문으로 손색이 없었기 때문에 富자를 사용한 富山浦로 불렀지 않았을까? 재미난 것은 부산포진(富山浦鎭)을 1397년(태조 6)에 왜구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 동천 상류에 있던 동평현성으로 이전시켰다는 점이며, 그 후에 동천 하류의 서쪽 방향으로 진을 재 이전하면서부터는 부산포를 釜山浦(부산포)라 하지 않았나 싶다. 부산포가 차츰 넓어지면서 부산에 더 큰 진의 설치가 필요했고 성도 만들 필요가 있게 되면서 釜山鎭(부산진)이 생겼고 진을 방어하기 위한 釜山鎭城(부산진성)도 구축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동천을 사이에 두고 한동안 동에서 서로의 이전과정에 富山과 釜山을 혼용해서 사용하다 결국은 釜山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동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있는 부전동, 부암동, 부곡동 등은 釜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서쪽의 부평동, 부민동, 부용동 등은 富자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 건국의 이전까지 부산포는 동천과 바다를 드나드는 배들의 출입 관문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가며 그 후로 동래부에서는 초읍에서의 초(草)를 동천 건너편인 서쪽의 초량, 초장으로 사용한 것과 같이 釜자도 동천 건너편의 서쪽 전역으로 퍼트려서 釜山으로 불리게끔 하지 않았나 싶다.

동천은 황령산, 백양산, 엄광산에 둘러싸여 있다. 동천을 옛날에는 풍만강 또는 보만강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보만강(寶滿江) 안으로 들어와 백양산 아래 감물내가 흘렀던 삼국시대의 동평현까지 오게 되면 왜구들의 잦은 침범에 대비해 평산성 구조의 동평현성이 조선 초기까지 존속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곽의 일부와 함께 다양한 도자기들이 오늘날 발굴되었다. 조선시대에 동평면의 부(釜)현리는 지금의 부암고개로 고개에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가 마치 가마솥(釜)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부현(가마고개)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 같고 역시 부암동도 같은 맥락에서 붙여진 것 같다. 이러한 재미난 예가 지금의 대상그룹 전신인 미원공장이 1959년에 서면 부암으로 이전하면서 공장 앞에다 큰 석부(石釜)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부산의 중심지인 서면으로 흐르는 동천은 우리나라 근대산업경제발전의 근원지로 수많은 기업들이 창업을 하여 성공을 일구어 내어 오늘날 세계 제일의 대기업들이 되고 유명 기업들이 되었다. 따라서 서면의 동천은 그들 기업의 피와 땀이 맺힌 역사의 터전이자 그들 혼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또한 동명목재나 동남은행 같이 아픔과 아쉬움도 남아 있는 장소이다. 이런 동천에 광무교 또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교통수단들이 지나다닌 곳이다. 동래부에서 출발한 가마행렬에서부터 전차, 기차, 배가 지나다녔다가 지금은 수많은 자동차, 지하철 그리고 KTX가 다니고 있으며 앞으로는 요트, 트램, 드론은 물론이고 헬기까지도 날아다닐 것으로 생각한다.

더샵센트럴스타(삼성그룹의 전신인 옛 제일제당)이 있는 전포(田浦)는 동천이 보만강으로 불리었을 시에는 갯가의 밭인 밭개로 바다의 조수가 들어 배들이 많이 정박했던 곳이다. 범전, 부전이 전포의 전(田)으로 염전을 뜻한다는 설과 1475년에 부산포에 사염장을 설치했던 역사와 함께 그 당시를 상상해 보면 소금생산을 위한 제염장을 설치해서 바닷물을 가마솥(鹽釜)에 부어 끓여서 소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확한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연구해보아야 하겠지만 만약 동천유역에서 제방을 쌓았다면 염전을 위해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해 보면서 지금의 거제리가 왜 제방의 제(堤)인가가 궁금하다.

동천의 하구로 오면 북항과 맞닿는 가까운 곳에 자성대가 있다. 1592년 9월 1일 이순신장군의 조선수군은 초량목을 지나서 부산포 앞바다에서 왜선 100여척을 격침시켰다. 참패한 이들 왜군은 임진왜란에서 첫 공격목표가 부산진성이었으나 전세가 불리하자 동천과 부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증산에다 왜성을 쌓았다.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시루모양의 시루 증(甑)자를 사용한 마을과 성들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정확하게 증산마을, 증산성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 옛날이라 하더라도 이름과 모양에 따른 항아리(缶), 솥(鼎), 시루(甑), 가마(釜)의 쓰임새와 용도를 확실히 구분해서 실생활에 사용했을 것이다. 하물며 세종대왕의 시대를 지나 조선의 문화와 문명이 훨씬 나아진 시대에 산의 이름인 증산을 甑산이라 하지 않고 이름, 모양, 쓰임새가 다른 釜산으로 불렀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釜山의 근원은 이 증산에서가 아니라 부산은 부산 전체가 가마 마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정해 본다. 그래서 그런지 단편적인 예지만 아주 큰 고을이라는 뜻의 당감에 감물내가 있었는데 이 감물의 감이 가마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어원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부산의 큰 특성 중의 하나가 연구 기록들을 별로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부산이 양반사회가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마는 뜨거운 불기가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져야 하며 그 큰 가마는 그 뜨거운 불기를 품고 안에서 새로움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부산 사람들은 뜨겁다. 그리고 부산 사람들은 새로움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동천은 뒤에서 밀어주고 앞을 내어주면서 부산을 위해 베풀면서 늘 흐르고 흐른다. 부산 사람 또한 많은 것을 베풀면서 부산의 사람으로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다. 동천의 부산은 광복의 기쁨과 함께 많은 귀국선들을 부산에 닿게 했으며, 수많은 전쟁의 피난민들과도 삶을 함께 했었다. 그리고 챨스피더슨이 198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면서 자신의 출생지로 우리나라 부산으로 쓰도록 한 곳도 바로 동천의 부산이다.

동천이 만나는 북항의 바다는 우리나라 첫 무역항이자 대형 컨테이너 항 이었다. 지금 이 북항이 대변신을 위한 준비로 바쁘다. 유라시아로의 출발에서부터 한일해저터널, 미래형 고부가가치 해양산업의 발돋움 지역으로까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들 모두가 부산의 동천과 관계있다. 왜냐하면 동천은 경험이 있고 저력이 있으며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천은 맑고 많은 물이 흐르는 건강한 모습으로 꼭 돌아와야만 한다. 부산이 세계 제일의 미항의 도시이자 해양의 도시로, 그리고 산업의 도시로 문화와 관광의 도시로 실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동천이 아주 건강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동천에서 배를 탄 사람들이 동천의 물길을 따라서 부산시민공원을 출발해 부산의 중심지인 서면을 지나 문현금융단지와 북항을 지나 해운대로, 남포동 자갈치시장으로, 다대포로, 낙동강으로 심지어 더 나아가서는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동천의 부산 만들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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