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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의 다른 꽃 칼럼[리더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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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14  14: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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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향미
    화가
 

누구나 예기치 않은 일로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순간순간 위로받고 싶거나, 조금은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하거나, 다른 곳으로 돌아앉아 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다행히 마음 기댈 곳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날 나는 아파트 주변을 오가며 이름 없이 엉클어져있는 풀꽃들을 바라보고 마음을 달래곤 하였다. 걷다보면 꽃이나 풀잎들이 눈에 들어와서 사진을 찍어 두거나 집으로 몇 포기 가져와서 스케치를 하였다. 그해 내내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어느새 그들의 생태와 모습을 그림으로 읽어가고 있었다.

비가 내릴 때면, 젖어있는 길과 풀밭 위에 떨어져 수북이 쌓인 잎들은 마치 푸른 풀 속의 푸른 꽃들처럼 보였다. 이파리가 꽃이 된 듯 풀밭은 젖어서 드러누워 있는 이파리들을 하나 가득 꽃처럼 품고 있었다. 피어있는 꽃과 이파리는 화가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그들에게 어울리는 선과 붓질을 고민하기도 하였다. 이름 없이 널브러져있는 이파리들을 살펴보기 시작하면서 그것들은 점점 이름이 있는 풀꽃들로 되살아났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우리 곁을 지켜왔는지 이야기하였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풀꽃들은 나의 붓질을 빌어 마침내 나의 세계로 들어왔다. 그 후 풀꽃들은 나의 손길과 마음을 거쳐서 그림이나 카드로 남게 되었으며 다른 이들이 각자의 마음으로 만지고 아껴주는 다른 꽃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만의 풀꽃을 피울 수 있도록 꽃을 그리기 원하면서 나와 함께하는 만남이 시작되기도 하였다.

여러 점의 ‘해바라기’ 연작을 통하여 ‘태양의 화가’ 라는 별명을 얻은 반 고흐는 대담하고 힘이 넘치는 붓질로 자기 내면의 뜨거운 열정을 표현하였다. 고흐는 아모리 쇼(1913)에서 호평과 악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해바라기’ 작품을 통하여 널리 알려졌다. “이것은 환한 바탕으로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스스로 예견하였듯이 그에게서 노란 해바라기는 기쁨과 설렘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었으며, ‘영혼의 꽃’이라고 불려진다.

커다란 해바라기는 고흐 특유의 임패스토(Impasto) 기법을 시도하기에 적당한 생김새의 꽃모양과 느낌을 가졌으며, 그의 예술세계에 있어서 창작적인 표현 방법과 내면의 소리를 보여주는 통로가 된 것이다.

한편 ‘설악산의 사계’로 유명한 김종학씨의 해바라기는 고흐의 열정적이고 선구적인 화풍과는 달라 보인다. 단아한 원색의 파란 바탕은 한여름 그리운 산천에 울려 퍼지는 매미 울음소리와 하늘이 되었으며, 그 가운데 뙤약볕에 눈부신 해바라기가 그려져 있다. 우리의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의 해바라기 또한 물감 덩어리의 붓질이지만, 단정하고 규칙적으로 돌려 그려진 꽃은 격정적으로 흐드러진 고흐의 꽃과는 다르다. 우리의 목기와 보자기, 민예품 수집을 하면서 통인가게를 수없이 드나들었던 그의 삶은 ‘설악산의 사계풍경’ 속에서 자수를 놓은 듯 민족 전통의 색감과 패턴으로 화면에 녹아있다. 그는 “꽃이 좋아 그렸노라”라고 말하듯 작품 속에서 우리 산천과 더불어 꽃처럼 지내고자 ‘마음으로 담아낸 깊은 꽃’을 표현하였다.

꽃들은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라고 손짓한다. 나만의 의미 있는 표현은 예술가들만의 몫은 아니다. 그 꽃이 나의 꽃이 되기 위해서 그에게 알맞은 ’빛깔과 향기’를 담은 이름을 내가 불러주어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자기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러야한다.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그림은 모사가 아니라 표현으로서 어떤 대상을 더 많이 존재하게 해준다.”라고 말한다. 수많은 이들의 수많은 꽃들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 속에서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하는 대상이 되며, 같은 이름의 꽃이지만 자기만의 다른 꽃으로 누구누구의 꽃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름 부르기는 정작 꽃을 부르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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