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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슬람의학입니다[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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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02  19: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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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현
 동아대 의과대학 교수
 해부학
 

  저는 이슬람의학입니다.

  이슬람역사는 서방과의 대결의 역사라고 합니다. 6세기경 형성된 이래 이슬람 문명이 서양문명과 충돌한 것은 알려진 대로 사실입니다. 하지만 충돌은 교류를 가져왔습니다. 이스람 문명권이 그리스-로마문명을 수입하며 그리스-로마 의학도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로 제가 탄생하였습니다. 저는 그리스-로마 의학의 권위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보존을 넘어 나름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발달하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시 서양으로 건너가 서양의학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서양의학에 새로운 영감을 많이 불어 넣었다고 우기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공로는 인정받고 싶습니다.

  서양과의 충돌 초기 이슬람의 칼리프들은 그리스-로마시대에 쓰여진 의학저술을 번역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저의 탄생을 도왔습니다. 8~9세기 동안 활동한 후나인이븐-이스하크와 알킨디들은 그리스의학을 이슬람 문화권으로 옮겼습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그리스-로마 의학이 서양에서 잠자던 때에 저는 동방에서 그리스-로마의학의 후예로 탄생한 것입니다.

  9~10세기에 걸쳐 살았던 페르시아인 알-라지(라제스)는 위대한 의학자였습니다. 그는 갈레노스의 체액병리설을 믿었고, 질병 치료의 역사에서 가장 효용이 없었다는 방혈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의학의 아류에 머문 것은 아닙니다. 이슬람 최초의 병원을 세웠고 질병에 대한 이전의 저술을 검토하고 관찰 및 실험을 통하여 치료를 위한 실용적인 접근을 시도하여 자신만의 의학에 도달했습니다. 천연두와 홍역을 최초로 기술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 사업도 펼쳤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방대한 작업을 마무리 지어 「의학총서」라는 필사본을 완성합니다. 이는 당시까지 의술에 관하여 알려진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서적이었습니다. 알-라지의 「의학총서」는 유럽으로 흘러 들어 갔습니다. 당시 중세 유럽은 그들의 과거 의학조차도 간수하지 못하여 의술은 크게 퇴보한 상태였습니다. 1279년 라틴어로 번역된 이 두꺼운 책은 깊은 잠에 빠진 유럽의학을 깨우고 무려 17세기 까지 유럽의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이게 됩니다.

  한세기 후에 중앙아시아에서는 이븐시나라는 의학자가 활동합니다. 페르시아 출신인 이븐시나는 의학을 다른 학문과 연계시켜 광범위하게 다루었습니다. 이 때문에 부분적으로 터무니 없는 이론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그의 의학이론은 「의학정전」이라는 탁월한 의학교과서에 집대성됩니다. 「의학정전」은 수백년 동안 의학 종사자에게 교범이 되었고, 역시 17세기 까지 많은 의학교 교과서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우쭐할 만 하지 않습니까?

  뿐 만 아닙니다. 13세기 이슬람의학에서 기억할 만한 탁월한 의사들이 있습니다. 이븐 알-나피스는 심장과 폐 사이의 혈액순환인 소순환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서양의학은 17세기 윌리엄 하비가 혈액순환의 원리를 수립하였으니 이점에서는 제가 4세기나 앞섰습니다. 하지만 20세기가 되어서야 알나피스의 업적이 서양의학계에 알려진 점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븐 알-쿠프는 기독교를 믿고 십자군 전쟁에 뛰어든 특이한 이력의 이슬람의학자입니다. 그가 모세혈관과 심장의 판막 용도 등을 기술하였습니다. 4세기가 지나서야 말피기가 모세혈관을 발견한 것을 보면 제가 당시에는 서양의학보다 훨씬 앞서간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 저는 광범위한 종류의 약물을 치료에 사용하여 의술을 풍부하게 하였고 인체 해부학에서도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다양한 외과수술기법을 개발하였고 수술을 위한 도구도 개발하여 외과 분야에서도 약진하였습니다. 저는 「의사의 윤리 규약」에서 의사의 윤리지침을 상세히 마련하였으며, 환자에 대한 설명의 임무 등도 정립하여 현대 의윤리의 바탕을 이루는데도 기여하였습니다.

  흥망성쇠의 역사 법칙은 저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서양의학이 천년 만에 기지개를 켜면서 부흥하기 시작한 이후 저는 역사에 기록할 만한 진전을 더 이상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서양문명의 비약은 다른 문명 전체를 급속히 잠식하여 들어갔습니다. 거대 중국 조차 그들의 문명을 내려놓았고 그 문명의 주요 요소였던 중의학도 거의 궤멸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이슬람권에서 더 발전할 길이라고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예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서양으로 건너가 서양의학에 흡수되었습니다. 제가 인류에게 현대문명의 핵심인 서양의학을 가져다 주는 핵심 역할을 행한 것입니다. 이 공로 만큼은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류 역사에서 이룬 이 살신성인을 이해하는 사람이 매우 적어 늘 섭섭합니다.

  독자 여러분 제가 없었다면 현대 서양의학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 만은 인정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독자여러분 이슬람 문명도 세계사의 일부분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이슬람 문명 너무 미워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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