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UPDATE : 2019.12.13 금 22:38
> 기획/연재 > 칼럼/기고
빈티지 홀릭[리더스 칼럼]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신고하기
승인 2016.01.13  13:38:58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미투데이 트위터
   
 김향미
 화가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오래전이지만 우리 집 현관은 아직도 크리스마스다. 20여 년 전 아이들이 고물고물하던 시절에 산타 장화, X-MAS 리스, 트리를 손바느질하여 만들어 둔 것을 매년 함께 장식하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손때 묻은 장식품을 추억과 함께 여기저기 걸어두며 나 홀로 산타할아버지 마중을 게을리 한다. 혼자만의 부산함이나 허전함과 함께 그리움이나 기다림을 곁에 둔 채.

작정하지는 않았지만 반듯하게 정리하려는 습관이나 시간 맞추어 꼭 해야 하는 부담은 조금 물리기로 하자. 지금까지 몸이 해 오던 버릇들이 자꾸 나를 앞서서 나의 형편보다 먼저 가려함을 뒤로 달래어 본다. 세월의 관성에 따른 몸짓이나 반복되는 일상의 습관들을 하나 둘 떼어내야만 새로움을 마주하기가 쉬워질 것이라 맘먹는다.

습관처럼 치러야하는 인사나 해야만 하는 일들의 목록도 아주 작은 수첩에 새로 적어보려 한다. 가끔은 정해진 순서가 거꾸로거나 순서 없이 섞일 때도 있지만 아예 없을 때가 있음을 받아들인다. 주어를 누구누구로 대신해 보기도 하고 오히려 두세 명으로 만들어 보기도 한다. 동사를 바꾸어 보기도 하고 ‘혹은’ 이나 ‘아니어도 된다’ 라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이 아니어도 된다면 다른 목적을 상상하고 꿈꾸기도 하면서 아예 목적어도 바꾸어보리라. 그리고는 이어폰을 꽂고 나는 가벼운 산보를 나갈 것이다.

수 년 전 구석에 짐처럼 넣어둔 탓에 부서져버린 빈티지 샹들리에를 꼼꼼히 고쳐서 현관 천정에 매달았다. 오랜만이라 적당히 먼지도 보이고 오래된 유약 때문에 도자기 꽃들은 낡고 얼룩져서 바래인 핑크빛으로 퇴색되고 짬짬이 흠집도 있었다. 빈티지나 앤티크 재활용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오랜 시간의 흔적으로 때묻은 가구나 물건들을 아끼는 편이다. 집이나 가구도 새롭게 보이기보다는 새것도 십년은 넘게 이 집에 있었던 것처럼, 옷도 조금은 낡은 것을 편하게 여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때가 묻고 퇴색된 것이 좋은 이유는 내가 꼭 빈티지 홀릭이 되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백 년이 넘는 윌리엄 모리스 패턴의 종이 벽지가 있는 현관에서 빈티지 샹들리에는 매일 드나드는 밤마다 어두운 발걸음을 밝혀준다. 수없이 드나들었던 모습들이 은은한 불빛을 받아 살아난다. 지난 시간의 흔적이 담긴 빈티지 핑크빛 장미부케를 선사받는 느낌이다.

언제나 새로운 날을 마주하면서도 다가오는 날보다 지나가버린 날들이 먼저 돌아보아지는 때가 있다. 눈에 보이는 시간보다 마음으로 읽어지는 시간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의 가운데를 지나면서 우리의 기억이 희미해져야 하지만 더욱 진해진다면 다시 설레거나 붉어지기도 할 것이다. 육신은 가볍게 기울고 약해지지만 시간의 더께 너머로 좀 더 단아하고 굳건해지는 영혼의 무게가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시간의 흔적은 타인과 함께 이야기하기 이전에 스스로의 마음에 먼저 새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 동안 쌓여진 쪼가리들의 기억을 나름대로 짜깁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라면 어둡거나 밝거나, 미우나 고우나, 크거나 작거나... 새것이거나 낡아도 좋다. 이러한 것들이 모이면 쪼가리 깁기가 제 맛이 아닐까. 우리들은 매일 매일 가족들, 가까운 이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은 쪼가리들을 맞추어야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만남이 빈티지 쪼가리들의 풍성하고 은은한 어울림이 되어 오래오래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사람들은 잊혀지고 퇴색된 상실에 대한 슬픔보다 기억 속에 다시 그릴 수 있는 행복을 더 그리워할는지도 모른다. 하얀 할머니의 지난 이야기는 할머니의 주름진 눈가에 항상 새로운 미소를 돌려주듯이.
 

[관련기사]

일간리더스경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신고하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미투데이 트위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594 |  대표전화 : 051-996-2400  |  팩스 : 051-996-2408  |  등록번호 : 부산 가 00020  |  발행·편집인 : 백재현
등록번호 : 아00219 |  등록일자 : 2015년 2월 06일 |  청소년 보호책임자 : 백재현
Copyright © 2014 일간리더스경제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