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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비닐봉지[리더스 칼럼]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ileaders@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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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13  15: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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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향미
 화가
 

모든 아름다움에는 이율배반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황홀한 아름다움이여 아! 그 찬란한 슬픔이여’라고 노래한 것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표현이나 감정은 현실에서 전혀 다른 상황들로 반전되어지거나 새롭게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혼자 살면서 그림 그리던 화가가 있었다. 그는 까만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화상을 그렸었다. 커다란 캔버스의 비어있는 무채색 공간 귀퉁이에 등을 보이면서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림자처럼 아주 작고 흐릿했다. 그는 잠들기 전 까만 비닐봉지에 하루의 허기와 외로움을 채워주는 양식과 소주병을 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기의 일상이라고 했다. 아마도 까만 비닐봉지는 화가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남루함을 담은 또 하나의 다른 은유적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랑하던 사람이 살고 있던 자리에 그냥 놔두고 돌아선 순간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행복하게 그리워한다고 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두려움이지만 외로움과 함께 용기와 견딤이 필요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의 사연을 안 뒤에 그의 손에 쥐어진 까만 비닐봉지는 오히려 일상의 고달픔을 달래주고 해갈해주는 위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디자인적 세련됨이 전혀 없는 실용과 실리추구로 만들어져 흔하게 함부로 버려지면서 불편한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까만 비닐봉지는 작품 속에서 화가의 삶의 언어로 살아남게 되는 새로운 계기가 된 것이다. 한 대상이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삶을 표현하는 은유적 대상으로 추하거나 아름다울 수도 있는 모순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미학자 문 광훈은 ‘사실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며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며 이것이 미의 변증법이다.’ 라고 말한다. 현실의 참 모습은 온갖 거창하고 끔찍한 것들-모순과 균열, 모략과 거짓과 패배와 침울함이기 때문에 숨기지 말아야하며 이러한 현실과 이율배반의 모순마저도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아름답지 못한 것을 관통하고 견디고 끌고 가지 못한다면, 아름다운 것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는 ‘미의 변증법’ 아래에 서면 무관하거나 상반된 것들이 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한겨울 홀로 눈 속에 핀 동백은 기다림의 아픔이 붉어진 그리움의 정열로 변하여 찬란한 슬픔의 노래로 불려진다. 시리도록 붉고 화려한 꽃송이는 어느 날 아침 바람도 없는데 꽃송이가 통째로 뚝 떨어지는 허무를 느끼게 한다. 속절없이 떨어진 꽃들은 땅에 몸을 누이면서 모두 하늘로 향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땅에 떨어진 꽃송이가 하늘을 바라봄도 지켜보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심미안이요, 기다리는 아픔이 그리움으로 붉어져 떨어짐도 꽃과 함께 느끼고 가지는 자만의 아름다움이 된다. 이러한 흔적들은 각자 삶의 언어로서 되살아나게 되어 현실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예술의 주제가 된다.

참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보아야할 것을 향해 마음을 열고 넓게 느끼고 깊게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실행해 나가야한다. 그 결과 개인의 삶은 변화의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거나 보여야 할 것만 보여 주려한다면 사실은 거짓이 되어 현실적인 삶에 눈감기 쉬우며 그 사회는 점점 좁아지기 마련이다. 치장된 아름다움은 위장된 것이며 한정되어지거나 자발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아름다움 또한 진실성을 나타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개개인의 삶의 변화는 우리 사회 안에서 까만 비닐봉지 이외에 수많은 삶의 은유적 언어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기회를 꿈꾸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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