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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과 노벨과학상 스토리텔링[리더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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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10  15: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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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희
 숨쉬는 동천 대표

 

어느덧 동천의 중·상류 구간에 덮혀 있던 모든 복개구간이 복원재생 되어서 상류에서부터 풍부한 물이 북항 하류까지 넘쳐흐르는 지금의 상태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열의가 필요했었다. 오늘날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동천의 매력이 부산을 세계적 관광명소로 자리 매겨져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세계의 대표적 아름다운 명소이자 훌륭한 도시로 변모하게 된 것은 그간 긴 세월에 걸쳐서 이룩한 부산시민들의 노력 결과 때문이다.

20××년 이러한 매력 도시인 부산에 어느 해의 늦가을 정취와는 달리 또 다른 기쁜 뉴스가 전해져왔다. 한 해의 끝자락이라 부산시민들 대부분이 분주하고 바쁜 일상생활이지만 늘 이맘때면 왜? 노벨과학상 수상자 명단에 우리나라 사람이 없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시기인데 오늘은 다른 해와 달리 수많은 언론방송매체에서 연일 우리나라의 이박사가 인체의 생로병사에 대한 입체적 분자수준의 생체모방 메카니즘 연구로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진단제 개발에 성공하여 많은 환자들이 치료되고 있기에 노벨과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으로 부산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온통 잔치 분위기다. 더욱 더 자랑스러운 것은 이박사가 부산 태생의 토박이로서 아버지 이모씨가 다녔던 부산의 대학에서 졸업을 하고 석·박사학위 과정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는 노벨과학상을 타기까지의 모든 연구원 생활도 부산에서 해 왔다는 사실이다.

노벨과학상 수상자인 이박사는 부산의 중심하천인 동천유역에서 태어나 초·중·고교의 시간들을 동천의 물소리와 함께 보냈다. 특히나 동천 중·상류에 있던 고등학교 시절이 과학의 초석을 다지는데 엄청나게 큰 역할을 해 주었으며, 일부 친구들이 서울로 대학을 진학할 때 이박사는 고향인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기로 아버지와 의논하여 그것도 동천 가까이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결심했었다. 이박사의 능력에 비하면 엄청난 결정이었다. 박사과정까지의 시간과 본격적인 과학자로써의 연구원 시절도 동천유역에서 보내면서 때로는 즐거워서 때로는 괴로워서 때로는 학문의 영감을 얻기 위하여 수 없이 동천 변을 거닐고 보낸 시간들이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었음을 감사한다고 했다.

복개되었던 동천이 꿈꾸고 바래왔던 복원재생이 시작하던 그 시점으로 해서 고등학생이었던 이박사는 동천이 아주 오래전부터서 똥천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었다. 그랬던 동천이 눈으로 직접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것이 이박사에게는 큰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했다. 시작된 동천의 복원재생이 조금씩 변화의 역사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서 이박사 자신 스스로도 매일매일 변화의 방향으로 조금씩 만들어져 가고 싶다 라는 마음이 생겼고 그러한 마음의 결정에 따르는 실천을 매일매일 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결실이 생겼다고 했다.

이런 작은 변화의 영감을 동천에서 이박사의 이야기로 처음 들어볼 수 있는 내용인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노벨화학상 수상자 가운데 박사학위 없이 노벨위원회에서 한국 출생으로 분류한 수상자가 있는데 그는 1904년 부산에서 태어나 아주 어린 유년기를 우리나라에서 보낸 챨스 피더슨(Charles Pedersen)이다. 어릴 때 부산 세관에 근무하던 아버지와 함께 동천유역에 와보았던 희미한 기억으로 동천에 배를 타고 들어오면서 들은 동천의 맑은 물소리며 물 냄새가 줄곧 머릿속에 남아 보석 같은 이정표가 되어서 훗날 그가 화학과의 만남으로 이어준 인연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며, 그의 부모에게서 가끔 들었던 유년기의 동천 이야기가 과학자로써의 연구생활에 큰 위안과 추억이 되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한다. 아뭏튼 그는 부산 태생으로써 아니 우리나라 출생인으로서는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이다. 이 외에도 동천을 거닐면서 또는 동천을 바라보면서 과학자적 삶의 인고에 견디기 위하여 또는 과학적 성과를 얻기 위한 영감을 찾기 위해서 이곳 동천으로 찾아와 마음을 달랬거나 위안을 얻고 갔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장영실도 먼 옛날이지만 동천을 한 두 번쯤은 거닐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석영도 마찬가지이다. 우장춘박사 또한 타향에서의 어려운 연구생활에 버팀목이 되고 원동력이 되어준 것은 한 두어 번 정도 거닐었던 동천의 추억이 큰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을 해본다.

다시금 말하지만 동천은 부산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도심하천으로 LG그룹의 전신인 락희화학을 비롯해서 유명한 화학 관련 회사들이 많이 있었던 곳이다. 동천유역에는 우리나라를 과학기술 강국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취지에서 세워진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있으며 서면메디컬스트리트 또한 유명하다. 이렇듯 부산의 정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천이 20××년 맑고 많은 물이 흐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여기까지의 동천이 되기 위해서 부산시민들이 노력하고 인내했던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동천의 맑고 많은 물이 계속해서 상류에서 하류까지 흘러 사람의 마음에 담겨진 정까지도 또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전해져 넘쳐흐르게 하는 동천을 보면서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서 20××년 이박사에 이어 계속해서 노벨과학상을 수상할 것이다 라는 기대가 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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