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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 거리의 광고물을 바라보며[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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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13  11: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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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선영
 동아대학교 프랑스문화학과 교수

자동차로 다니다보면 목적지에 이르기 전 으레 몇 번쯤 신호등에 걸려 서게 되고 그럴 때면 나는 거리의 풍경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는 동네에선 철따라 차려 입은 사람들이나 저 멀리 산 위에 멋없이 우뚝 솟은 아파트를 바라보기도 하고 내 앞 쪽 차의 번호판을 보며 숫자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신호등을 가릴 듯이 가지를 뻗은 가로수가 있는 길이나 중앙분리대 화단이 있는 거리에서 빨간 불을 만나면 나는 예외 없이 살랑거리는 나뭇잎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어느 여름, 꽤 길게 늘어서 있는 활엽수 가로수 길을 지나다 내 눈이 시원해지는 것을 깨달은 이후 가지게 된 버릇이다. 그 당시 내 눈의 시원함은 마음의 시원함으로 이어졌고 상쾌함은 오랜 시간 지속되어 그 경험은 참으로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서운하게도 도심에는 가로수가 심어져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 그래서 눈이 전혀 즐거워지지 않는 거리들이 많이 생겼다. 하늘이나 집, 담벼락이 가로수의 수수한 배경이 되어주지 않는 거리들 그러니까 가로수의 존재를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거리들이 도시를 채우고 있다. 아프도록 고개를 젖혀야 그 끝을 볼 수 있는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서 하늘을 가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낮은 건물조차 온통 간판들로 뒤덮여있기 때문이다. 돌출된 간판뿐 아니라 출입문도 게시물로 가득히 도배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어디 그뿐인가. 건물의 벽면으론 모자라는 듯 플래카드가 힘차게 펄렁거리는 광고 설치물도 보게 되고 가로수를 설치대 삼아 걸어놓은 현수막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내다 본 원색의 광고물과 간판에 질려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다 보면 이번에는 현란하고 거대한 광고물을 옆구리에 붙이고 나란히 줄 선 버스들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엉뚱하게도 수많은 간판들이 왕성하게 번식하여 식물의 잎을 말라 죽게 하는 진드기와 같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규원 시인은 <간판이 많은 길은 수상하다>란 시에서 ‘서울에는 4월의 개나리보다 간판이 많다’ 했다. 그게 어디 서울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21세기가 시각문화의 시대이자 현대 시각문화의 기능 중 하나가 대중과의 소통이고 그 중심에 광고가 놓여 있다고 하지만 나는 늘 원치 않는 소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또한 예술의 영역으로 분류되길 원하는 자극적인 간판과 상업적인 광고가 쏟아져 나오면서 교육적인 측면에서 우려가 되기도 한다. 간판과 광고는 거리와 매스미디어를 통해 누구에게나 다 노출되어 있는데 과연 현재 이 사회에서 허용되고 있는 간판과 광고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정한 소통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의식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매일 <간판과 광고>라는 시각 공해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층이든 단층이든 겹겹이 늘어선 건물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밀집되어 부착된 간판들과 광고물은 색채와 형태면에서 부조화를 이루어 시민들에게 시각적인 자극만 줄 뿐 미적 감각은 물론 본연의 기능을 이미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의 광고물이 늘어만 가는 선거철, 아직은 볼품없는 간판이 무질서하게 난무하고 불법 광고물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며 문득 30년 전 부터 간판 규제법을 제정해 지속적으로 정비 사업을 실시해 온 파리와 마치 풍경의 일부처럼 건물에 달려있던 예쁜 간판들이 인상적이었던 유럽 도시들을 떠올렸다. 성급한 비교였으리라.

몇 년 전부터 우리 정부도 문화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간판문화 선진화 방안을 채택하여 간판의 최소화, 조화, 질서, 가독성 등을 제고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배경이 국민의 정서적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간판문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아직은 비록 지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실제로 곳곳에서 아름답고 소박한 간판들이 하나 둘 생겨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하니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부디 각각 개성적이면서도 주위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간판, 건물의 특징과 기능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주는 간판, 예술적 가치를 지닌 간판들이 늘어나 우리 고유의 품위 있는 간판 문화를 형성시키고 국민들의 정서 발달에도 이바지 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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