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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의미없음을 깨달아야"[사람, 사람을 만나다] - (58) 병역명문가 주정환씨
주덕 기자  |  lamour777@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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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3  14: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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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명문가에 선정된 주정환 씨(68)가 인터뷰 중 벤치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배병수 기자)

보훈의 달 6월을 맞이하여 2013년 병무청이 주관한 병역명문가에 선정된 주정환(68,영도구 대교동)씨를 만났다. 그는 6·25 에 참전한 그의 부친 이야기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나라를 위한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과 봉사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는 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지금 우리는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물질이 만능이라는 지금의 세상, 오직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판치고 있는 이때에 묵묵히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이 진정 영웅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 2012년 병역명문가로 선정되셨는데 간단한 가족관계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셨고, 형님은 66년 십자성 부대 대원으로 참전하였으나 고엽제 후유증으로 병사하셨습니다. 저는 69년 청룡부대원으로서 월남전에 참전하였습니다. 밑에 동생은 육군만기 제대를 하였습니다. 큰 댁 조카 두 명이 육군을 만기제대 하였으며 저의 아들 또한 육군을 만기 제대 했습니다. 3대에 걸쳐 남자 총 7명이 전원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아들은 딸만 셋이어서 병역명문가는 3대로서 끝날 것입니다.

- 병역명문가증과 국가유공자증 (참전 고엽제, 전몰군경유족) 등은 선생님께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국가보훈청에서 국가유공자증과 국가유공자 유족증 병무청으로부터 병역명문가증을 수여받았습니다.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는 특별한 사례가 분명하지만 이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거나 대단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자긍심이나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마땅하지만 나 혼자만 만족할 뿐입니다.

-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일해 오셔서 늘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까?

아버지께서는 젊은 나이에 아내와 아들 3명을 두고서 특히 막내가 생후 5개월쯤 됐을 무렵에 6,25 전쟁이 발발하여 우리나라의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리자 입대를 하셨습니다. 전장에 나가시면서 이 전쟁은 조만간 끝날 것이니 잠시만 고생하고 있으라고 당부하고 떠나셨지만 3년이 넘게 지속되는 전쟁을 몸으로 겪으시다가 종전 3일을 앞두고 강원도 철원 김화지구 전투에서 안타깝게도 전사하셨습니다. 전사하시기 8개월 전 UN 공훈훈장을 받으시고 잠깐의 휴가를 다녀가신 후 막내 여동생이 유복자로 태어나서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게 되었습니다. 전사하시기 3일 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신 듯 바위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며 형님과 나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셨다는 동료 전우들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졸지에 가장을 잃은 어머니께서는 전사통지서를 받으시고 부엌문에 기대셔서 통곡을 하셨습니다. 그 때의 충격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셨습니다. 성치 않던 몸으로 아들 3형제와 유복자인 딸을 위해 장사를 하셨습니다. 돌볼 사람이 없었던 여동생은 혼자 울다 잠들곤 했습니다. 그 이유로 성대가 많이 상해 지금도 발음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딸 때문에 가슴 아파 하셨고 죄책감에 괴로워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전사하시고 제3공화국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우리 가족은 국가와 이웃으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국가 재정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실제 이 같은 일을 겪었던 우리 가족은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4,5,6 학년 때 가난 때문에 월사금을 내지 못한다고 구박하는 담임선생님들을 잊지 못합니다. 중학교 입학고사에 전교1등으로 입학하여 모든 학비가 면제되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기술을 배워야 살아갈 길이 있다고 생각하여 13살에 철공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은 교복입고 가방 들고 학교 가는데 작업복에 도시락 들고 나가던 나의 모습이 자주 떠오릅니다.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군전사자의 유족들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한 정부가 있었기에 마른 장작 같은 나의 속마음은 조금씩 녹아져 내렸습니다. 사실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기에 조국을 위해 몸 바친 보람을 느끼고 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 어떤 계기로 월남전에 참전하셨습니까?

그 당시 육군의 복무 기간은 3년에 가까웠고 해병대는 2년이었습니다. 이왕 군대를 가려면 일찍 가서 일찍 제대하여 혼자 계신 어머니를 도울 생각으로 지원하여 입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우리나라는 참 힘들게 돌아가던 때 였습니다.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공격하려 하였고 울진 삼척 지역에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하여 제가 있던 부대는 무장공비를 진압하러 투입되었습니다. 그 후 68년 12월 제3부두에서 월남 행 수송선을 타고 월남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갑판에 서서 바라보았던 영도 봉래동에 있던 제가 살던 집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것이 내 생애 마지막이 될지 혹은 살아서 우리 집을 다시 보게 될지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배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할 때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심경이었습니다. 큰 아들을 월남에 보낸 후 둘째 아들을 또다시 전쟁터로 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을 그 당시는 어떻게 제대로 알았겠습니까! 남편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두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신 어머니는 자식이 돌아오는 날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아니하시고 생선 장사를 하시면서 남들과 소리 높여 다투지도 못하셨다 합니다. 행여나 아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봐 그렇게 사셨습니다. 숱한 작전과 전투 중 한번은 야간 매복 시 참호 약 5m 앞에서 10여발의 박격포가 폭발하여 그때의 사고로 고막에 이상이 생겨 작은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게 되었지만 국가보훈청은 군병원의 진료기록이 없기 때문에 보상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월남에서 복무를 마치고 제3부두에 도착했을 때 하염없이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정말 자식으로 못할 짓을 했구나 하는 후회도 하였습니다. 그 후 생계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노동자로서 근무하기도 하였습니다.

- 사회지도층의 병역의무불이행 등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기본 의무를 소홀히 하는 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가끔씩 매스컴을 통하여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병역관계를 보고 듣습니다. 그들 본인이나 자녀들의 병역 미필의 원인을 말할 때 참 변명도 많으시다, 참 편하게 먹고 사는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든 국가에 대한 의무는 돈 없고 배경 없는 일반 백성들이나 하는 것이지 자기들은 열매나 따먹고 즐기는 인생, 누리는 삶을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한 대한민국이 바로 서고 정의가 실천되기는 요원하다고 봅니다.

- 국가가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보상 등(물질적, 정신적) 등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6,25 월남 참전 유공자에 대하여 국가는 매월 17만원의 연금을 줍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전상이나 고엽제 후유증 같은 경우 본인이 악전고투해 기본조건을 충족시켜야 마지못해 인정합니다. 하다못해 자기차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여 장애자가 된다면 국가유공자보다 월등한 대우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후손들의 질긴 삶의 고통을 국가는 알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1년 또는 그 이상 지독한 기후 조건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간 월남참전 용사는 지금도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국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대우를 해주어야 진실 된 애국국민이 있게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 젊은 세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고생과 땀과 눈물로 이루어 놓은 것을 누리고 삽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기성세대가 보기에 걸핏하면 사람들이 거리로 나섭니다. 나라야 망하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 생각과 같지 아니하면 사정없이 등을 돌리는 세대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국가에 대해 불만이 많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되더라도 나라가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종북세력을 정의의 세력인양 착각하고 종북세력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사회를 악의 축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생각인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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