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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5월[삶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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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06  16: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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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현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해부학
 

  행사의 달 5월이 돌아왔다. 가정 행사가 줄을 이어 늘어선다. 필자는 5월에 결혼하였고 아들이 5월에 태어나 기념일이 더 보태어졌다. 게다가 평생 공부하고 가르쳤으니 스승의 날 행사도 학생으로 스승으로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내게는 너무 버거운 5월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이 5월 함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필자는 5월을 각별히 반기며 맞이하게 되었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제국을 동쪽으로 옮긴다. 도시 비잔티움은 동로마제국의 수도가 되며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뀐다. 476년 게르만민족의 진군으로 서로마제국이 멸망하자 비잔틴제국은 그리이스 로마 문명의 계승지가 되었다. 537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이 도시에 낙성된 걸작 소피아대성당을 바라보며 “솔로몬 내가 당신을 능가하였소”라는 자부심 넘친 탄성을 지을 때 동로마제국과 이 도시의 위상은 절정에 이른다. 이후 흑사병 만연으로 서로마제국 원정이 불발되고 아랍과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비잔틴 제국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지만 콘스탄티노플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천년 동안 존속하였다.

  하지만 도시의 최후는 점차 다가 오고 있었다. 신생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발칸 제국을 넘어 콘스탄티노플에 접근하였다. 1453년 4월 탄 메흐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 투르크의 10만 군사가 도시를 포위한다. 도시는 50일 동안 버티었지만, 1453년 5월 어느 날 밤 마침내 거대한 성벽은 오스만 투르크 병사들에게 길을 터주고 만다.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고 모든 것을 잃었다. 이름은 이스탄불이 되었고, 소피아대성당은 모스크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리스/로마문명 마져 통채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멸망 이전 수 세기 동안 그리스/로마문명은 지속적으로 서로마의 옛 고토로 되돌아 가고 있었다. 그리스/로마문명은 귀환한 유럽에서 르네상스로 부활한다.

  르네상스 당시 예술가들은 흥미의 중심을 인간에 두었다. 미술가들은 인체 외형 이상을 원하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은 인체의 내부 구조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서양에서 1천년 이상 중단되었던 인체해부가 다시 행해지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가 시체 해부를 용이하게 하여 주자 의학으로서의 해부학이 꿈틀대기 시작하였다.

  이 때 주인공 해부학자 베살리우스가 등장한다. 브뤼셀 출신으로 인체해부 여건을 찾아 이탈리아에 찾아온 바셀리우스는 파도바대학에서 해부학 연구에 매진한다. 콘스탄티노플이 멸망하고 정확히 90년 지난 1543년 베사리우스는 마침내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라는 기념비적인 해부학교과서를 간행한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하여 천년 이상 지배하던 갈레노스의 인체구조에 대한 이론이 잘 못 되었음을 밝혔다. 이 책이 서양의학의 근간을 뒤흔든 것이다. 갈레노스의 해부학 붕괴는 갈레노스 의학 전체의 붕괴를 가져오게 된다. 천년 이상을 지배하여온 갈렌의학이 붕괴되면서 서양의학은 비로소 침묵에서 깨어난다. 최초의 근대적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를 간행하여 근대물리학의 시발점이 되었던 1543년 바로 그 해에 근대의학 역시 출발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베사리우스 이후 수 세기 동안 의학의 이야기는 해부학이야기이기도 하다. 17세기 초 윌리엄하비는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대한 해부학적 고찰을 통하여 혈액 순환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해부학자 모르가니는 질병의 발생부위를 찾아 나섰고, 장기의 병소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위대한 발견에 이른다. 이전 까지 질병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모르가니 이후 질병은 몸의 어느 장기에 존재한다는 실체적인 무엇으로 변하였다. 질병이 어느 장기에 존재한다는 개념은 근대 서양의학 질병론을 바꿔 놓았다. 질병이 존재하니 두드려 질병 고유의 소리를 들으려는 타진법이 정립되었고, 질병고유의 소리를 들으려는 청진법도 정립되었다. 질병을 현미경과 방사선 영상으로 관찰하게 된 것도 모두 질병이 해부학적 국소부위에 존재한다는 질병론에서 출발한 것이다.

  근대 서양의학의 바탕을 놓은 해부학 연구의 발걸음은 오래 전 종착역에 닿았다. 수 많은 해부학자들이 인체의 구조를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보고한 결과 주요한 인체의 구조는 한 세기 전에 이미 다 밝혀졌다. 일부 응용영역을 제외하고는 해부학자는 더 이상 해부학을 연구하지 않는다. 필자의 연구영역인 세포사 역시 전통적인 해부학 분야는 아니다. 그러나 해부학 연구 중단과 무관하게 해부학은 현대 서양의학의 중심이다. 지금도 의학도들은 입문기에 많은 시간을 해부학 공부에 바쳐야 한다. 몸의 구조를 이해하여야 기능도 이해가 되고 질병도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해부학자의 길을 걸은지 30년이 넘었다. 해부학은 내 직업이 되었고 올해도 후학들에게 해부학을 강의하였다. 1453년 5월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 필자에게 평생직업을 가져다 준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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